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나해란의 뇌과학 교실] 처음 온 곳인데 낯설지 않을 때… 뇌의 '기억 불러오기 오류'

입력 : 2019.02.27 03:00

기시감

분명 처음 온 곳인데 언젠가 한 번 와본 느낌이 들 때가 있지요? 이런 현상을 '데자뷔(déjà vu)'라고 합니다. 기시감(旣視感)이라고 부르는데, 이미 본 것 같은 느낌이라는 뜻이에요. '전생에 겪었던 일이 떠오른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이지요.

기시감의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어요. 너무 짧게 일어나고 언제 일어날지 예측할 수가 없어서 연구가 어렵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대부분의 뇌 연구자는 기시감 현상이 뇌의 '기억 분류 실수' 때문에 벌어진다고 보고 있어요.

[나해란의 뇌과학 교실] 처음 온 곳인데 낯설지 않을 때… 뇌의 '기억 불러오기 오류'
/프랑스 퐁피두센터
뇌는 태어나면서부터 보고 듣고 겪는 모든 상황을 다 한 번씩은 저장합니다. 오갔던 말은 물론 냄새나 촉감 같은 느낌까지도 말이죠. 그렇지만 그걸 평소에도 일일이 기억해야 한다면 일상생활이 어렵겠죠. 뇌는 꼭 필요한 정보를 제외하면 대부분 기억을 무의식으로 옮긴답니다. 무의식이란 기억하려고 노력해도 떠오르지 않는 '망각의 저장소'예요. 기억해야 할 일은 장기 기억 저장소에 따로 모아두고요. 이렇게만 분류해도 살다 보면 엄청난 양의 기억이 쌓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정보나 기억을 떠올리려면 마치 넓은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는 것과 비슷한 단계를 거칩니다. 먼저 단행본인지 정기간행물인지, 단행본 중에서는 문학인지 비문학인지 등을 따진 뒤 해당 코너에서 그 책을 찾듯이요. 필요한 기억이 어떤 종류의 정보인지 빠르게 스캔하고, 그다음 구체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복원하는 것이지요. 물론 방대한 기억 저장소를 빛보다 빠른 속도로 뒤져야 합니다.

이처럼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은 뇌의 여러 부위가 순식간에 작용하는 협력이 필요합니다. 지금 필요한 정보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은 시각·청각·촉각의 모든 뇌피질 세포가 동원됩니다. 그걸 기억 저장소인 '해마'에서 샅샅이 찾아내지요. 그 최종 정보를 전두엽에 보고하면 전두엽이 해석합니다. '이런 온도와 향기의 봄 날씨를 겪어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 하고 말이에요.

기시감은 이 과정에서 뇌의 한 부위가 실수하는 것이라고 해요. 감각 세포에서 받아들이는 것이나 해마에서 찾아내는 과정 등에서 잠깐 오류가 난 것이지요. 그래서 기시감을 '뇌의 딸꾹질'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딸꾹질도 숨을 쉬는 근육이 박자를 잘못 맞춰서 생기는 실수거든요.

특히 기시감은 후각 세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감각 세포 중에서 냄새와 관련된 뇌 세포가 기억과 가장 관련이 높기 때문이라고 해요. 비슷한 것을 봤을 때 기억 저장소까지 가지도 않고 후각 세포에서 냄새만 맡고 바로 '비슷한 상황'이라고 판단해버리는 것이지요.

뇌 내측측두엽에 문제가 생긴 사람이 기시감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내측측두엽은 기억 저장소인 해마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기억을 찾는 과정에서 데자뷔가 벌어질 수 있답니다. 대부분의 기시감은 문제가 아니에요. 오히려 뇌가 실수할 정도로 활발하게 잘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라고 합니다.



나해란 여의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