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동귀의 심리학이야기] 한데 담긴 음식 나눠먹은 사람들이 임금 협상 더 빨랐어요

입력 : 2019.04.12 03:09

식사의 심리학

"지난 2월 베트남에서 열린 미·북(美北)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각자 먹을 음식이 담긴 접시를 받지 않고 식탁에 음식을 놓고 나눠서 덜어 먹었더라면 협상 결과는 달랐을 수 있다."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3월 보도한 내용입니다. 음식과 협상 내용은 연관성이 없는데 왜 결과가 달라진다는 걸까요? 오늘은 사람이 이성적으로만 사고하지는 않는다는 심리학 실험 사례를 말씀드릴까 해요.

못 믿을 상대와 협상하느니…

담배 회사 A와 B가 둘 다 담배 광고를 하지 않으면, 둘 다 광고비를 아낄 수 있지요. 그런데 한 회사는 광고를 하고 다른 회사는 하지 않으면, 광고를 안 한 쪽만 손해를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A회사 사장과 B회사 사장이 과연 상대방을 믿고 광고를 그만두자는 신사협정을 맺을 수 있을까요? 두 회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광고를 계속하겠죠.

현실에서도 비슷한 일이 많았어요. 냉전 시대에 서방세계를 중심으로 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구(舊)소련을 중심으로 한 '바르샤바조약기구'가 벌인 군비 경쟁이 대표적이에요. 두 기구가 무기 개발 경쟁을 멈췄다면 천문학적인 비용을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상대방을 믿고 무장 해제를 하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컸어요. 결국 냉전이 끝날 때까지 출혈 경쟁이 계속됐어요.

죄수의 딜레마

협력이 어려운 이유는 상대방을 믿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경제학, 심리학 등에서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라고 해요. 검사가 죄수 두 사람을 따로 만나 "상대를 배신하고 범행을 자백하라"고 설득합니다. 둘 중 한 사람만 자백하면 자백한 사람은 석방되고 다른 사람은 3년형을 받아요. 둘 다 자백하면 둘 다 2년형, 둘 다 침묵하면 둘 다 1년형을 받고요. 이론적으로는 둘 다 의리를 지키는 게 이익이지만, 실제로는 둘 중 어느 쪽도 상대를 믿지 못해 둘 다 손해를 보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이 개념을 응용해, 협력을 촉진한 사례가 있어요. 하비 호른슈타인(Hornstein) 컬럼비아대 교수 연구팀은 1975년 실험 참가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서로 믿지 못하고 경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고, 서로 다른 뉴스를 보여줬어요.

A그룹에는 모르는 사람에게 신장을 이식해준 감동적인 뉴스를, B그룹에는 존경받던 성직자가 여성 조각가를 살해한 섬뜩한 뉴스를 들려주고, C그룹은 아무 뉴스도 들려주지 않았어요. 그 결과 감동적인 사연을 들은 A그룹이 다른 그룹보다 훨씬 자주 협력 행동을 했어요.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협력 행동이 늘어난다는 걸 보여주죠.

한솥밥 먹으면 협력 증진

한 접시에 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이 협상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는 연구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미국 코넬대 연구팀이 지난달 국제 학술지 '심리 과학'에 실은 연구랍니다.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박다솜

연구팀은 서로 모르는 참가자 10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A그룹은 회사 역할, B 그룹은 노조 역할을 맡겼어요. 참가자들은 협상 전에 식사를 했습니다. 참가자 절반은 한 접시에 토르티야 칩을 받아와 나눠 먹고, 나머지 절반은 각자 따로 먹었어요. 그 결과 음식을 따로 먹은 사람들은 임금 협상이 타결되기까지 13.2번 협상을 했어요. 반면 음식을 나눠 먹은 사람들은 평균 8.7번의 협상으로 임금 타결에 성공했지요.

연구진은 "음식을 나눠 먹으면 한정된 자원을 두고 서로 경쟁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식사하면서 서로가 원하는 걸 잘 알게 돼 협동하게 된다"고 했어요. 협상 전에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죠.

☞도박사의 오류

사람들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례로 '도박사의 오류'가 있습니다. 빙빙 돌아가는 둥근 게임판에 구슬을 굴리다 붉은색과 검은색 중 어느 색 칸에 떨어지는지 알아맞히는 '룰렛' 게임이 대표적이죠. 구슬이 20번 연속 검은색에 멈췄다고 가정해볼까요. 대부분 사람은 '20번이나 검은색에 멈췄으니 이제 다른 색에 멈출 것'이라고 생각하고 붉은색에 돈을 겁니다.

이번 판에 구슬이 검은색이 멎었다고, 다음 판에 구슬이 검은색에 멎을 가능성은 줄지 않아요. 매번 새로 게임판을 돌리니까요. 서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 독립적인 사건인데 사람들은 '또 검은색에 멈추진 않겠지'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동귀·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