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최의창의 스포츠 인문학] 美 "야구는 우리가 발명" 주장… 사실 뿌리는 영국에 있어요

입력 : 2019.03.26 03:05

야구의 발상지

지난 23일 올해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됐어요. 우리나라·미국·일본에서 야구 인기는 절대적이죠. 보통 '미국의 발명품'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야구에는 '출생의 비밀'이 있답니다.

1903년 미국을 충격받게 한 기사가 나옵니다. 이 시기에 이미 메이저리그의 전신인 '내셔널리그'가 미국에서 국가적 인기를 누리고 있었는데, 영국 출신 미국 기자 헨리 채드윅이 "야구는 원래 영국 것"이라고 보도한 거예요.

채드윅은 최초의 야구전문기자로 꼽히는데, "야구는 내가 어렸을 적 영국에서 친구들과 함께 하던 '라운더스(rounders)'라는 공놀이로부터 발전했다"고 주장했죠.

미국은 발칵 뒤집혔어요. 아브라함 밀스 내셔널리그 총재를 중심으로 7명이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꾸리고 야구의 기원을 찾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1908년 최종보고서를 발표합니다. "1839년 뉴욕주 쿠퍼스타운에서 공과 방망이를 가지고 놀던 어린아이들에게 미 육군 장교 애브너 더블데이(Doubleday·1819~1893)가 땅바닥에 다이아몬드 구장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했던 것이 야구의 시초"라는 결론을 냅니다.
1846년 뉴욕에서 니커보커 야구 클럽이 경기하는 모습을 담은 판화. 야구는 ‘미국 발명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뿌리는 18세기 영국에 있어요.
1846년 뉴욕에서 니커보커 야구 클럽이 경기하는 모습을 담은 판화. 야구는 ‘미국 발명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뿌리는 18세기 영국에 있어요. /위키피디아

그런데 이 주장의 근거는 단 하나였습니다. 정신병을 앓는 70대 노인이 특조위에 보내온 편지였죠. 특조위가 더블데이의 이력을 추적했지만, 그가 야구에 대해 남긴 기록을 단 하나도 찾지 못했어요. 또 1839년은 더블데이가 미국의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에 다닐 때인데, 쿠퍼스타운으로 외출·외박을 나갔다는 기록이 없었어요.

그럼에도 특조위는 '야구는 미국 것'이라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더블데이가 시조"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후 채드윅의 주장은 잊힙니다. 쿠퍼스타운은 졸지에 야구의 발상지로 유명해졌지요. 더블데이가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쳐줬다는 잡초밭은 '더블데이 필드'라는 이름이 붙었고요.

그러나 쉽게 안 속는 까다로운 소수가 계속 문제를 제기했어요. 이들은 더블데이가 야구를 창시했다는 1839년보다 100년 가까이 이른 1744년 영국에서 출간된 동화책에서 야구에 대한 기록을 찾아냅니다. 세 사람이 '야구(Base Ball)'라는 구기 경기를 하고 있는 그림이었죠. 한 명은 공 던질 준비를, 한 명은 방망이로 칠 준비를, 그리고 한 명은 잡을 준비를 하는 장면이었어요. 결국 2000년대 들어 더블데이 야구 창시설은 '허구'라는 여론이 확산됩니다.

다만 뿌리야 어떻든, 지금 우리가 아는 현대 야구는 1845년 뉴욕에서 '니커보커 야구클럽'을 결성한 알렉산더 카트라이트가 시초라는 게 정설입니다. 18세기 영국 구기 종목에 뿌리를 두고 있더라도, 미국에서 독특하게 발전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최의창·서울대 체육교육과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