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나해란의 뇌과학 교실] 같은 음식인데… 먹을 때마다 맛 다르게 느끼는 이유는?

입력 : 2019.02.20 03:00

맛을 느끼는 과정

최근 치킨집이 '대박' 나는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어요. 영화관을 나서는 관객들이 "치킨 먹고 싶다"며 삼삼오오 치킨집으로 몰려갔다고 해요. 저도 영화를 보고 치킨 생각이 들었어요.

치킨의 맛은 어떻게 느낄까요. 흔히 '혀'에서 맛을 느낀다고들 생각하는데, 사실 뇌의 역할이 아주 크다고 해요. 똑같은 음식이라도 어떤 날은 더 맛있고, 매번 먹던 음식도 친구와 다투면서 먹고 나면 나중에는 왠지 별로 먹고 싶지 않아지죠. 비밀은 뇌에 있어요.

같은 음식인데… 먹을 때마다 맛 다르게 느끼는 이유는?
/게티이미지뱅크
음식은 입으로 들어가지만 맛을 느끼고 평가하는 건 뇌입니다. 먼저 입에 음식을 넣으면 혀에 있는 8000개가량의 미각(味覺) 세포가 일을 시작합니다. 미각 세포는 음식에서 나오는 맛 물질을 알아채고 이 정보를 분류해 뇌로 전달합니다. 여기까지는 이 음식이 인간이 느끼는 5가지 맛(단맛·짠맛·쓴맛·신맛·감칠맛) 중 어떤 맛인지, 얼마나 맛있는 음식인지 알아채지 못해요. 미각 세포는 무슨 맛인지 모른다는 뜻이에요. 입에 음식을 넣으면 곧바로 단맛인지 짠맛인지 안다고요? 그건 미각 세포가 그만큼 정보를 빨리 전달하기 때문이에요.

미각 세포에서 분류된 신호는 신경 전깃줄을 따라 빛의 속도로 '맛을 느끼는' 피질 뇌세포로 전달됩니다. 피질은 이게 무슨 맛인지 분류하죠. 2011년 미국 컬럼비아대 찰스 주커 교수 연구팀은 각각의 맛을 느끼는 뇌세포 피질이 따로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뇌에는 단맛을 느끼는 부위, 짠맛을 느끼는 부위 등이 모두 따로 있고, 그 부분에 전기 자극을 주면 실제로 음식을 먹지 않아도 단맛, 짠맛 등을 느낄 수 있어요. 피질은 5가지 맛 중 무엇인지, 맛이 어떻게 조합돼 있는지를 분석합니다. 이게 우리가 느끼는 음식 맛이죠.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라고 해요. 뇌는 맛뿐만 아니라 음식을 먹을 때의 상황이나 감정까지도 포함해 평가한다고 해요. 혀의 미각 세포에서 뇌의 맛 담당 피질로 간 신호는 어떤 맛인지 판단을 거친 뒤 편도체로 전달돼 가치가 매겨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6월 '네이처'에 발표된 최신 이론입니다. 어떤 맛인지 판단하는 것은 뇌 피질의 맛 담당 세포지만, 맛의 '가치'는 편도체에서 처리된다는 거죠. 흔히 말하는 '추억의 맛' '따스한 맛' 이런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거지요.

편도체는 뇌 안쪽 깊숙이 있는 아몬드 모양의 작은 뇌 기관으로, 공포 같은 본능적인 감정을 처리하는 부위입니다. 강아지에게 물리면 본능적으로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것과 같이요. 그래서 좋은 추억이 함께 떠오르는 음식은 더 맛있다고 기억하고, 나쁜 상황에서 먹은 음식은 피하고 싶은, 맛이 없는 음식으로 기억한대요. 1인분에 5만원 하는 한우 등심을 먹어도 상사에게 혼나면서 먹었다면 맛이 없게 느낀다는 말이죠. 엄마가 해준 음식이 맛있는 이유도 이런 뇌 과학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고요.

뇌의 상태도 맛을 느끼는 데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일례로 배가 고플 땐 뇌의 맛 세포가 바짝 긴장해 있기 때문에, 맛에 대한 민감도가 올라가 있어요. 그래서 맛을 더 풍부하게 느끼고 더 맛있다고 생각한다고 해요. 배가 부르면 뇌세포 민감도는 급격히 떨어집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속담도 과학적 근거가 있는 거지요. 사람에 따라 맛을 느끼는 뇌세포도 조금씩 다르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뭘 먹어도 맛있고, 어떤 사람은 뭘 먹어도 시큰둥한데, 유전적인 영향이 크다는 거지요.



나해란 여의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