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식물이야기] 나무가 가지로 보내는 물 채취… 봄철 동안 작은 구멍서 200L 뿜어

입력 : 2019.02.15 03:05

고로쇠나무 수액

오는 19일은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우수(雨水)입니다. 개구리가 기지개를 켠다는 경칩(驚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황톳빛으로 바싹 말라 있는 나무는 조용히 밑동부터 봄의 푸른빛을 서서히 끌어올리고 있네요.

이런 때면 사람들은 '고로쇠 수액'을 마셔요. 1월부터 나무에 수액을 모으는 장치를 설치해요. 2월 말에 나오는 수액이 가장 달고 맛있다네요. 고로쇠나무는 해발 800m 이상 고지에 무리를 이루듯 한데 모여 자라요. 지리산 수액 채취 장소에 가보면 나무마다 1~3개씩 주렁주렁 하얀 관이나 비닐봉지가 달린 것을 볼 수 있답니다.

고로쇠 수액은 천연 건강 음료로 꼽혀요. 수액에 당분이 2% 정도 포함돼 있어서 달곰하고 시원한 맛을 내요. 보통 탄산음료나 주스는 당분이 10%가 넘는데 고로쇠 수액은 은은한 단맛이라 오히려 더 생각나는 거 같아요. 또 고로쇠 수액에는 칼슘과 칼륨 같은 여러 미네랄 성분도 있어요.
고로쇠나무 수액은 주로 1~3월에 채취해요. 나무가 다치지 않을 정도의 수액만 채취해야 한답니다.
고로쇠나무 수액은 주로 1~3월에 채취해요. 나무가 다치지 않을 정도의 수액만 채취해야 한답니다. /산림청
1500년 전에도 고로쇠 수액은 건강 음식으로 꼽혔어요. 신라 말기 승려인 도선(827~898)이 가부좌를 틀고 긴 시간 도를 닦고 일어서려는데 무릎이 펴지질 않았대요. 그래서 나뭇가지를 잡고 일어나려다 가지를 부러트렸죠. 마침 부러진 곳에서 수액이 흘러나왔고, 이 수액을 마시자 무릎이 펴지고 원기가 회복됐다고 해요. 고로쇠나무라는 이름이 '뼈에 좋은 나무'라는 골리수(骨利樹)에서 왔다는 설명도 있답니다.

고로쇠나무가 수액을 만들어내는 원리는 뭘까요? 나무는 봄이 찾아오면 부드럽게 녹은 땅으로부터 물과 무기염류를 흡수해 물관을 통해 가지 끝까지 영양분을 공급해요. 이때 나무줄기에 상처를 내 물관에 구멍을 뚫으면 수액이 흘러나오겠죠. 나무는 밤사이 물을 흡수한 뒤 낮에 기온이 올라갈 때 가지로 수액을 밀어 보내는데, 일교차가 큰 날에 수액이 특히 많이 나온대요.

고로쇠나무는 잎이 손바닥처럼 5~7갈래로 갈라졌어요. 고로쇠나무는 단풍나무와 사촌뻘이에요. 이런 단풍나뭇과 나무들은 봄에 단맛이 나는 수액을 만들죠. 팬케이크에 곁들여 먹는 '메이플시럽'도 설탕단풍나무에서 얻는 수액으로 만들어요.

특히 고로쇠나무는 키가 높게는 20m까지 자라고 줄기도 굵게 자라서 많은 수액을 채취할 수 있답니다. 고로쇠나무는 아기 손톱만 한 구멍을 뚫어도 봄철 채취 기간에 200L에 가까운 수액을 뿜어내요. 다만 사람이 수액을 뽑아서 고로쇠나무가 다치면 안 되겠죠. 정부에서도 나무 크기에 따라 작은 구멍을 3개 이하로 뚫도록 정해놓았어요. 규정대로 수액을 채취하면 나무가 반년 안에 상처를 치유하고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답니다. 수액을 조금 더 뽑아내겠다고 더 큰 구멍을 뚫거나 더 많은 구멍을 뚫으면 나무가 병들거나 죽을 수도 있어요.



최새미·식물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