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인도인 용병에 지급한 영국 화약에서 시작된 독립전쟁

입력 : 2019.04.03 03:00

[인도 세포이 항쟁]
세포이, 英이 고용한 인도 용병 뜻해… 20만명 중 대부분 힌두교·이슬람교
종교서 금기시한 소·돼지 기름 먹인 화약 포장지 받자 들고일어났어요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 총선 중 최대 규모인 인도 총선이 오는 11일 시작합니다. 유권자가 무려 9억명이에요.

그런데 인도 투표 방법은 기호와 이름을 보고 도장을 찍는 우리와 조금 다릅니다. '연꽃' '손바닥' '망치와 낫' 같은 정당 상징을 보고 투표하지요. 국민 네 명 중 한 명이 글을 읽지 못해서랍니다.

나렌드라 모디(69) 인도 총리가 속한 현 집권당 인도국민당(BJP)의 상징은 연꽃이에요. 연꽃은 인도 국화(國花)이기도 하고, 힌두교에서 신성시하는 꽃입니다. 모디 총리는 "1857년 세포이 항쟁에서 빵과 연꽃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연설했어요. 어떤 전쟁이었는지 알아볼까요?

인도가 선택한 저항의 상징… 빵과 연꽃

18세기 들어 무굴제국이 쇠퇴합니다. 영국은 이 틈을 타 무굴제국을 힘으로 제압하고 인도에 대한 영향력을 넓혀나가기 시작했어요. 총독을 직접 파견해 지배하는 대신동인도회사를 통해 간접 통치하는 방식이었죠. 동인도회사는 광활한 인도를 다스리기 위해 인도 현지인을 용병으로 고용했어요. 이들을 '세포이'라 불렀지요. 무굴 제국의 뿌리가 페르시아라 군인을 뜻하는 페르시아어 '세포이'가 용병이란 뜻으로 굳어졌다고 해요. 세포이는 19세기 중반 들어 20만명 가까이 늘어납니다.

1857년 세포이와 영국군이 델리 지배권을 두고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담은 그림
1857년 세포이와 영국군이 델리 지배권을 두고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담은 그림. 인도 출신 용병 세포이는 영국 지배에 저항해 무장봉기를 일으킵니다. 당시 인도는 저항의 상징으로 빵과 연꽃을 씁니다. /위키피디아
영국은 값싼 인도의 노동력을 활용해 대규모로 차·면화 등을 재배해 세계에 내다 팔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실상 인도 사람들의 불만이 점차 쌓입니다. 세포이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영국인 병사보다 처우도 나쁘고 진급도 느렸거든요.

1857년 인도에서는 마을에서 마을로 빵과 연꽃을 전하는 운동이 일어나 순식간에 인도 북부와 중부로 퍼져 나갔어요. 이웃 마을에서 빵을 받아먹고, 다시 빵을 구워 다른 마을로 날랐죠. 빵과 붉은 연꽃을 나누는 데는 영국에 맞서 함께 싸우자는 다짐이 담겨 있었어요. 세포이 부대도 동참했지요.

영국인들은 행동의 의미를 몰랐지만 그래도 긴장했어요. 당시 영국군 장교였던 리처드 바터는 이렇게 적습니다. "빵과 연꽃이 손에서 손으로 전해진다. 거리에서 호신용 부적이 불티나게 팔린다. 인도 사람들은 '모든 것이 붉어졌다'는 불길한 말을 속삭이고 있다."

머스킷총이 일으킨 독립전쟁

심상치 않은 분위기 속에서 그해 5월 인도 북부에서 세포이들이 들고일어납니다. 영국이 지급한 신형 머스킷총이 반란의 도화선이 됐어요.

인도국민당 상징 연꽃
인도국민당 상징 연꽃
이 총은 한 발 쏠 때마다 기름 먹인 종이에 낱개 포장한 화약을 이(齒)로 뜯어 총구멍에 장전해야 했어요. 문제는 영국이 화약을 포장한 기름 종이를 쇠기름과 돼지기름으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세포이는 대부분 소를 신성시하는 힌두교도이거나 돼지를 금기시하는 이슬람교도였어요.

세포이 병사들이 사격 훈련을 거부하자 영국은 군법회의를 열어 주동자를 처형하고, 나머지 병사도 불명예 제대시켰어요. 분노한 세포이 2000여명이 봉기했지요. 이후 전체 세포이 절반인 10만여명이 무기를 들었고 농부와 자영업자, 소규모 상공업자들이 동참했어요. 인도 대륙이 2년간 전쟁에 휩쓸렸죠.

세포이는 무굴제국 황제가 있던 델리를 손에 넣고 무굴제국 부활을 주장합니다. 때마침 영국은 터키와 크림전쟁을 벌인 직후라, 주력 부대를 곧바로 인도에 보내기 어려웠어요. 하지만 무굴제국에 탄압받던 시크교도가 영국 편에 서면서 전세가 뒤집힙니다. 3개월에 걸친 전투 끝에 영국은 델리를 탈환하고 세포이 항쟁을 진압했어요.

이 일로 기겁한 영국 정부는 이후 동인도회사를 통한 간접 통치를 접고, 직접 통치를 시작합니다. 1877년 인도 제국을 만들고, 영국 여왕이 인도 황제를 겸했어요. 이후 인도는 1947년 독립할 때까지 70년간 더 식민 통치를 견뎌야 했지요.


[무굴제국에 탄압받았던 시크교… 세포이 항쟁 때 영국 편에 섰죠]

영국인들은 1857년 세포이들의 봉기로 촉발된 전쟁을 '세포이 반란'이라 불렀어요. 하지만 인도인들은 '제1차 독립전쟁'이라 부릅니다.

이때 인도인들은 힌두교도, 이슬람교도 할 것 없이 똘똘 뭉쳐 영국에 맞섰어요. 하지만 유독 시크교도들은 영국 편에 섰지요.

시크교는 15세기 인도 북부에서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결합해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이슬람교였던 무굴제국 치하에서 최고 종교 지도자가 처형되고 이슬람교도보다 세금을 더 내는 등 탄압을 받았어요. 또 힌두교와도 교리 차이로 불편한 관계였습니다. 이들은 힌두교와 달리 카스트제도를 부정했거든요.

교리에 따라 머리카락과 수염 등 몸에 난 털을 자르지 않아 알아보기 쉽습니다. 2004~2014년까지 인도 총리를 지낸 만모한 싱이 시크교 출신입니다.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