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막 내리는 日 헤이세이 시대… 바뀔 연호는 아직 '극비'죠
일본 연호
◇일본만 아직 연호를 써요
연호는 햇수를 표시하는 다양한 기년법(紀年法) 중 하나예요. 기년법이란 특정한 시점을 기준으로 이후 몇 년이 흘렀는지 햇수를 헤아리는 방법이죠.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건 예수가 태어난 해를 기준 삼은 서력(西曆)이에요. 2019년은 예수가 태어난 지 2019년째 되는 해입니다.
한·중·일, 베트남 같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는 이와 달리 왕이 정한 연호를 주로 썼어요. 기원전 140년 중국 한무제(漢武帝)가 '건원(建元)'이라는 연호를 쓴 게 최초입니다. 20세기 들어 한국, 중국, 베트남은 더 이상 연호를 쓰지 않지만, 일본은 지금도 대출 신청서부터 부동산 계약서까지 일상생활에서 광범위하게 연호를 써요. '반드시 서력을 쓰라'고 법으로 정해놓은 건 전 세계 공통의 공업 규격 정도랍니다.
고대부터 중세까지는 일본도 한 사람의 일왕이 여러 개의 연호를 썼어요. 15세기 고바나소(後花園) 일왕 같은 사람은 36년간 왕위에 머무르며 여덟 번 연호를 바꿨지요. 하지만 근대 이후엔 일왕 한 사람이 한 개의 연호를 쓰는 것으로 굳어졌어요. 일왕이 살아 있을 땐 이름 대신 그냥 '긴죠(今上·지금 일왕)'라고 부르다가 일왕이 숨지면 재위 기간 연호를 따서 '메이지(明治) 일왕' 식으로 부른답니다. 흔히 히로히토(裕仁)라고 알려진 사람이 지금 아키히토 일왕의 아버지인데, 일본에선 쇼와(昭和) 일왕이라고 해요. 히로히토는 개인의 이름이고, 쇼와는 그가 재위한 기간(1926~1989)의 연호였어요. '평화롭게 세계 각국과 공존 공영한다'는 뜻인데, 실제론 군국주의로 치달아 수많은 나라에 엄청난 고통을 안겼죠.
◇지금 일왕은 헤이세이, 다음 일왕은?
지금 일왕은 1989년 1월 53세로 즉위했어요. 어린 시절 전쟁을 겪어 반전 의식이 강하고, 주변국에도 아주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어요. 공식 석상에서 자신은 "백제의 후손"이라고 밝혀 일본 국수주의자들을 당황시키기도 했죠.
- ▲ 1989년 1월 오부치 게이조 당시 일본 내각 관방장관이 아키히토 일왕 즉위에 맞춰 연호 ‘헤이세이(平成)’를 발표하고 있어요. 아키히토 일왕이 곧 퇴위하기로 하면서 일본 정부는 새로 쓸 연호를 다음 달 1일 발표하기로 했어요. /게티이미지코리아
그가 즉위한 날, 일본 정부는 '헤이세이(平成)'라는 새 연호를 발표했어요. 헤이세이는 중국 고전에 나오는 '지평천성(地平天成)'에서 따온 말로 국내외가 모두 평화를 이룬다는 뜻이에요.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당시 일본 내각 관방장관이 '헤이세이'라고 적힌 흰 종이를 들어 보이는 사진이 유명하죠. 이후 오부치 장관은 한동안 일본 초등학생들 사이에 '헤이세이 오지상(헤이세이 아저씨)'이라 불렸답니다. 올해는 헤이세이 31년이에요.
다음 일왕은 어떤 연호를 쓸까요? 아직은 극비랍니다. 일본 정부는 학자들과 국회의장단의 의견을 참고해 지난달 8일 다음 연호를 정했어요. 4월 1일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그때부터 새 일왕이 즉위할 때까지 한 달 여유가 있으니, 그 사이 일본은 달력부터 공문서까지 햇수가 들어가는 인쇄물은 전부 새로 찍느라 바쁠 거예요.
아키히토 일왕이 고령을 이유로 '생전 퇴위'를 선택해 새 연호를 준비할 여유가 생긴 거지요. 우리나라 청와대 비서실에 해당하는 기관이 '내각 관방'인데요, 일본은 비상사태에 대비해 평소에도 늘 그곳 금고에 연호 후보 3개를 보관한다고 해요.
☞고구려에선 영락(永樂), 대한제국에선 광무(光武)
과거 한자문화권에선 연호를 광범위하게 사용했어요. 중국에서 처음 시작돼 한국, 일본, 베트남 등지로 널리 퍼졌죠. 중국 연호를 가져다 쓴 나라도 있고, 독자적인 연호를 쓴 나라도 있어요.
한국의 경우 광개토대왕 때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우리는 고려 전반기까지 독자적인 연호를 쓰다가 차차 중국 연호를 쓰게 됐어요. 그러다 대한제국 때 다시 독자적인 연호를 썼어요. 1897년부터 1907년까지 고종이 광무(光武)라는 연호를 썼고, 이후 1910년까지 순종이 융희(隆熙)라는 연호를 썼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