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경국대전 "관리들 여름엔 빨리, 겨울엔 늦게 출근하라"

입력 : 2019.03.19 03:09

조선 시대의 근무 시간

미국이 지난 10일부터 서머타임을 실시했어요. 서머타임은 여름철에 표준시보다 시계를 1시간 앞당겨 놓는 제도를 가리켜요. 공식 명칭은 '일광절약시간제'랍니다. 햇빛이 나는 낮 시간을 잘 이용해 시간을 아낀다는 뜻이에요.

서머타임은 19세기 말 뉴질랜드 곤충학자가 맨 처음 제안했어요. 여름엔 해가 일찍 뜨고 늦게 지니까, 한 시간씩 시간을 당기면 하루를 길게 쓸 수 있다는 취지였어요. 그 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국가 단위로 맨 처음 도입했어요. 다만 최근에는 이처럼 시간을 인위적으로 변경하는 것이 인체 수면 리듬을 해쳐서 건강에 좋지 않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어요.

서머타임은 주로 아시아에 비해 해가 나는 시간이 짧은 유럽에서 발달했어요. 하지만 조선에도 마치 서머타임처럼 여름철과 겨울철에 시간을 조정하는 제도가 있었다고 해요.

최고 법전에 출퇴근 시간 정해둔 조선

1685년 한여름에 숙종은 관청에서 근무하는 관리들이 출퇴근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고 이런 명령을 내렸어요.

"관원들은 묘시(卯時)에 출근하고 유시(酉時)에 퇴근하도록 법전에 적혀 있는데, 직무 태만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니 매우 온당하지 못하다. 이제부터는 법전에 따라 출퇴근을 하도록 하라. 이처럼 엄하게 일렀는데도 받들어 행하지 아니하면 마땅히 무거운 벌이 있을 것이다."

묘시(卯時)는 오전 5~7시, 유시(酉時)는 오후 5~7시예요. 묘시에 나가 일을 시작하고 유시에 일을 마친다 하여 '묘사유파(卯仕酉罷)'란 말도 있었지요. 이를 법으로 규정한 묘유법(卯酉法)이 조선시대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에 들어 있어요.

진시에 출근하고 신시에 퇴근하다

묘사유파에 대한 기록은 이미 조선 초기인 태종과 세종 때에 등장해요. 1485년(성종 16년) 경국대전이 시행되기 전부터, 관리들은 묘유법에 따라 일해온 것 같아요.

그런데 경국대전에는 묘사유파 기록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바로 뒤에 괄호로 다음과 같은 내용도 포함돼 있어요. "해가 짧은 때에는 진시(辰時·오전 7~9시)에 출근하고 신시(申時·오후 3~5시)에 퇴근한다."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안병현

즉 해가 짧은 겨울철(11~2월)에는 보통 때보다 조금 늦게 출근해 조금 일찍 들어가도록 따로 규정을 세워둔 거죠. 이를 '진사신파(辰仕申罷)' 또는 '진신사(辰申仕)'라고 했어요. 오늘날의 서머타임제도처럼 시각을 앞당겨 놓은 것은 아니지만, 낮 길이에 따라 근무하는 시간을 조정했다는 점은 비슷해요.

고려시대에도 법에 규정된 것은 아니지만 왕명으로 낮 길이에 맞춰 출퇴근 시간을 조정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고려사절요'에 나오는 고려 문종 때 기록이지요.

"계절에 따라 낮 길이가 다르니 이제부터 해가 길 때는 진시가 시작될 때(오전 7시쯤) 출근하고, 해가 짧을 때는 사시가 시작될 때(오전 9시쯤) 출근하라."

대다수 농민에게는 적용 안 돼

그렇다면 관리가 아닌 일반 백성의 근무 시간은 어땠을까요? 조선시대 농민들은 이른 새벽인 3~5시쯤에 일어나 밥을 먹고 일하러 나갔다가 해가 질 때쯤 집으로 돌아왔대요. 해의 움직임에 따라 정한 24절기에 맞춰 1년 내내 씨 뿌리기, 모내기, 김매기, 수확 등 바쁘게 농사일에 매달려야 했고요. 관리들이 겨울철에 느지막이 출근하는 게 농민들에겐 다른 나라 얘기였을지 몰라요. 농민들은 겨울에도 땔감을 줍고 짚신을 삼고 농기구를 손보느라 바빴을테니까요.

☞1948년부터 1960년까지 우리나라도 서머타임 실시했죠

우리나라도 서머타임을 실시했었대요. 우리나라에서 서머타임이 처음 시행된 것은 남한에 단독정부가 들어서기 전 미군이 통치하던 시기인 1948년 6월 1일이었다고 해요. 그 뒤로 1960년까지 서머타임이 시행됐지만 효과가 크지 않아 중단됐어요.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전인 1987년부터 1988년까지는 1988년 서울올림픽 경기 중계 시간 등을 고려해 다시 서머타임을 시행했어요. 그렇지만 국민의 생활 리듬을 깨고 혼란만 일으킨다는 여론이 빗발쳐 올림픽이 끝난 뒤 다시 폐지했어요.


지호진·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