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여성 음악가 불모지' 19세기 유럽서 9세에 데뷔한 스타
입력 : 2019.03.16 03:00
[클라라 슈만]
5세 때 피아노·작곡에서 천재성 보여
지난 8일은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이었어요. 1909년 뉴욕 여성 운동가들이 '여성의 날'을 정하자고 처음 주장했어요. 이후 바다 건너 유럽에서도 광범위한 호응이 일어, 세계적으로 퍼졌답니다. 전 세계 여성의 위상과 성 평등 의식에 대해 생각해보는 중요한 기념일이에요.
클래식 음악의 역사에서도 여성 음악가가 활동했다는 기록은 잘 눈에 띄지 않아요. 한 세기 전만 해도 세계는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여성의 활동을 억눌렀으니까요.
클래식 음악의 역사에서도 여성 음악가가 활동했다는 기록은 잘 눈에 띄지 않아요. 한 세기 전만 해도 세계는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여성의 활동을 억눌렀으니까요.
- ▲ 클라라 슈만은 여성들에게 불모지나 다름없던 19세기 유럽에서 1300회 이상 피아노 연주회를 열며 이름을 날린 음악가였어요. 그는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과 결혼해 아이 일곱을 기르면서도 음악 활동을 계속했지요. /게티이미지코리아
클라라는 1819년 라이프치히에서 저명한 피아노 교육자 프리드리히 비크 교수의 딸로 태어났어요. 5세 때부터 피아노와 작곡 공부를 시작해 놀라운 천재성을 보였죠. 아홉 살에 데뷔했을 때 이미 기술적으로는 더 배울 것 없이 완성된 상태로, 음악성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그 후 클라라는 11세 때부터 유럽 전역으로 연주 여행을 다녔는데 연주회마다 성공을 거두며 단숨에 스타로 자리 잡게 됩니다. 멘델스존, 쇼팽을 포함한 당대 최고 음악가들이 천재 소녀의 연주 실력에 놀라움을 표시했죠.
아직 소녀였던 클라라의 마음을 사로잡은 사람은 아버지의 제자였던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그녀가 14세 때였어요. 23세 청년 슈만은 클라라의 미모와 음악적 재능에 반해 아홉 살 나이 차에도 열렬히 구애했죠.
- ▲ 옛 독일 100마르크 지폐에 실린 클라라 슈만. 뒷면에는 그가 연주한 그랜드피아노가 있어요. /게티이미지코리아
안타깝게도 행복한 나날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어요. 20대부터 나타나던 슈만의 정신병이 심해지기 시작했고 덩달아 육체적으로도 쇠약해졌던 것이죠. 슈만은 뒤셀도르프로 거처를 옮겨 지휘와 작곡을 병행하려 했지만 그곳 오케스트라와 갈등이 깊어지자 극심한 정신적 혼란을 겪었고, 급기야 1854년 2월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다행히 생명을 잃지는 않았지만, 그 후 2년간 투병하다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남편이 떠난 뒤 홀로 남은 클라라는 슬픔에 빠질 새도 없이 일곱 명이나 되는 자녀를 기르면서, 슈만의 작품을 소개하고 알리는 데 힘썼어요. 고달픈 그녀의 삶에 위로가 되어준 젊은 음악가가 있었는데, 바로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입니다.
함부르크 출신의 브람스는 1853년 9월 슈만과 만나 그에게 음악성을 인정받은 뒤 전 유럽에서 주목받는 작곡가가 됐어요. 브람스는 슈만이 숨진 뒤에도 클라라와 가족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며 관계를 이어나갔어요. 클라라도 브람스의 작품 활동에 여러 가지 조언을 하며 힘을 보탰죠. 우리가 알고 있는 브람스의 걸작 대부분이 클라라의 정성 어린 도움으로 완성됐다고 해요.
클라라는 작곡가로도 뛰어났어요. 많은 곡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젊은 시절 발표한 피아노 협주곡, 피아노 3중주, 가곡 등은 지금도 음악회장과 음반에서 들을 수 있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또 1878년부터는 프랑크푸르트를 중심으로 선생님으로 활약하면서 많은 제자를 길러냈지요.
클라라는 연주자가 작곡가의 의도를 주관적으로 해석하거나 바꾸는 일을 경계했어요. 악보에 충실한 연주를 지향하며 모차르트와 베토벤 등 유명 작곡가 작품을 제자와 청중에게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클라라는 평생 1300회 이상 연주회를 하다가, 1896년 77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클라라 슈만의 삶은 피아니스트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알차게 채워진 눈부신 삶이었어요. 결혼 전에 '엄친 딸'이었고, 결혼 후에는 '수퍼 맘'으로 살았던 그녀를 여성으로서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 더 주목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부부가 함께 베토벤 곡 공부해… 남편은 작곡, 아내는 연주했죠]
클라라는 남편 슈만의 작품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두 사람은 바흐와 베토벤이 남긴 다성음악들을 꼼꼼히 공부했는데요, 그 결과 슈만의 작품은 결혼 전보다 더 풍성해졌죠. 두 사람이 결혼한 1840년은 사랑이 넘치는 멜로디의 가곡을 많이 써내 '가곡의 해'라 불리고, 이듬해인 1841년은 교향곡에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교향곡의 해'라 불립니다. 그런가 하면 1842년은 현악 4중주, 피아노 4중주, 피아노 5중주 등 뛰어난 실내악곡이 많이 발표되어 '실내악의 해'가 됐어요. 슈만의 걸작들이 태어나기까지 클라라의 도움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