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트레몰로 주법으로 유명한 곡이죠

입력 : 2019.02.02 03:05

클래식 기타 3대 명곡

프란치스코 타레가
프란치스코 타레가
클래식 기타 좋아하시는 분들 많으시죠? 최근 부쩍 인기를 얻은 기타 음악이 있는데요, 바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곡입니다. 원래 유명한 곡이지만, 최근 종영한 드라마의 주제 음악으로 쓰이며 널리 알려졌어요. 가상현실을 이용한 게임과 다양한 캐릭터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여주인공이 연주하는 기타 소리가 매우 신비롭게 들렸죠.

이 곡과 함께 기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영원한 명곡이 두 곡 더 있어요. '로망스'와 '카바티나'라는 곡입니다. 기타 연주를 배우기 위해 선생님이나 학원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직접 치고 싶어 하는 곡 중 가장 인기 있는 세 곡인데요, 유감스럽게도 모두 초보자가 연주하기에는 어려워서 강한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킨다고 해요.

먼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만든 작곡가를 알아볼까요? 스페인의 작곡가 겸 기타리스트 프란치스코 타레가(1852~1909)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기타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는데, 부상을 당해 시력에 장애가 있었음에도 기타 연주자로 맹활약했어요. 타레가는 테크닉이 매우 뛰어나 '기타의 사라사테(스페인 출신의 명바이올리니스트)'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고, 새로운 주법도 많이 만들어 현대 기타 연주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죠. 특히 그는 바흐, 베토벤, 쇼팽 등의 작품을 기타용으로 편곡하는 데도 힘을 기울였는데요, 이런 작업을 통해 그의 기타 곡들이 더 변화무쌍하고 다양해졌어요. 그가 남긴 작품 중에는 '라그리마'(눈물), '그랑 호타'(대(大)호타) 등이 유명합니다. 최고의 히트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기타 특유의 트레몰로 주법(하나의 음을 빠르게 반복해 떨듯이 연주하는 주법)이 인상적입니다.

스페인 그라나다 지방에 자리 잡고 있는 알함브라 궁전은 중세에 스페인을 지배했던 이슬람의 나스르 왕조가 14세기에 완성한 건축물로,알함브라는 아랍어로 '진홍빛'이란 뜻입니다. 바닥과 기둥, 천장 등을 수놓은 아랍풍의 기하학적 무늬와 태양빛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성벽의 오묘한 빛깔로 관광객들을 매료해요. 이 성은 15세기 이슬람 왕조가 스페인을 떠난 후 스페인 왕가의 별궁으로 쓰이기도 했죠.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어요.

또 다른 명곡 '로망스'는 오래된 흑백 영화의 주제 음악으로 알려졌어요. 1952년 르네 클레망 감독이 발표한 '금지된 장난'을 통해 인기를 얻은 이 곡은 작자 미상으로, 16세기 스페인 민요를 바탕으로 클래식 기타리스트 나르시소 예페스(1927~1997)가 편곡한 작품입니다.
‘클래식 기타의 아버지’로 불리는 타레가는 여행 중에 알함브라 궁전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반해 연주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작곡했다고 해요. 스페인에 남아 있는 이슬람 왕조의 건축물이죠. 사진은 알함브라 궁전에 있는 아라야네스 안뜰과 코마레스 탑입니다.
‘클래식 기타의 아버지’로 불리는 타레가는 여행 중에 알함브라 궁전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반해 연주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작곡했다고 해요. 스페인에 남아 있는 이슬람 왕조의 건축물이죠. 사진은 알함브라 궁전에 있는 아라야네스 안뜰과 코마레스 탑입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영화 '금지된 장난' 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프랑스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폭격으로 부모를 잃은 어린 소녀 폴레트가 시골 농가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뤘습니다. 소녀는 농가의 막내아들 미셸과 친해집니다. 폴레트와 미셸은 죽은 동물 무덤을 만들어주며 노는데, 영화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행동과 전쟁으로 인해 혼란을 겪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포개며 생명 경시 풍조와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탐욕에 대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집니다. 예페스의 부드러운 연주로 울리는 '로망스'는 아이의 순수한 감성과 전쟁 때문에 생긴 상실의 아픔을 음악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카바티나'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기타곡 역시 영화에 나오면서 인기를 얻었죠. 영국의 영화음악 작곡가 스탠리 마이어스의 이 작품은 원래 1970년 영화 '워킹 스틱'에 쓰였는데, 그 후 1978년 영화인 '디어 헌터'에 호주 출신의 유명 클래식 기타 연주자인 존 윌리엄스(78)가 연주한 버전이 실리면서 널리 알려졌어요.

'디어 헌터'도 전쟁을 다룬 영화입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사는 평범한 세 젊은이가 베트남전에 가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전쟁의 후유증을 겪는 모습을 현실감 있게 그립니다. 1970년대 나온 여러 반전 영화 가운데 '디어 헌터'가 특히 명작으로 꼽히는 이유 중 하나가 애절한 멜로디로 가슴을 울리는 주제곡에 있지 않을까요. '디어헌터'는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성공작이 되었고, '카바티나'는 작곡가 스탠리 마이어스의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이 되었습니다.

크고 우렁차지는 않지만 손끝으로 튕겨 울림을 만들어내는 클래식 기타의 떨림은 언제 들어도 매력적이죠. 판타지 영화의 환상적인 장면, 포탄이 터지는 전쟁터 한가운데,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 등 기타 음악은 어떤 장면에도 잘 어울려요. 아름다운 기타 소리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멋진 영상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카바티나' 연주한 존 윌리엄스, 1970년대 록 음악에도 도전
'스타워즈' 작곡가와는 동명이인

존 윌리엄스

'카바티나'의 존 윌리엄스(Williams·사진)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클래식 기타의 대가이지만 새로운 장르도 끊임없이 탐구했어요.

윌리엄스는 호주 출신으로 열일곱 살에 런던 위그모어홀에서 데뷔 무대를 가졌어요. 당대 최고의 대가 안드레스 세고비아가 그의 연주를 듣고 "기타의 왕자가 출현했다"며 그를 직접 가르치기도 했죠.

윌리엄스의 관심은 클래식 기타 레퍼토리에만 머물지 않았어요. 그는 1979년 록, 재즈, 클래식이 혼합된 음악을 연주하는 'Sky'라는 퓨전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어요. 2000년대 이후에는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의 민속 음악을 기타로 편곡하는 등 실험적인 작업을 쉬지 않았습니다.

동명이인 영화음악가 존 윌리엄스와 헷갈리기 쉬워요. 알파벳 철자마저 똑같습니다. 이쪽 윌리엄스도 그래미상만 24번 탄 거장입니다. '스타워즈' '인디아나 존스' '죠스'같은 할리우드 영화 사운드트랙을 작곡했죠.



김주영·피아니스트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