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조선시대에 소 못먹었다고? 하루 1000마리씩 잡았죠

입력 : 2019.03.26 03:09

조선시대 소고기 문화

최근 북한의 김정은이 "전체 인민이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좋은 집에서 살게 하려는 것은 수령님(김일성)과 장군님(김정일)의 평생 염원"이라고 했어요. 1962년 김일성이 '쌀밥에 고깃국'을 처음 언급한 뒤로 반세기 넘게 세월이 흘렀는데도 북한 사람들이 여전히 궁핍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실토한 셈이에요.

어떤 사람은 "북한 주민이 밥을 굶는 것은 광복 이전부터 우리 민족이 원래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고기는 구경하기도 어려웠다는 거예요. 정말 그랬을까요?

임금부터 백성까지, 조선 '힘의 원천'

얼마 전에 이런 시각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책이 나왔어요. 한국사 연구자인 김동진 박사가 쓴 '조선, 소고기 맛에 빠지다'예요. 조선 사람들의 삶 속에서 든든한 먹거리 역할을 했던 동력이 바로 소고기였다는 거예요. '고기를 마음껏 먹은 건 임금님이나 양반들이었을 뿐이지 일반 백성이야 어디 그랬겠느냐'는 통념과는 반대로 백성도 소고기를 먹었답니다.

1425년(세종 7년)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귀신에게 제사하고 손님을 대접하는 데 쓰거나 먹기 위해 끊임없이 소를 잡는데, 1년 동안 잡은 소가 수천 마리에 이르렀다'고 해요. 제사를 지낼 때 소고기를 올린 것은 물론 명절마다 소를 잡아서 잔치를 벌였어요.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안병현

나라에선 '(농사를 짓게 해야 하니) 소를 잡지 말라'는 우금령(牛禁令)을 내려 소 도살을 금지했습니다. 하지만 조선 사람들의 소 탐식(貪食)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어요. 조선 후기 영조 임금 때인 17세기 후반에는 하루에 잡은 소가 1000여 마리로 늘어났죠. 1775년(영조 51년)에는 명절에 도축한 소만 해도 2만~3만 마리에 달했다고 해요. 한 해 먹기 위해 잡는 소가 약 40만 마리로 늘어난 겁니다. 당시 조선 인구는 지금 남북한 인구(약 7700만명)의 5분의 1도 안 되는 1500만명에 불과했어요.

'동국세시기'에는 18세기 서울과 경기에서 난로회(煖爐會)가 유행했다고 해요. 간장·계란·파·마늘 등으로 양념한 소고기를 석쇠에 구워 먹는 모임이었죠.

'잡지 마라' 해도 잡아먹어

어떻게 이렇게 소를 많이 잡을 수 있었을까요? 그건 그만큼 소를 많이 길렀고 번식을 많이 하도록 노력을 했기 때문이에요. 조선 왕조는 농업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던 나라였기 때문에 소는 대단히 중요했지요. 빈부(貧富)를 가르고 국력을 재는 척도가 바로 소였어요. 논밭을 가는 일에서 소 한 마리는 사람 9~10명의 노동력을 대신할 수 있었어요.

이러다 보니 나라 허락 없이 소를 잡아먹는 사람을 반역죄로 몰아 벌을 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명종 때 박세번이란 사람은 서울 사직동에 사는 무인들과 소를 잡았다가 '반역의 흔적이 있다'는 이유로 체포됐어요.

'부위별 미식'즐기기도

소고기를 먹는 일이 일상화되면서 조선 초부터 부위별로 다양하게 고기를 먹는 방법이 기록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특수 부위'라 부르는 방면의 미식가는 연산군이었어요. '지라와 콩팥을 한 부(部)씩 쓰고 소 심장을 구워 만드는 우심적(牛心炙)을 먹었다'는 거예요. 연산군은 "이건 꼭 먹어야 해"라며 제사 음식으로 쓰던 소고기를 일상 음식으로 쓰라는 제안까지 했어요.

조선시대 소고기는 구황 식품이기도 했어요. 백성들은 기근이 찾아 오면 농사짓는 데 사용한 소를 잡아먹으며 끼니를 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한국 소는 세조 때 개량… 오키나와 물소와 교배한 것이죠

세종 때 황희 정승이 "누렁 소와 검은 소 중 어느 소가 일을 잘하느냐"고 물었다는 일화가 있죠.

그런데 이 일화에 등장하는 '누렁 소'와 '검은 소'는 지금 소와 달랐어요. 세종의 아들인 세조 때 오키나와에서 들여온 물소를 토종 소와 교배시킨 품종이 지금의 한국소거든요.

조선 500년 동안 소는 급속히 늘어났어요. 조선 초만 해도 전국의 소가 2만~3만 마리였는데, 16세기에는 40만 마리, 17세기엔 100만 마리가 됐어요. 지금 남한의 소는 약 300만 마리입니다.




유석재 기자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