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모차르트 아들도 작곡했지만 아버지 그늘에 가려 빛 못봤죠

입력 : 2019.02.16 03:03

음악가 가족들

흔히 예술가의 재능은 하늘이 내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예술적 기질은 어렸을 때의 교육이나 가정환경에서 생겨나는 경우도 많지요. 한집안에서 부자(父子), 형제, 자매 음악가를 배출한 일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집안에서 크게 성공한 인물이 너무 빛난 나머지 다른 가족은 상대적으로 빛을 받지 못하기도 해요.

◇하이든 동생도 작곡가

먼저 살펴볼 인물은 '교향곡의 아버지' 요제프 하이든의 동생 미하엘 하이든(1737~1806)입니다. 형제의 아버지는 형제를 오스트리아 빈 슈테판 성당의 소년 합창단에 보냈어요. 이곳에서 미하엘은 형 요제프보다 노래 실력이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죠. 미하엘은 합창단을 나오자마자 성가대의 지휘자가 됐고 25세 때부터 잘츠부르크에서 살면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43년을 그곳에서 활동했어요.

미하엘은 작곡도 했어요. 요제프의 동생답게 교향곡을 43곡이나 만들었죠. 잘츠부르크에서 활동하면서 이곳에서 살았던 모차르트 가문과도 친하게 지냈어요. 특히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아버지인 레오폴드와 가까웠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요. 오랫동안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알려졌던 교향곡이 나중에 미하엘 하이든의 작품으로 밝혀지기도 했어요. 모차르트의 교향곡 37번 K444는 1악장 앞부분 서주만 모차르트의 작품이고 나머지는 미하엘이 작곡했어요. 모차르트는 이 교향곡에 서주를 붙여 직접 지휘했는데 그래서 이런 착각이 벌어졌다고 해요.

◇모차르트의 아들도 뛰어난 연주자

천재의 대명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아들도 작곡했다는 사실 아시나요? 볼프강의 막내아들 프란츠 크사버 모차르트(1791~1844)는 아버지가 숨을 거두기 다섯 달 전인 1791년 7월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13세에 빈에서 데뷔 음악회를 열었어요. '볼프강 2세'로 불리며 아버지의 대를 이을 재능으로 화제를 모았죠. 살리에리, 후멜, 베토벤을 선생님으로 모셨고요. 프란츠는 17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연주자와 교육자로 활동했어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왼쪽 그림)는 숨지기 다섯 달 전 막내아들 프란츠 크사버 모차르트를 얻습니다. 프란츠는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지만 평생 아버지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왼쪽 그림)는 숨지기 다섯 달 전 막내아들 프란츠 크사버 모차르트를 얻습니다. 프란츠는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지만 평생 아버지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아버지의 재능을 받아 피아노와 바이올린에 뛰어난 재능을 지녔고, 작곡으로도 주변의 기대를 많이 받았던 프란츠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겨우 30곡 정도 되는 작품만을 남겼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어떤 작품을 발표해도 아버지인 볼프강의 작품과 비교되는 사실이 그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프란츠는 결국 30세 이후에는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너무나도 뛰어난 인물을 아버지로 두었기에 겪게 된 불행이었다고도 생각되네요. 그렇지만 그는 1844년 체코의 휴양도시 칼스바트에서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아버지의 작품인 레퀴엠을 포함해 많은 작품을 지휘·연주하며 활발한 활동을 했어요.

◇작곡가 스카를라티 부자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작곡가로 활약해 모두 이름을 남긴 '행복한' 사례도 있어요.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1660~1725)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태생으로, 로마에서 공부하고 나폴리에서 활동을 시작했죠. 그는 오페라를 비롯한 성악곡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어요. 알레산드로는 바로크 최후를 장식한 오페라의 대가 헨델보다 한 세대 앞서 아리아의 형식을 확립했어요. 또 오페라 가사를 레치타티보(연극 대사를 하듯 노래해 줄거리를 설명하는 부분)와 노래로 나누는 법도 정착시킨 오페라의 선구자였습니다. 많이 알려진 곡으로 '제비꽃'과 '갠지스강에 해는 뜨고' 등의 노래가 있어요.

알레산드로의 아들 도메니코 스카를라티(1685~1757)는 아버지와 달리 오르간과 하프시코드 등 건반악기 연주에 뛰어났어요. 로마에서 동갑내기 작곡가 헨델을 만나 연주 경연을 벌이기도 했죠.

도메니코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포르투갈 공주 마리아 바르바라가 스페인 왕자와 결혼하게 되자 그녀를 따라 마드리드로 갔습니다. 도메니코는 평생을 스페인에서 음악 활동을 하게 되죠.

도메니코는 짤막한 두 부분으로 나뉜 한 악장짜리 소나타를 555곡 남겼어요. 화려한 기교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멜로디 구성으로 지금까지도 많이 연주되고 있어요. 아버지 알레산드로는 오페라, 아들 도메니코는 건반악기 곡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죠. 후대는 이들 이름 첫 글자인 A와 D를 성 스카를라티 앞에 붙여 아버지와 아들을 구분합니다.

유명 작곡가의 가족 중에 또 다른 음악가들이 있었다니 신기하죠? 같은 이름이지만 서로 다른 개성을 지녔던 인물들을 살펴보면서 예술 세계의 오묘함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요절한 동생 곡 알린 음악가 언니

릴리 불랑제, 나디아 불랑제
릴리 불랑제, 나디아 불랑제

함께 자라났지만 서로 다른 운명을 겪은 자매 음악가도 있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릴리 불랑제(1893~1918)는 당시 유럽 젊은 작곡가들이 최고 영예로 여겼던 '로마 대상'을 여성 최초로 받았지만, 폐렴으로 25세에 삶을 마쳤죠.

실내악과 가곡, 종교 음악 등 릴리가 남긴 뛰어난 작품들을 세상에 알린 것은 그녀의 언니인 나디아 불랑제(1887~1979)였습니다. 나디아는 동생과 달리 92세까지 장수하면서 동생의 개성 넘치는 작품 세계를 세상에 소개하려 노력했죠. 동생의 예술이 언니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디아는 작곡가이자 뛰어난 음악가를 길러낸 스승이기도 했어요. 에런 코플런드, 디누 리파티, 레너드 번스타인 등을 가르쳤지요.


김주영·피아니스트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