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벽 한쪽의 꽃그림, 천장·바닥으로 퍼져나가 나를 에워싸네
입력 : 2019.04.06 03:05
'빛의 벙커: 클림트'展
'그림 속 세상에 들어가 봤으면' 하고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천국보다 아름다운'(1998)이라는 영화에 그런 장면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죽어 낯선 세상에서 눈을 떴는데, 주위가 온통 알록달록한 거예요. 강물도 실제보다 더 파랗고, 손을 담그니 손에 파란색이 묻어났어요. 땅은 밟을 때마다 미끄덩했는데, 자세히 보니 노랗고 붉은 물감이지 뭡니까. 주인공은 어린아이처럼 온몸에 물감을 묻히며 뒹굴고 뛰어다녔답니다. 그곳은 평소에 아내가 늘 그리던 풍경화 속이었던 것이죠.
그림을 무대로 그 안을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장소가 정말로 있습니다.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는 '빛의 벙커' 미술관이죠. 이곳에서 10월 27일까지 프랑스 예술가들이 준비한 미디어아트 전시를 볼 수 있어요.
그림을 무대로 그 안을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장소가 정말로 있습니다.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는 '빛의 벙커' 미술관이죠. 이곳에서 10월 27일까지 프랑스 예술가들이 준비한 미디어아트 전시를 볼 수 있어요.
- ▲ 사진1 - 훈데르트바서의 상상의 마을. /‘빛의 벙커: 클림트’展·티모넷
- ▲ 사진2 - 프랑스 보드프로방스 채석장 입구. /‘빛의 벙커: 클림트’展·티모넷
- ▲ 사진3 -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빈의 거리. /‘빛의 벙커: 클림트’展·티모넷
- ▲ 사진4 - 한스 마카르트의 ‘오감’. /‘빛의 벙커: 클림트’展·티모넷
클림트는 건축적 요소와 회화적 요소, 그리고 음악적 요소까지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는 '총체적인 예술'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미술을 음악처럼 듣고, 음악을 미술처럼 볼 수 있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죠. 이런 이상은 오스트리아와 독일 건축가와 화가들 사이에서 지지를 얻어요. 독일의 음악가였던 리하르트 바그너 역시 문학과 음악 그리고 미술까지 결합시키는 이른바 '총체적 예술'에 대한 개념을 강조하며 오페라 음악극을 작곡하고 있었답니다.
- ▲ 사진5 - 클림트의 패턴(왼쪽), 사진6 - 구스타프 클림트의 ‘포옹’(오른쪽). /‘빛의 벙커: 클림트’展·티모넷
클림트의 '포옹'이라는 그림〈사진6〉을 보면, 사람의 얼굴이 무늬 속에 푹 파묻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인물이라는 회화의 영역과 무늬라는 장식의 영역을 구별 없이 섞어놓은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입니다. 이 그림이 전시에서는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무늬와 흥겨운 리듬의 음악으로 나타납니다〈사진5〉. 이처럼 음악과 미술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몰입형 미디어아트는 옛 예술가들이 꿈꾸던 총체적 예술을 21세기 기술로 실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미엑스란?
이 전시는 프랑스의 '컬처스페이스'라는 회사와 국내 IT 회사가 함께 준비했어요. 이들은 이번에 선보이는 전시를 '아미엑스(AMIEX)'라 부릅니다. '예술(art)과 음악(music)에 푹 빠지는(immersive) 체험(experience)'이라는 뜻이에요. 디지털 영상으로 관람자의 온몸을 에워싸는 몰입형 미디어아트의 하나입니다. 회화(繪畵)는 어느 한 벽만을 차지하지요. 하지만 이번 전시에선 이미지들이 액자라는 틀을 벗어나 천장과 벽, 바닥까지 경계 없이 확장되는 걸 볼 수 있어요.
변화하는 이미지와 음악을 통해 시각과 청각으로 동시에 즐기는 체험 위주의 예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