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미국 대통령 집무실 책상, 영국 여왕이 보낸 선물이래요

입력 : 2019.02.01 03:00

[백악관 '결단의 책상']
19세기 북극해서 표류한 英 선박, 배 발견자는 제3자에 팔려했지만 미국이 사들여 다시 영국에 보내
英, 선박 목재로 책상 만들어 선사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 백악관에 있는 대통령 책상이에요. 한국 사람들은 저를 '결단의 책상'(Resolute Desk)이라 부르죠. 미국 대통령이 집무실 '오벌오피스'에서 중요한 결정을 발표할 때 제 앞에 앉아요. 가장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8일 국경 장벽 예산 57억달러가 필요하다고 외쳤어요. 트럼프에 앞서 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 존 F 케네디,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모두가 제 앞에 앉았지요.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제 이름은 '결단의 책상'이 아니라 '결단호(號) 책상'이라고 해야 정확해요. 왜냐고요?

◇난파선 선박으로 만든 미 대통령 책상

영국 정부가 1850년 북극해를 탐사하기 위해 배 한 척을 진수했어요. 배 이름은 'HMS 레졸루트'. HMS는 '빅토리아 여왕 폐하의 배'라는 뜻이고 레졸루트(Resolute)는 '단호하다'는 뜻이에요. 북극해를 흔들리지 말고 개척하라는 뜻이었지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작년 10월‘결단의 책상’에 앉아 대통령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어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작년 10월‘결단의 책상’에 앉아 대통령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어요. 결단의 책상이라는 이름은 영국 배‘레졸루트’호에서 왔어요. 존 F 케네디, 오바마, 트럼프 대통령이 집무실 책상으로 썼죠. /백악관
그런데 이 배는 1854년 북극해 빙하에 갇혀버립니다. 선장과 선원이 탈출한 뒤 텅 빈 레졸루트호만 남아 있다가 1년 뒤 빙하에서 빠져나와 바다를 표류합니다. 미국 포경선이 그런 레졸루트호를 발견해 미국 항구로 인양하지요.

당시 미국과 영국은 사이가 불편했습니다. 1783년 독립전쟁으로 이미 사이가 한 번 나빠졌는데, 1833년 노예제를 폐지한 영국이 "미국도 노예제를 폐지하라"고 압박해 다시 분위기가 나빠진 거죠.

미국 포경선 선주는 레졸루트호를 제3자에게 팔겠다고 나섰어요. 영국은 기분이 나빴지요. 여왕의 배를 미국인이 '주워서' 남에게 팔겠다니요.

이때 미국 버지니아주 상원 의원 제임스 메이슨이 꾀를 냅니다. 미국 나랏돈 4만달러를 들여 레졸루트호를 사들여서 영국 여왕에게 '선물'로 되돌려주자는 거였어요.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자는 거였죠. 이 제안은 성공적이었어요. 영국은 이듬해인 1856년 레졸루트호를 돌려받아요.

이후 레졸루트호는 영국 해군 선박으로 쓰이다가 1879년 해체됩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은 배를 되찾아준 감사의 표시로 배에서 나온 참나무 목재로 책상을 만들어 보냅니다. 제 이름인 '레졸루트 책상'이란 이름이 여기서 나왔답니다.

책상에는 영국에서 붙여 보낸 명판이 있어요. '우호의 상징으로 레졸루트호를 되찾아준 미국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책상을 드립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 9·11 테러와 함께한 결단의 책상

이후 저는 여러 대통령을 모셨어요. 그러다 한동안은 잡동사니와 함께 백악관 지하실에 있었답니다. 그런데 1960년대 재클린 케네디 여사가 저를 찾아내 오벌오피스로 가져왔어요.

저는 미국 역사의 결정적 순간에 자주 등장합니다.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9·11 테러로 공포에 빠진 미국인들을 위로하는 연설을 할 때도,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쿠바 해상 봉쇄'를 명령한 것도 제 앞에 앉아서였습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6·25전쟁 파병 행정명령을 내린 것도 제 앞이었다는 말이 있고요.

제 몸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을 이끌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흔적도 남아 있어요. 그는 소아마비였는데 사람들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기를 원치 않았어요. 지금 제 모습을 보시면 전면부 가운데 미국의 국장(국가를 상징하는 표장)이 양각돼 있습니다. 원래 영국이 저를 처음 만들어 선물할 때는 가운데가 뻥 뚫려 있어 앉아 있는 사람의 다리가 보였는데 루스벨트 대통령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가림판을 덧대기로 한 거죠. 다만 그는 가림판이 완성되기 전에 유명을 달리해 후임 트루먼 대통령부터 지금 같은 모습의 저와 마주하게 됐습니다.

모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저를 쓰지는 않았습니다. 평소 선호하던 책상을 썼던 대통령도 있었거든요. 지금까지 6개 책상이 쓰였다고 합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책상'을 쓴 대통령도 7명이나 있지요.

흥미로운 건 좌우와 관련 없이 책상을 선택하는 미국 대통령 모습입니다. 클린턴, 부시, 오바마, 트럼프 등 최근에 집권한 미국 대통령 4명이 모두 저를 택했습니다. 정책을 뒤집고 상대편에게 날 선 비판을 가해도 나라의 전통은 존중하는 거겠죠.


[美 국가 상징 속 대머리 독수리, 평화땐 올리브가지 쥔 발을… 전쟁땐 화살 쥔 발을 본다는데…]

결단의 책상 정면에는 대머리독수리가 새겨져 있습니다. 미국 국장(國章·국가를 상징하는 표장·왼쪽 사진)이지요. 독수리는 양발에 각각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가지와 무력을 상징하는 화살을 쥐고 있습니다.

현재(왼쪽), 과거.
현재(왼쪽), 과거. /위키피디아
항간에 '미국 정부가 전시(戰時)에는 이 독수리가 화살을 쥔 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평화로울 때는 올리브가지를 쥔 발 방향을 보도록 디자인을 바꾼다'는 설이 있습니다. 1916~1945년 미국 국장〈오른쪽 사진〉과 결단의 책상 속 독수리는 화살을, 지금 독수리는 올리브가지를 보고 있지요. 1916~1945년은 1·2차 세계대전과 겹치는 시대입니다.

이 이야기는 미국 유명 작가 댄 브라운의 소설 등에 등장해 널리 퍼졌습니다. 그럴싸한 이야기지만 사실과는 다릅니다. 국장 디자인은 미국 대통령령으로 정하는데, 1916년에 윌슨 대통령이, 1946년에 트루먼 대통령이 각각 디자인을 고쳐서 우연찮게 독수리 머리 방향이 바뀐 것뿐이라고 하네요.



윤서원 이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