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나해란의 뇌과학 교실] 우리 장 속엔 '행복 호르몬' 만드는 미생물도 있답니다

입력 : 2019.03.06 03:00

제 2의 뇌, 장(腸)

최근 의학계에서 제2의 뇌라고 부르는 곳이 있어요. 바로 장(腸·소장과 대장)입니다. 장은 배설물을 처리하는 기관이고, 몸의 아래쪽에 있죠. 그런데 장과 뇌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감정을 느끼고 판단을 할 때 영향을 준다는 겁니다.

세간에는 위나 장이 마음 혹은 뇌와 연관 있다는 속설이 많았어요. '위가 좋지 않은 사람은 예민한 체질이다' '장이 좋지 않은 사람은 성공에 대한 염려가 있다' 이런 말들이죠. 과학이 발달하면서 이런 얘기는 근거가 없다는 게 밝혀졌죠.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속설과는 다른 의미로 장과 뇌가 매우 긴밀하게 연관됐다는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어요.

우리 장 속엔 '행복 호르몬' 만드는 미생물도 있답니다
뇌와 장은 '미주신경'으로 연결돼 있어요. 물론 뇌신경 세포는 온몸 구석구석에 빼놓지 않고 퍼져 있어 뇌가 몸을 통제할 수 있게 하지요. 그런데 미주신경은 뇌에서 직접 뻗어 나오는 신경 중에서 제일 길고 복잡한 기능을 가진 특별한 신경 다발입니다. 미주신경은 뇌의 컨디션을 장으로 직접 전달하지요. 이 굵은 통로는 마찬가지로 장 컨디션을 뇌에 전달해주죠.

이렇게 장과 뇌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데, 장 속에는 무수한 미생물이 있어요. 박테리아, 효모를 포함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미생물이 셀 수 없이 많다고 하죠. 이들도 각기 생명체인데 살아남기 위해서 장 속에서 각자 사투를 벌이고 있어요. 우리 몸 안에 먹고 싸고 태어나고 죽는 미생물이 무수히 있는 거죠. 이 미생물은 우리 몸에 도움이 되는 영양소를 배출하기도 하고, 독이 되는 염증 물질도 만들지요. 미생물들의 활동이 우리 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요. 태어날 때부터 죽는 날까지 발달과 성장에 관여한다고 알려졌어요.

특히 미생물들은 뇌에 영향을 주는 호르몬도 분비하죠.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진 세로토닌 같은 물질이나 불안감을 없애 주는 호르몬 등, 뇌에서 분비되는 여러 신경전달물질이 장에서도 미생물에 의해 만들어져 뇌에 영향을 준다고 해요. 특정 미생물이 없으면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대요. 장내 미생물 활동에 따라 수면 주기가 바뀐다는 연구도 있고요.

이 때문에 최근에는 장의 미생물을 바꾸면 뇌가 건강해진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해요. 섬유소가 많은 채소나 치즈 같은 발효 식품처럼 장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들은 뇌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있고요.

장 미생물 구성을 바꾸기 위해서 좀 기괴한 치료를 하기도 합니다. 건강한 사람의 대변 안에 있는 미생물을 다른 사람 몸에 이식하는 방법이죠.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특수 처리해 장내 미생물 용액을 만들어 이를 내시경이나 관장을 통해 환자의 장 속으로 옮기는 거예요. 예를 들어 낙천적이고 행복한 사람의 변을 항상 우울한 사람에게 이식하면 우울증이 나아질 수 있다는 겁니다.



나해란 여의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