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고려 공민왕 때부터 관리들은 갓으로 신분 드러냈어요
입력 : 2019.03.12 03:00
[갓의 역사]
고구려·신라에서부터 쓰기 시작해 조선 시대에 본격적으로 유행했어요
시기별로 인기있는 갓 모양 달랐죠
"와우~ 모든 등장인물이 아주 멋진 모자를 쓰고 있잖아!" "저 모자 나도 좀 사야겠다." 요즘 세계 네티즌 사이에서 갑자기 '한국 모자'가 관심을 끌고 있어요.
다름 아닌 우리 전통 '갓'이랍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이 인기를 끌면서 갓을 처음 본 외국 시청자들이 '원더풀'을 외치고 있는 것이지요. 갓은 언제부터 쓰게 됐던 걸까요?
◇태종 "갓 쓰고 궁중 출입 금지"
고구려 벽화나 신라 금령총 출토 유물 등을 볼 때, 우리나라에선 삼국시대부터 갓을 썼던 것으로 보여요. 이후 '홍길동 모자'로 알려진 패랭이와 초립 형태를 거쳐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면 흑립(黑笠)의 형태가 정착됩니다. 우리가 사극에서 흔히 보는, 넓은 원형 챙 위에 아래가 위보다 조금 넓은 원통을 올려놓은 모양의 검은 모자지요. 여기서 머리를 덮는 부분을 '모자(帽子)', 햇볕을 가리고 비바람을 피하기 위한 차양 부분을 '양태(凉太)'라고 했습니다.
- ▲ /그림=안병현
그런데 이걸 못마땅하게 여긴 임금이 있었습니다. 1417년 12월 20일 태종 임금은 "조로(朝路·여러 신하가 조회를 위해 오가던 길)에 비나 눈 오는 날이 아닌데도 대소 관리가 갓을 쓰고 있어 불편하다"고 심기를 토로했어요. '임금인 나도 차양 없는 모자를 쓰는데 너희 신하들이 감히 그런 걸 쓰고 다니느냐'는 의미였을 거예요. 다음해부터 조정에서는 사모(紗帽)만 쓰게 했어요. 요즘 전통혼례에서 신랑이 쓰는 모자입니다.
◇높아졌다 넓어졌다, 조선의 '갓 패션'
그 뒤로 갓은 궁궐 밖 일상생활에서 양반 남성들이 쓰는 '조선의 모자'가 됐습니다. 우선 머리털을 정수리 위로 끌어올려 상투를 틉니다. 그다음 앞 머리카락을 걷어 올려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정하는 그물 모양의 '망건'을 두르고, 일종의 속 모자인 '탕건'을 씁니다. 집 안에선 이 상태로 있고, 외출할 때는 그 위에 갓을 썼습니다.
조선왕조 500년 내내 갓 모양은 다 똑같았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15세기 성종 때만 해도 모자 부분이 둥글어 '스님 모자 같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연산군 때 이 부분에 모서리가 생겼고, 중종 말기에 이르면 영국 신사들이 쓰는 톱해트처럼 무척 높아졌습니다. 그러다 또 명종 때엔 모자 부분이 낮아지고 양태가 넓어졌답니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 변화를 겪은 뒤 순조 말기엔 '양 어깨는 물론 앉은 사람을 완전히 덮을 만큼' 양태가 넓어졌는데,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개혁 정책의 하나로 갓 폭을 줄이도록 했습니다.
◇단발령과 함께 '낡은 것'으로 여겨져
갓의 위기는 1895년(고종 32년) 상투를 자르도록 하는 단발령(斷髮令)과 함께 찾아옵니다. 앞에서 설명했듯 갓은 상투를 튼 머리에 최적화된 모자였기 때문이죠. 간혹 상투 없이 갓만 쓰는 일명 '맨갓쟁이'도 없지 않았지만, 새로운 헤어스타일에는 아무래도 신식 모자가 어울렸던 것입니다. '갓 쓰고 자전거 탄다'는 속담처럼, 이제 갓은 새 문물과는 걸맞지 않은 낡은 것처럼 여겨지게 됐습니다.
그래도 갓은 오래도록 한국인의 상징이었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역이나 강남 고속터미널 앞에선 더러 갓 쓰고 상경한 시골 노인을 볼 수 있었습니다. 21세기 한류 열풍과 함께 '갓 패션'도 부활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갓의 재료는 말 갈기·꼬리털]
갓의 재료는 말의 갈기나 꼬리털인 '말총'이에요. 고려 말에 말을 키우는 목장이 늘어나면서 가볍고 질긴 말총이 갓의 표준 재료가 됐답니다. 갓을 만들려면 말총으로 모자 부분을 만드는 일, 양태를 엮는 일, 모자와 양태를 모아 완성하는 세 가지 공정을 거쳤습니다. 양태가 아래로 조금 우그러진 듯 곡선을 이루도록 모양을 잡는 일을 '버렁 잡는다'고 했는데 가장 어렵고 숙련이 필요한 작업이었다고 해요.
이런 과정을 거쳐 제대로 만들어진 갓은 쓴 것 같지 않게 가볍고, 얼굴에 옅은 그림자를 드리워 선비의 기품을 드러날 수 있게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