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최의창의 스포츠 인문학] 스포츠 순수성 위해… 올림픽서 정치적 주장 금지했죠

입력 : 2019.04.09 03:05

스포츠와 정치

2012년 런던올림픽 축구 3·4위전을 마치고 ‘독도는 우리 땅’ 세리머니를 펼치는 박종우 선수.
2012년 런던올림픽 축구 3·4위전을 마치고 ‘독도는 우리 땅’ 세리머니를 펼치는 박종우 선수.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지난 4·3선거는 정치권이 스포츠를 유세에 활용하면서 논란이 됐어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선거를 앞두고 경남FC 홈구장인 창원축구센터에서 유세했어요. 이는 경기장 내 정치적 행위를 금지하는 한국프로축구연맹 규정 위반이라 논란이 됐죠. 결국 경남FC는 벌금 2000만원을 내게 됐고요. 여영국 정의당 후보는 예비후보 시절 창원 LG 세이커스 구장을 방문해 경남도선관위가 조사에 나서기도 했어요. 국제 스포츠계는 정치의 스포츠 개입을 엄격히 막습니다. 2012 런던올림픽 남자 축구 3~4위전에서 승리한 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펴들고 경기장을 뛰어다니는 세리머니를 했다가 메달을 받지 못할 뻔했던 박종우 선수 사례가 대표적이지요. IOC는 박종우 선수가 정치적 시위나 선전을 금지하는 올림픽 헌장을 위반했다고 봤거든요. 박종우 선수는 우여곡절 끝에 6개월 뒤에 동메달을 받게 됐죠.

'스포츠와 정치는 떨어져 있으라.' 현대 스포츠의 트렌드입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축구연맹(FIFA) 등 주요 스포츠단체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규정을 가지고 있죠.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스포츠는 정치와 떼어놓기 어려운 관계이기도 했어요. 로마 제국 황제는 민심을 얻기 위해 검투사 대회를 열었고, 중세 서양에서는 왕과 봉건영주들이 기사들의 마상창시합을 주최해 영향력을 과시했지요.

근대에 들어서는 아돌프 히틀러가 있었어요. 히틀러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통해 아리안족의 뛰어남을 전 세계에 선전하려고 했어요. 당시 나치 독일은 종합 1위를 거두면서 대대적인 선전에 나서죠. 다만 미국 흑인선수 제시 오언스가 남자 육상 100m·200m·400m 계주·멀리뛰기에서 4관왕을 하고,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하면서 빛이 바랩니다.

약자(弱者)가 스포츠를 통해 정치적 의견을 밝힐 기회를 얻기도 합니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남자 육상 200m 시상식은 아직까지 기억됩니다.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한 미국의 흑인 육상 선수 토미 스미스는 성조기가 올라가고 미 국가가 연주되는 순간 고개를 숙이고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하늘로 치켜들었어요. 흑인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침묵시위였죠. 당시 IOC는 이들이 정치적 행동을 했다며 선수촌에서 쫓아냈어요. 그렇지만 이들이 전한 메시지는 흑인 인권 신장에 큰 도움을 줬죠.

스포츠에 정치가 개입하면 스포츠의 순수성이 훼손되고 공정성이 흐려질 수 있어요. 그렇지만 정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순수한 스포츠가 가능할까요? 국가나 지역을 대표하는 팀들이 맞붙는 스포츠에 정치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스페인으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카탈루냐 지방 축구팀 FC바르셀로나가 스페인 국왕으로부터 팀 명을 하사받은 레알 마드리드와 경기하면 그 자체로 정치적인 의미가 생기죠. 한·일전이 다른 경기와는 다른 것처럼요.

스포츠가 완전히 탈(脫)정치를 이루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스포츠에 있는 정치적 속성, 정치적 영향력을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발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겠죠. 1971년 미국과 중국이 탁구선수단을 교환하면서 20년 이상 지속한 냉전 관계를 순회시합을 통해서 풀어나간 '핑퐁 외교'처럼요.


최의창·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