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호주를 하얗게"… 1970년대까지도 유색인종 이민 막았죠
입력 : 2019.02.13 03:00
[백호주의(白濠主義)]
1788년 처음 영국인 총독 부임하며 식민지로 삼고 죄수 16만명 이민 시켜
영국계 백인 땅이라며 토착민 핍박… 19세기 골드러시 후 중국인 이민 제한
- ▲ /호주국립박물관
◇ '호주의 날'은 원주민에겐 '침략의 날'
지난달 26일은 호주 최대 국경일 '호주의 날'이었어요. 호주에 파견된 첫 영국인 총독이 시드니를 개척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에요. 그런데 이날은 호주에서 5만년 이상 살아온 토착민 애버리지니(Aborigine) 처지에서는 고향 땅을 백인들에게 뺏긴 날이죠. 올해도 '호주의 날'을 기념하는 축제 반대편에서는 '침략의 날'이라고 외치는 호주 토착민 인권 단체 시위가 벌어졌죠.
호주에 백인들이 정착한 건 1770년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1728~1779)이 호주를 탐험하면서부터예요. 1788년 1월 26일 총독 아서 필립이 배 11척에 죄수 800여 명을 이끌고 오면서 호주에 본격적 이민이 시작되었어요. 호주를 뉴사우스웨일스(New South Wales)라 부르며 새로운 식민지로 삼은 거예요. 1788년부터 1867년까지 영국 죄수 약 16만명이 호주로 이송됐어요. 1820년 이후부터는 땅이 드넓은 호주에서 살아보겠다는 일반 이민자도 늘었죠. 대부분 영국계 백인이었어요. 당시 토착민 애버리지니는 30만명 이상이 호주에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백인들이 호주를 정복하면서 옮긴 전염병과 학살로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었어요.
◇중국인 오지 마!
19세기 중반 호주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호주 인구는 급격하게 늘어나요. 골드러시(gold rush·금광 지역으로 사람이 몰려드는 것)라고 하죠. 1850년에 40만명이던 호주 인구는 1880년에는 223만명으로 늘어나요. 골드러시에 맞춰 1851년부터 20여 년 동안 중국인 노동자 약 5만명이 호주로 이주했어요. 이들은 적은 돈을 받으면서 험한 일을 했어요. 백인 노동자는 임금 하락과 실업률 증가가 이들 때문이라고 생각했죠. 결국 빅토리아주에서는 1855년 '중국인 제한법'을 제정하고 중국인 이주민에게 세금을 물렸습니다. 1901년부터는 호주 전체에서 '이민 제한법'을 만들어 유색인종, 특히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인의 이민을 막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유색인종과 혼인을 통제하고 혼혈 인종에 대한 차별도 승인했어요. 백호주의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지요. 이 법이 제정될 당시 호주 총리는 에드먼드 바튼이었어요. 그는 이 배지를 만든 '호주원주민협회' 회원이었죠.
- ▲ 1886년 한 호주 언론에 실린‘몽고 문어’라는 풍자화입니다. 변발을 한 중국 이민자가 호주 재정을 파탄 내고 아편을 밀매할 거라는 등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백호주의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죠. /호주국립박물관
1·2차 세계대전과 경제 대공황 이후 인구가 줄어들면서 호주는 위기의식을 느꼈나 봐요. 인종차별적 백호주의가 국제 여론의 비난을 사면서 아시아 국가와 외교 관계를 어렵게 하기도 했고요.
특히 1960년대까지 이뤄졌던 '토착민 문명화 정책'은 호주에 상처를 남겼습니다. 어린 애버리지니를 백인 가정에서 키워 '문명화'해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약 10만명이 부모와 생이별을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종차별이 뿌리 깊었던 상황에서 이들이 백인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들었죠. 공짜로 부릴 수 있는 일손쯤으로 여겨지며 학대당하는 일도 많았다고 해요.
1973년 호주의 노동당 정부는 '미래를 위한 다문화 사회'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인종차별 정책의 철폐를 공식화했어요. 그동안 호주 안에서 차별받아왔던 애버리지니 원주민에게 땅 일부를 돌려주는 '토지권리법'을 제정했습니다. 이어 1978년 백호주의 정책을 완전히 폐지했습니다.
그렇지만 호주에서 최하층민인 애버리지니의 빈곤과 차별 문제는 계속되고 있어요. 미국에서는 최근 차기 대선 주자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체로키 부족의 피가 몸에 흐른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죠. 애버리지니에게는 참 부러운 모습이에요.
[테라 눌리우스(terra nullius)]
호주 토착민 애버리지니는 약 5만년 전 호주로 건너가 250개 언어를 쓰는 다양한 부족을 이뤘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계절에 맞춰 호주 본토를 떠돌며 수렵·채집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영국인이 도착하면서 이들은 본토만 762만㎢에 달하는 거대한 땅을 깡그리 빼앗기고 맙니다. 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요?
1770년 호주에 도착한 제임스 쿡은 '테라 눌리우스(terra nullius·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땅)'라는 개념을 적용합니다. '무주지(無主地)'라고도 하는데 국제법상 어느 나라도 주권을 행사하지 않는 지역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주인 없는 땅'이죠. 쿡은 1770년부터 호주는 영국 국왕 조지 3세의 영토가 됐다고 선포합니다. 국제법도 모르고, 영어도 못 하는 토착민은 하루아침에 영국 식민지에 사는 피지배층이 돼 버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