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개나리 폈는데 벚꽃은 아직… 피는 시기 다른 이유는?

입력 : 2019.03.21 03:05

개화시기

봄꽃은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왔다는 소식을 알려주는 신호예요. 기상 업체에 따르면 개나리는 지난 15일 서귀포를 시작으로 남부지방에선 16일, 중부지방에서는 23일부터 꽃망울을 터뜨린다고 해요. 이달 16일 전남 구례의 산수유 꽃축제를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는 봄꽃 축제가 열리기 시작하고요. 그런데 봄꽃이 피어나는 시기는 어떻게 예측할까요?

표준나무에서 3송이 이상 꽃 피면 '개화'

기상청이 봄꽃의 개화 시기를 예측해온 방법은 주요 도시와 봄꽃 군락지에 '표준나무'를 지정해 살펴보는 방법이 기본입니다. 표준나무에 세 송이 이상 꽃이 피면 공식적으로 '개화(開花)'한 거지요. 가끔 1월에도 때 이른 봄꽃이 한두 송이 피곤 하는데 이걸로 '봄꽃이 폈다'고 하지는 않는데, 표준나무에 꽃이 핀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서울의 벚꽃 개화 시기는 서울기상관측소가 있는 종로구 송월동에 자라는 벚나무에서 꽃이 세 송이 이상 피어야만 공식적으로 개화했다고 판정하는 방식이죠. 여의도 윤중로 벚꽃 군락지는 국회의사당 뒤에 표준나무 세 그루가 있어요. 세 나무 중 한 나무에서만이라도 꽃이 세 송이 이상 피면 개화한 거지요. 기상청은 이 표준나무들이 과거 꽃을 피운 시기와 장기 기후 자료 등으로부터 계산식을 만들어 매년 벚꽃이 피는 시기를 예측합니다. 이 예측에 따라 꽃 축제 일정도 잡히고요.

그런데 이 방식은 특정한 나무에 의존하다 보니 해당 지역을 제외하면 예측이 빗나갈 가능성이 크고, 이상기후 발생 같은 변수를 고려하기가 어려워요. 기상청 예보를 믿고 벚꽃축제 날짜를 잡았는데 정작 꽃은 축제가 끝난 뒤에야 피어나 낭패였던 일이 반복되며 비판도 커졌고요.

꽃 피는 데 필요한 온기 계산

그래서 개화 시기를 더 정확하게 예측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어요. 기상청은 '생물계절모형'을 도입해 더 정확한 예보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요. '생물계절모형'은 15년 전 이탈리아 생물기상연구소(IBIMET)가 처음 개발했어요. 이 모형은 '식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려면 일정 기간 이상 추운 날씨를 경험해야 하고, 꽃을 피우려면 일정 수준의 따뜻한 날씨가 필요하다'는 가설에 따라 만들어졌어요. 이 모형은 표준나무에 대한 오랜 기간에 걸친 관측 자료가 없어도 특정 지역별로 꽃이 언제 피어날지 예측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기온 정보만 있으면 대부분 예측이 가능하거든요.
개화시기 그래픽
그래픽=안병현

이 모형의 핵심 개념은 '가온량(加溫量)'입니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식물이 받는 온기가 얼마나 되는지를 계산한 수치입니다. 꽃이 피는 데 필요한 온도를 채우면 식물이 꽃을 피우는데, 이 누적 온도를 계산한 수치가 가온량입니다.

봄꽃마다 꽃 피는 시기가 다른 이유는 꽃마다 필요한 가온량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개나리는 가온량 84.2도, 진달래는 96.1도, 왕벚나무는 106.2도입니다. 개나리꽃이 먼저, 벚나무가 늦게 피는 이유가 자연스럽게 설명되죠. 현재 기상청은 예보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우리나라에 맞는 생물계절모형을 개발해 검증하고 있어요. 곧 더 정확한 예보가 가능해질 수 있겠네요.

유전자·호르몬 조사로 개화 시기 예측

개화와 관련된 꽃의 유전자나 호르몬, 단백질의 양을 측정해 언제 꽃이 필지 정확히 예측하는 방법도 최근 본격적으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어요. 일본 홋카이도대 환경과학과 사타케 아키코 교수팀은 2013년 유채과 식물인 자주장대나물의 개화 유전자 발현량을 측정해 개화 시기를 계산해냈죠.

아쉽게도 유전자 및 관련 단백질의 발현량을 파악하는 방법은 아직 실용화되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개화 시기를 미리 알면 지역 봄꽃 축제 준비뿐 아니라 과수원의 재배 계획을 세우거나 농작물이 늦서리를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겠죠. 올해는 개화 시기 예보가 정확하길 기대해 봅니다.

☞겨울이 너무 따뜻해도 봄꽃이 피지 않는대요

1920년대 옛 소련에서 유난히 따뜻한 겨울이 찾아왔어요. 그런데 겨울이 가고 봄이 왔는데도 밀이 꽃을 피우지 않았어요. 밀꽃이 피어야 수술에서 나온 꽃가루가 암술로 날아와 붙어 밀 알곡이 열려요. 이 알곡을 수확해 밀가루를 만들어 빵과 국수를 만들어 먹죠. 그런데 꽃이 피지를 않으니 수확할 밀 자체가 사라지게 된 겁니다.

우크라이나 출신 농학자 트로핌 리센코는 "겨울이 따뜻해서 꽃이 안 피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밀 씨앗을 냉장고에 넣어 낮은 온도에서 몇 주 동안 보관했다가 밭에 심는 실험을 해봅니다. 그러자 밀은 싹을 틔우고 정상적으로 꽃도 피웠죠. 여기서 '식물이 겨울잠에서 깨려면 일정 수준의 추운 날씨를 경험해야 한다'는 걸 확인합니다. '가온량'도 중요하지만 '냉각량'도 필요하다는 거죠. 리센코는 이를 '춘화처리(春化處理)'라고 불렀습니다. 겨울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추운 날씨를 경험해야 하는 식물을 인위적으로 섭씨 10도 미만의 저온에서 몇 주간 보관했다가 심는 거지요.




서금영·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