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스메타나, 조국의 자연·역사 담은 곡으로 체코 독립 일깨웠죠
외세의 압제에 음악으로 맞선 작곡가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 곳곳에서도 민족주의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힘을 앞세운 외세에 맞서 싸우는 데 남녀노소가 없었답니다. 예술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직접 총칼을 들고 일어서진 않았다 해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음악가들은 자신들의 가장 큰 무기인 음악으로 부당한 압제에 항거하곤 했습니다. 유럽에서는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국민음악파 작곡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집니다.
동유럽 체코의 국민음악파 작곡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1824~1884)는 조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각 지방의 전설 등을 토대로 음악을 만들어 국민의 애국심을 끌어올렸습니다. 스메타나는 50세 되던 1874년 청력을 잃었어요.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그해부터 조국에 대한 사랑과 자긍심을 담은 교향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나의 조국'이라고 이름 붙인 여섯 곡의 교향시 모음집이었죠. 원래 네 곡으로 된 모음집을 생각했지만, 발표될 때마다 청중의 반응이 뜨겁자 그 후 두 곡을 추가했어요.
- ▲ 체코 작곡가 스메타나는 교향곡 ‘나의 조국’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 아래 있던 체코인들의 독립 의지를 끌어올립니다. 가장 유명한 2번째 곡인 ‘블타바’는 프라하 시내를 흐르는 강 이름이죠. 사진은 블타바 강을 굽어보는 스메타나 박물관 모습입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이 곡들은 1875년부터 1880년 사이에 초연돼 갈채를 받았어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에 신음하던 체코인들 사이에 자주독립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작곡가 이름은 몰라도 멜로디를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명곡 중 하나가 '핀란디아'입니다. 핀란드 국민음악 작곡가 얀 시벨리우스(1865~1957)가 1899년 작곡한 교향시죠. 핀란드는 수백년간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는데요, 1808년 시작된 스웨덴과 러시아의 전쟁에서 스웨덴이 패하면서 이번에는 러시아 지배 아래에 놓입니다. 1894년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즉위한 뒤, 러시아의 압제는 더욱 심해집니다. 이를 계기로 핀란드인들은 한층 독립 의지가 강해졌지요.
핀란디아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처음 공연돼, 핀란드의 독립 의지를 박람회에 참석한 세계인에게 널리 알렸습니다. 이 곡으로 시벨리우스는 핀란드를 대표하는 작곡가의 자리에 오릅니다.
- ▲ 스메타나, 시벨리우스, 쇼팽
10분 남짓한 길이의 교향시 '핀란디아'는 장중한 금관악기의 포효로 시작합니다. 자유를 속박당한 핀란드인의 고통을 암시하지요. 어두운 느낌의 주제는 점차 밝은 기운을 회복해 앞으로 다가올 핀란드의 희망찬 미래를 표현합니다. 유명한 멜로디 '핀란드여 일어나라'가 목관악기와 현악기로 연주된 후 악상은 다시 힘을 얻고, 마침내 장엄한 오케스트라 합주가 핀란드의 위대한 승리를 노래하며 작품을 마무리하죠.
국민음악파 작곡가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폴란드 작곡가 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도 조국의 민속 음악과 정서를 무척 사랑해 자신의 작품에 많이 사용했답니다. 그는 애국심이 무척 강했어요. 그는 젊은 날 음악 공부도 하고 경험도 쌓기 위해 폴란드를 떠나 서유럽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조국을 떠난 지 얼마 후인 1831년 여름, 조국의 수도 바르샤바가 러시아군에 함락됐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쇼팽은 원래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 머무르고 싶어 했지만, 러시아와 오스트리아가 손을 잡고 있던 시대라 폴란드인인 쇼팽이 빈에서 활동하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빈을 떠나 파리를 향하던 쇼팽이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울분에 차 작곡한 곡이 '혁명'이라는 제목의 에튀드(연습곡)입니다. 조국과 동족을 염려하고 슬퍼하는 작곡가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격정적인 곡이죠. 왼손의 빠르고 화려한 움직임 위로, 극적이고 힘찬 오른손의 멜로디가 매력적인 피아노곡이랍니다.
자신의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작품들을 들어보면, 그 어떤 물리적인 힘보다 음악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예술가들이 남긴 걸작들은 역사책보다도 생생한, 살아있는 기록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美서 향수병 앓던 드보르자크, 체코 민요에 인디언 음악 결합
스메타나와 함께 체코의 대표적인 국민음악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1841~1904)는 체코의 민속 리듬이나 선율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민족성을 강하게 나타내는 방식으로 애국심을 표현했어요. 흥미롭게도 그의 대표작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나왔습니다.
드보르자크는 1892년부터 약 4년간 미국 뉴욕 국민음악원의 원장직을 맡아 일했는데요,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현악4중주곡 12번 '아메리카' 등이 당시 만들어졌습니다. 지금까지 걸작으로 꼽히죠. 이 작품들에서 드보르자크는 새롭게 접한 미국의 흑인 영가(靈歌)와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 음악 등을 자신의 나라인 보헤미아 지방의 민요들과 결합해 인상적인 악상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어요. 당시 고향에서 멀리 떨어졌던 드보르자크는 향수병에 시달렸다고 알려졌는데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그리움이 마음을 움직이는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