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플라스틱 삼킨 새, 쓰레기로 만든 숲… 환경 재앙 알렸죠
크리스 조던: 아름다움 너머 展
- ▲ 크리스 조던
매주 한 번 쓰레기 분리수거일이 돌아옵니다. 수북하게 쌓아 놓은 쓰레기 더미들을 트럭이 실어 가는 걸 보면 가끔 '이 많은 것이 다 어디로 갈까?' 걱정되기도 해요. 단지 편리하다는 이유로 일회용품들을 생각 없이 쓰고 버리다가는 머지않아 쓰레기로 가득 찬 환경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부터 편의점 등에서 일회용 비닐봉지는 꼭 필요한 사람만 사서 쓰게 하고 커피 전문점에서도 매장 내에서는 머그컵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어요. 그런데 말로 아무리 강조해도 피부에 잘 와닿지 않는 것이 바로 환경문제이기도 해요. 훗날 생길 문제 때문에 당장 편한 것을 포기하기란 어렵죠.
여기 환경문제가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라는 걸 직접 보여주고 가슴으로 느끼게 해주는 예술가가 있습니다. 미국의 크리스 조던(56)이에요. 그는 시에라클럽 앤설 애덤스상을 비롯하여 여러 환경예술상을 수상했고, 전 세계 미술관에서 100회가 넘는 전시를 했어요. 이번에 우리나라에서도 조던의 사진과 영화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어요. '크리스 조던: 아름다움 너머' 전시는 성곡미술관에서 5월 5일까지 열려요. 이어 부산, 순천, 제주에서 순회전도 진행됩니다.
- ▲ 작품① ‘수퍼마켓 종이가방들’ 2007. 쓰고 버리는 일회용 종이봉투 사진을 대나무숲 모양으로 114만 번 이어붙인 작품이에요. /성곡미술관·ⓒChris Jordan
작품1은 멀리서 보면 부드러운 아침 안개 속에 싸인 고요한 대나무 숲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은 수퍼마켓에서 물건을 담을 때 쓰고 버리는 일회용 종이봉투들이에요. 대나무의 마디마디는 미국 수퍼마켓용 갈색 종이봉투 114만개로 이뤄졌어요. 작가가 종이봉투 이미지를 114만 번 붙여 만든 디지털 사진 작업입니다. 이렇게 숫자를 밝히는 이유는 대량 소비 규모를 상상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라고 해요. '어마어마하다'는 말보다 더 와닿지 않나요.
- ▲ 작품② ‘비너스’, 2011. 비닐봉지 이미지 24만 조각을 이어 보티첼리의 명화 ‘비너스의 탄생’을 패러디했어요. /성곡미술관·ⓒChris Jordan
어린 시절 조던은 사진작가인 아버지와 화가인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어요. 대학에서 문학과 법학을 전공했고, 10여 년간 변호사로 활동하다 예술가의 길에 들어섰지요. 그래서인지 예술적 감성과 인문학적 사유가 그의 작업의 심지를 이루고 있어요. 무엇보다 환경운동가 레이철 카슨의 책 '침묵의 봄'을 읽은 것이 그의 작업에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 ▲ 작품③ ‘앨버트로스의 꿈’, 2012. 먼 곳을 바라보는 앨버트로스의 옆모습이에요. /성곡미술관·ⓒChris Jordan
- ▲ 작품④ ‘앨버트로스’, 2012. 다정하게 새끼를 돌보는 앨버트로스의 모습을 촬영했어요. /성곡미술관·ⓒChris Jordan
- ▲ 작품⑤ ‘미드웨이 시리즈 중에서’, 2009. 아기새가 죽은 뒤에도 먹이에 섞인 플라스틱이 아기새 배 속에 썩지 않고 남아있는 장면을 찍었어요. /성곡미술관·ⓒChris Jordan
조던에게 영감 준 '침묵의 봄'… 서구 환경 운동의 시작 알린 책
크리스 조던이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는 '침묵의 봄'은 어떤 책일까요.
이 책은 미국 해양생물학자 레이철 카슨이 1962년 펴냈어요. 카슨은 책에서 살충제와 제초제 같은 화학약품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면서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고 고발했지요.
책 제목은 봄이 와도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기 어려워졌다는 뜻을 담고 있어요. 모기처럼 사람에게 해로운 벌레를 잡겠다고 살충제를 마구 뿌렸다가, 새들이 떼죽음을 당한 거예요.
이 책은 과학이라는 살충제나 농약 같은 문명의 이기(利器)가 의도치 않았던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경각심을 널리 퍼트렸어요. 이 책이 나온 뒤로 살충제 DDT 사용량이 크게 줄었죠. 현대 서구 환경 운동의 시작을 알린 책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