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빚내서 깔았던 철도… 청나라 몰락하는 계기 됐어요

입력 : 2019.03.20 03:00

[청나라와 철도]
1895년 청일 전쟁 패배한 직후 철도 중요성 깨달은 청나라 조정
철도 국유화 위해 자국민들로부터 헐값에 철도 부설권 빼앗았죠

지난달 '철도'가 세계적 화제가 됐어요. 베트남 하노이에서 미·북 회담이 열렸을 때, 김정은이 평양에서 하노이까지 4500㎞를 비행기 대신 기차를 타고 66시간 걸려 이동했거든요. 중국을 가로지르는 경로였지요. 중국 대륙엔 언제 처음 철도가 놓였을까요?

19세기 중국을 강타한 '기차'

중국에 처음 상업 철도가 생긴 건 청나라 말기였던 1876년입니다. 영국 상인들이 상하이에 '오송 철도'를 놓았죠. 그렇지만 청나라 조정은 당국 허가를 받지 않았다며 오송 철도를 사들여 철거해버렸어요. 청나라 눈에 영국인들이 들여온 증기기관차는 괴물 같은 소리를 뿜는 서양의 괴이한 물건일 뿐이었어요.

청나라가 철도의 중요성을 깨달은 건 1895년 청일 전쟁에서 패배한 직후였어요. 철도가 나오기 전에는 어느 나라에서나 모든 병력이 발로 이동해야 했어요. 기병은 말을 타고, 보병은 자기 발로 가는 것만 달랐죠. 하지만 증기기관차가 나온 뒤, 대규모 병력이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됐어요. 유럽 각국이 경쟁적으로 철도를 놓은 것도 이 때문이었지요.

중국 첫 상업 철도인 상하이 오송철도가 1876년 개통될 당시 모습을 그린 삽화입니다.
중국 첫 상업 철도인 상하이 오송철도가 1876년 개통될 당시 모습을 그린 삽화입니다. 청나라는 영국 상인들이 당국 허가 없이 철도를 놓았다면서 이듬해 철거합니다. 그렇지만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뒤 철도의 중요성을 깨닫고 약 20년 뒤에 오송철도를 다시 놓게 되죠. /게티이미지코리아
청나라도 뒤늦게 철도의 중요성을 깨닫고 중요한 지점에 철도를 건설하도록 허용했어요. 당시 청나라 최고 권력자 이홍장(李鴻章)이 "철도를 깔면 동서남북으로 교통이 편리해져서 적이 침입해 오더라도 잘 대응할 수 있다"고 했어요.

"철도 남에게 맡길 수 없어"

그렇지만 실제 철도를 까는 공사는 지지부진했어요. 지역 갑부들과 서구 열강이 중국 곳곳에 철도를 깔겠다고 나섰지만, 기술력도 부족하고 부정부패도 심해 좀처럼 진전이 없었어요. 뜻있는 사람들이 돈을 모아 직접 철도를 건설하자는 운동도 있었지만, 자금력이 부족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1911년 성선회라는 기업인이 청나라 우전부 대신으로 임명됩니다. 우전부는 우편과 통신을 맡은 관청이에요.

그는 "철도를 국유화하자"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민영 철도를 전부 국유화한 뒤, 서구 열강에서 돈을 빌려 중국 전역을 잇는 철도망을 완성하겠다는 발상이었죠.

이후 청나라 조정은 자국 철도업자들 손에서 헐값에 철도 부설권을 빼앗았어요. 청나라는 "남은 돈은, 철도망을 완성하고 나서 영업이익이 났을 때 10~15년에 걸쳐 돌려주겠다"고 했어요. 그걸 믿는 사람은 없었어요.

일반 백성도 분노했어요. 청나라는 중국 땅 북쪽에 살던 만주족이 중국에서 원래 살던 한족을 제압하고 세운 나라였어요. 청나라 조정은 전부터 광산 채굴권, 염전 개발권 같은 이권을 서구 열강에 무수히 내줬어요. 철도 국유화를 결정한 이홍장 내각에서 전체 13명 중 9명이 만주족이었고요. 한족 백성은 '만주족이 서구 열강에 나라를 팔아먹는다'는 배신감을 느꼈어요.

신해혁명 도화선 된 철도 국유화

결국 반발이 커지면서 1911년 5월, 쓰촨성에서 '보로운동회(保路運動會)'라는 조직이 태어납니다. 이들이 철도 국유화 반대 운동을 본격적으로 벌이죠. 다른 지역 백성도 합세해 규모가 점점 커졌어요.

결국 1911년 10월 10일 후베이성 우창에서 혁명이 일어나 청나라가 무너집니다. 이게 신해혁명이에요. 이듬해 난징에서 민족주의자 쑨원(孫文)이 이끄는 중화민국 임시정부가 설립됐지요.

청나라를 지키겠다며 시작한 철도 국유화 사업이 되레 청나라 멸망의 도화선이 된 거죠. 신해혁명 현장인 우창은 지금 우한시가 됐습니다. 공교롭게도 김정은이 탄 열차가 지나간 도시가 우한이에요.


[서양 문물에 반대해 철도 파괴한 의화단]

철도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중국인들이 기겁했어요. 철도를 포함한 서양 근대문명을 빨리 받아들이자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일반 국민들은 상당수가 "서양 문물이 들어와선 안 된다"고 반대했어요.

특히 '의화단(義和團)'이라는 단체는 철도가 외국인의 문물을 빠르게 퍼뜨리고 있다며 철도 파괴에 앞장섰어요. 이 단체는 의화권이라는 무술을 수련하는 단체였는데, 수련을 통해 칼과 총도 막아낼 수 있다고 믿었어요.

이들이 서양인 목숨까지 빼앗자, 열강은 청나라에 군대를 파견해 의화단을 진압했어요. 청나라 조정은 막대한 배상금을 내야했어요.



안영우 세그루패션디자인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