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최의창의 스포츠 인문학] 66년 전 사라진 예술올림픽… 그림에 금·은·동 매길 수 있을까요?

입력 : 2019.02.19 03:05
지난 8일 평창 동계올림픽 1주년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올림픽과 함께 '예술올림픽'을 열고 운동 종목처럼 금·은·동메달을 시상했다는 사실, 알고 계셔요? 예술올림픽은 1912년 스톡홀름 대회부터 1948년 런던 대회까지 올림픽과 함께 열렸답니다.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 쿠베르탱은 화가 아버지와 음악가 어머니 아래서 자랐어요. 스포츠와 예술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고대 올림픽에서도 노래, 연주, 연설 경연이 같이 진행됐어요.

1896년 제1회 근대 올림픽이 열린 뒤 쿠베르탱은 주위를 설득해 제5회 스톡홀름 대회 때부터 예술올림픽을 도입했어요. 예술올림픽은 '뮤즈들의 5종 경기'(Pentathlon of the Muses)라고 불렸어요. 건축, 음악, 회화, 조각, 문학의 다섯 분야에서 경연을 펼쳤거든요. 뮤즈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학문과 예술의 여신이에요. 스포츠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중 다른 곳에 발표한 적이 없는 작품을 대상으로 메달을 줬어요. 1932년 LA올림픽 때는 예술올림픽을 보려는 관객만 38만명이 몰렸답니다.

건축은 설계도와 건축물로, 음악은 악보로 출품했어요. 조각은 높이·넓이·길이가 80㎝ 이하인 작품으로, 문학은 산문은 2만 단어, 운문은 1000줄 이내로 제한했지요.
예술올림픽에서 2회 연속 회화 금메달을 차지한 룩셈부르크 화가 장 자코비의 작품입니다. 두 그림은 자코비가 1924년 파리 대회에서 금메달을 받은 ‘스포츠의 연구’연작입니다.
예술올림픽에서 2회 연속 회화 금메달을 차지한 룩셈부르크 화가 장 자코비의 작품입니다. 두 그림은 자코비가 1924년 파리 대회에서 금메달을 받은 ‘스포츠의 연구’연작입니다. /로잔 올림픽 박물관

심사단은 유명 예술가들로 꾸렸어요. 미국과 독일이 자국 예술가들 위주로 심사단을 구성해 편파 논란이 일기도 했지요. LA올림픽 때는 심사위원 30명 중 24명이 미국인, 베를린올림픽 때는 41명 중 29명이 독일인이었거든요.

예술올림픽은 총 7번 열렸어요. 메달 수로는 147개입니다. 1924년과 1928년에 2회 연속 회화 금메달을 차지한 룩셈부르크 화가 장 자코비(Jacoby)가 유명해요. 쿠베르탱 자신도 1912년 가명으로 '스포츠 찬가'라는 시로 문학 금메달을 받았어요.

일반 올림픽과 예술올림픽에서 모두 메달을 딴 선수도 두 명 있어요. 미국 사격선수 월터 위낸스(Winans)는 1908년과 1912년 사격으로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따고, 1928년 '미국 승마선수'라는 작품으로 조각 금메달을 받았어요. 헝가리 수영선수 알프레드 하조스(Hajos)는 1896년 수영으로 금메달 두 개를 따고, 1924년에는 스타디움 설계도로 건축 은메달을 받았어요.

예술올림픽은 1952년 헬싱키올림픽부터 사라집니다. '아마추어 정신을 지키려면, 프로 선수나 예술가가 참여해선 안 된다' '등수를 매기지 말고 그냥 예술 축제를 열자'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에요. 당시 예술올림픽 참가자는 대부분 유명한 예술가였어요. 올림픽 메달을 따면 작품 가격이 뛰니까, 갈수록 프로 예술가들의 경쟁이 심해지는 상황이었죠. 지금도 예술 올림픽이 열린다면, 매번 편파 판정 논란이 벌어지지 않았을까요?


최의창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