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협주곡을 재즈로… 바흐 재해석은 지금도 진행 중
바흐의 추종자들
대표적으로 지난달 85세를 일기를 세상을 떠난 프랑스 출신의 자크 루시에(Louss -ier·1934~2019)가 있어요. 루시에는 주로 재즈 연주자로 알려졌지만 클래식 작품에서 얻은 모티브와 리듬을 이용해 다채로운 작품 활동을 벌였던 인물이기도 해요. 특히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작품을 주제로 한 재즈 음악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 ▲ 랑스 음악가 자크 루시에는 바흐의 평균율 모음곡,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등을 재즈풍으로 편곡·연주해 인기를 얻었어요. /게티이미지코리아
1934년 파리 서남부 앙제에서 태어난 루시에는 열 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루시에가 바흐를 처음 만난 건 음악에 입문한 지 1년 후, 바흐가 자기 아내를 위해 만든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연습곡집'에 실려 있는 짧은 소품들을 통해서였죠. 명문 학교인 파리음악원 입학시험을 볼 때 루시에는 바흐의 프렐류드를 연주했는데, 문득 악보가 생각나지 않자 그 자리에서 즉흥 연주를 시작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어요. 사실 바흐를 포함한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 역시 즉흥 연주를 즐겼기에 루시에의 연주 방법은 참신했지만 바로크 전통에 따른 것이었다고도 볼 수 있어요.
클래식 작곡 공부를 시작한 루시에는 부족한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재즈 연주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스물다섯 살이던 1959년 더블베이스와 퍼커션(타악기)으로 구성된 트리오 팀을 결성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바흐의 건반악기를 위한 평균율 모음곡, 파르티타, 이탈리아 협주곡 등을 재즈풍으로 편곡해 연주하고 녹음했는데, 발표하는 앨범마다 큰 인기를 얻었죠.
루시에는 15년간 콘서트를 약 3000번 열면서 바흐 음악을 새롭게 조명한 피아니스트 겸 재즈 작곡가로 인정받게 됩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스튜디오 작업을 통해 다양한 팝 뮤지션과 협업하던 루시에는 1985년 바흐 탄생 300주년을 맞아 새롭게 트리오를 만들어 음반을 내면서 과거 활동을 이어갑니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1988), 골드베르크 변주곡(2000) 등 바흐의 걸작들뿐만 아니라 사티, 드뷔시, 라벨 등 프랑스의 클래식 작품들도 자신만의 방식을 통해 재즈 음악으로 탈바꿈시켜 주목받았어요.
클래식 걸작이 재즈로 바뀌면 어떤 모습일까요? 루시에는 작품의 기본 틀은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즉흥적 변주를 했어요. 곡을 구성하는 중요한 멜로디나 모티브를 그대로 연주한 다음 그 부분의 선율이나 화성을 조금씩 바꿔 재즈풍으로 연주하는 식이죠. 간결하면서도 깔끔한 구성으로 클래식과 재즈 팬들에게 폭넓게 사랑받은 루시에는 80세가 되던 해에도 앨범을 두 장이나 내면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페루초 부소니(Busoni·1866~1924)는 바흐가 작곡한 오르간곡이나 바이올린곡을 피아노곡으로 바꿔냈어요. 이탈리아와 독일인 부모 사이에 태어난 부소니는 클라리넷 연주자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에게 음악을 배운 후 일곱 살 때 피아니스트로 데뷔할 정도로 천재성을 보였어요. 이후 핀란드, 미국, 러시아 등을 거쳐 독일 베를린에서 연주자와 교육자로 활동했지요.
부소니는 뛰어난 작곡가이자 편곡자였죠. 그는 학구적이고 이성적 자세를 늘 유지했어요. 그가 가장 존경한 세계는 바로 바흐의 작품들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10개의 코럴 프렐류드'를 들 수 있습니다. 코럴 프렐류드는 성가의 멜로디를 기반으로 다양한 성격을 지닌 성부들이 등장해 마치 음악으로 건축물을 만들어내는 듯한 작품이에요. 부소니는 오르간곡으로 쓰인 원곡을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자기만의 독특한 색채를 덧붙이는 데 성공했죠.
그러나 부소니라는 이름을 지금까지 남게 만든 곡은 샤콘느(17세기 스페인에서 시작된 세 박자의 느린 춤곡) d단조라고 할 수 있어요.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부소니는 바이올린 독주곡인 원곡이 지닌 환상성에 피아노로 표현할 수 있는 화려함을 더해 더욱 진한 감성이 담긴 명곡을 만들어냈죠.
루시에나 부소니처럼 바흐를 존경하고 닮아가려는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더 흥미롭고 다채롭게 만들어주고 있죠.
[영화 '그린북' 주인공, 돈 셜리]
- ▲ 돈 셜리
루시에처럼 재즈 뮤지션이면서도 자신의 음악에 클래식적인 요소를 꾸준히 넣었던 인물이 또 있었어요. 올해 아카데미 영화제 작품상을 받은 '그린 북' 의 주인공 돈 셜리(Shirley·1927~2013) 입니다. 셜리는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태어나 두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어요.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되려는 꿈을 갖고 18세에 데뷔했지만 인종차별 때문에 진로를 바꿉니다.
셜리는 1954년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후 재즈와 블루스 음악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로 변신했습니다. 블루스, 가스펠, 재즈를 넘나드는 독특한 음악 세계로 각광받은 그의 음악에서는 클래식의 명곡을 인용한 부분이 자주 등장합니다. 드뷔시의 피아노 곡,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등이 재즈풍의 화성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독특한 감상을 만들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