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여리게 연주하다 '쾅!'… 잠든 청중 깨우는 '놀람 교향곡'

입력 : 2019.03.30 03:05

음악 거장들의 유머

며칠 후면 만우절이 찾아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럴싸한 농담이나 거짓말을 하고 속아 넘어가는 모습을 보며 함께 즐기는 만우절은 중세 유럽에서 기원했다고 해요. 근엄하고 진지할 것만 같은 클래식 작곡가 사이에서도 농담과 장난을 유독 좋아했던 이들이 있어요. 일부러 서툴게 작곡해 솜씨 없는 음악가들을 놀리기도 하고, 일상의 사소한 실수로 인해 짜증 난 마음을 피아노곡으로 만든 작곡가도 있죠. 만우절을 맞아 이런 장난기 넘치는 작곡가들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꾸벅꾸벅 졸던 청중, 화들짝!

'교향곡의 아버지' 요제프 하이든(1732~1809)은 교향곡을 100곡 넘게 쓰고 악장과 성격을 규정하고 정리했습니다. 그가 작곡한 교향곡은 2악장이 대개 느리고 조용했죠. 그래서 음악 감상을 지루해하던 일부 귀족은 2악장이 시작되면 으레 잠잘 준비를 했어요.

평소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하이든은 94번 교향곡에서 살짝 장난기를 발휘합니다. 조용한 변주곡 악장이 시작되고 점점 소리가 작아지던 악보에 갑작스러운 '포르티시모(매우 크게)' 지시를 써 놓아 오케스트라가 '쾅!' 하는 화음을 연주하게 한 거예요. 자고 있던 청중이 화들짝 놀란 건 말할 필요도 없죠.

하이든이 자세하게 지시를 해놓기도 했지만 요즘도 이 부분을 연주하는 지휘자는 놀라게 하는 부분을 과장하기 위해 완전히 사라지던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한순간 폭발하게 하는데, 그 효과가 아주 뛰어나서 들을 때마다 놀라게 돼요. 이 교향곡 별명이 뭐냐고요? '놀람 교향곡'입니다.

◇일부러 엉망으로 작곡한 '음악적 농담'


장난기 하면 모차르트(1756~1791)도 뒤지지 않았어요. 그가 1787년 만든 디베르티멘토(유희적 성격의 모음곡) K522는 흔히 '음악적 농담'이라 불려요. 당시 모차르트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발표하고 교향곡 작곡가로도 명성을 얻고 있었는데요, 워낙 실력이 뛰어나다 보니 일부러 어설픈 곡을 작곡해보고픈 마음이 들었나 봅니다.
2012년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하이든의 ‘천지창조’ 공연이 열리고 있어요. 근엄하고 진지할 것만 같은 클래식 작곡가도 때로는 장난기를 발휘합니다. 하이든의 ‘놀람 교향곡’이 대표적이죠.
2012년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하이든의 ‘천지창조’ 공연이 열리고 있어요. 근엄하고 진지할 것만 같은 클래식 작곡가도 때로는 장난기를 발휘합니다. 하이든의 ‘놀람 교향곡’이 대표적이죠. /위키피디아

이곡은 마치 실력이 부족한 작곡가가 서툴게 지어낸 관현악곡 같아요. 네 악장 구성인데 두 대의 호른과 관현악단의 합주로 구성됩니다.

모차르트답지 않게 어색한 화성 진행과 불필요한 멜로디의 도약이 눈에 띕니다. 호른이 수시로 우스꽝스러운 연주를 하는가 하면 어울리지 않는 대목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등 음악으로 한 편의 콩트 장면을 구현해놓은 것 같아요.

하이라이트는 피날레 악장입니다. 마지막에 바이올린과 비올라·첼로가 서로 다른 조성을 연주해 듣기 싫은 불협화음을 만들어냅니다. 결과적으로 연주자들이 작품을 우스꽝스럽게 망가뜨리는 형태로 곡이 마무리되는 것이죠. 클래식 음악을 알면 알수록 더 유쾌하게 들을 수 있는 곡입니다.

진지한 베토벤, 동전을 잃고 분개하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은 1795년 '잃어버린 동전에 대한 분노'라는 부제로 더 유명한 피아노곡을 씁니다. 원래 이름은 '론도 아 카프리치오'(변덕스러운 론도)입니다. 헝가리풍의 작품으로 명랑함과 활기로 가득 찬 곡입니다. 단순한 구성이지만 처음 등장한 주제가 여러 모양으로 변주되며 지루할 틈 없이 듣는 이들을 이끌어갑니다. 특히 오른손의 빠른 움직임은 매우 화려한데요, 정신없이 아래위로 움직이는 음표들은 마치 요리조리 굴러다니는 동전과 그걸 쫓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그린 것처럼 느껴져 재미있습니다.

작곡가는 악보와 거기서 나오는 소리로 자신의 가장 소중한 메시지와 인생 전체를 노래하는 사람들이죠. 거창한 철학이 아닌 웃음과 농담까지 음악으로 그려낼 수 있었던 그들의 여유와 자신감이 부럽습니다. 모두 즐거운 만우절 보내십시오. 단 너무 심한 장난은 그리 재밌지 않다는 것, 잘 알고 계시죠?

☞모차르트 作 '음악의 주사위 놀이'… 45조 가지 조합의 미뉴에트 즐기기

노는 것을 좋아하고 게임도 잘했던 모차르트는 주사위 놀이를 음악에 접목한 무작위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어요. ‘음악의 주사위 놀이’(K516f)라는 16마디 미뉴에트와 16마디 트리오(중간부)로 이뤄진 곡이죠. 먼저 미뉴에트는 이렇게 칩니다. 1~6까지 적혀 있는 정육면체 주사위 2개를 던지면 값이 2~12, 총 11가지가 나옵니다. 모차르트는 16개 마디마다 주사위를 던졌을 때 나오는 경우의 수 11개에 해당하는 곡을 작곡해뒀어요. 총 176개 멜로디를 만들어둔 것이죠. 그리고 마디마다 주사위를 던져서 해당 파트를 연주하도록 했습니다. 주사위 숫자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45조 가지가 넘는 조합이 나옵니다.

미뉴에트 다음 나오는 트리오 역시 16마디입니다. 모차르트는 정육면체 주사위 1개를 던졌을 때 나오는 여섯가지 경우에 대응하는 곡을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마디마다 주사위를 던져 16마디를 치게 되니 가능한 조합은 약 3조 가지입니다.

어떻게 배열하든 아름다운 음악적 진행이 가능하다는 것은 역시 모차르트라는 천재의 솜씨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주영·피아니스트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