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동물이야기] 눈에 잘 띄는 흑표범, 숨을 곳 없는 사바나에선 살기 어려워요

입력 : 2019.02.22 03:05

흑표범

오는 25일 열리는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로 영화 '블랙 팬서'가 이름을 올렸어요. 우리말로는 '흑표범'이죠. 마침 최근 케냐에서 1909년 이후 110년 만에 흑표범이 카메라에 포착됐다고 해요. 표범과 흑표범은 어떤 관계일까요?

표범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9개 종이 살고 있어요. 종에 따라 털색은 옅은 황색에서 노란 갈색 또는 황금색을 띠고, 장미 모양으로 가죽에 박혀 있는 무늬도 크기와 모양이 조금씩 달라요. 서식지 환경에 녹아들기 좋은 색깔과 모습으로 진화한 겁니다.
최근 케냐에서 110년 만에 흑표범이 발견됐어요. 흑표범은 유전 또는 돌연변이로 검은색을 띤다고 해요.
최근 케냐에서 110년 만에 흑표범이 발견됐어요. 흑표범은 유전 또는 돌연변이로 검은색을 띤다고 해요. /위키피디아

그러나 표범은 두 가지 이유로 흑표범이 됩니다. 첫째, 검은 털을 발현하는 유전자를 가진 암수 흑표범이 만나 자식을 낳을 때입니다. 표범에서 검은 털을 발현하는 유전자는 열성입니다. 양친 모두 검은 털을 발현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어야 자식도 새까만 털을 가지게 됩니다. 흑표범의 암수가 짝짓기를 한다면 항상 흑표범 새끼를 낳게 됩니다. 흑표범이 아닌 표범끼리 짝짓기를 할 때도 암수가 각각 검은 털을 발현하는 열성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면 흑표범 새끼가 나올 가능성이 있죠.

둘째는 일반 표범 사이에 짝짓기가 이뤄졌는데, 멜라닌 세포 돌연변이에 의해 흑표범이 태어나는 경우입니다. 피부나 털이 희거나 검게 나타나는 변이 현상이 돌연변이로 가능하거든요. 이런 현상은 태어날 때 멜라닌(melanin) 세포에 생긴 돌연변이 때문이에요. 멜라닌 세포(흑갈색 색소)가 돌연변이로 색소를 생성하지 못하면 알비니즘(백색증)이 되고, 이와 반대로 멜라닌 세포가 색소를 과잉 생산하면 멜라니즘(흑색증)이 돼요.

이런 멜라닌 세포 돌연변이는 고양이과 동물 38종 중 13종에서 발견됩니다. 표범은 대표적으로 멜라닌 세포 돌연변이가 나타나는 종입니다. 잘 알려진 '백호'는 멜라닌 세포에 문제가 생겨 알비노가 된 사례죠.

흑표범은 멜라닌 과잉으로 온몸이 시커멓지만 종 자체는 일반 표범과 동일합니다. 자세히 보면 장미 모양의 무늬(검은 반점)도 새까만 가죽 위에 나타나 있죠. 색이 다르지만 동족 무리 안에서 공격받거나 따돌림당하는 일은 없어요. 멜라니즘·알비니즘 개체의 행동도 일반 표범과 다르지 않고요.

흑표범은 아프리카에서 드물게 관찰되지만 중국 남서부, 미얀마, 자바섬, 인도 등의 아시아 지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어요. 흑표범은 나무가 없는 아프리카의 사바나보다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아시아의 환경이 생존에 유리할 수 있어요. 표범은 주로 야간에 사냥하는데 아시아의 밀림에서는 몸을 숨기기 쉽지만, 아프리카 사바나에서는 일반 표범보다 사냥감의 눈에 띄기 쉬워서 불리한 거죠.


김창회 박사·전 국립생태원 생태조사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