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나해란의 뇌과학 교실] 팔다리 잃은 환자 절반, "이젠 없는 팔다리가 아프고 가려워요"

입력 : 2019.01.30 03:00

뇌의 착각

손톱이 너무 자라서 잘랐는데 계속 손톱이 남아 있는 느낌이 들면 어떨까요? 저라면 신경이 쓰여서 다른 일을 전혀 못 할 것 같아요. 손톱을 잘랐는데도 손톱이 길어서 거추장스러운 느낌은 계속되니까요.

손톱에는 이런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은 없지만, 팔다리에서는 이런 일을 경험하는 사람이 있어요. '유령 팔다리 증후군(Phant-om limb syndrome)'이라고 불리죠. 사고를 당해서 팔다리를 자르는 수술을 했다고 칩시다. 유령 팔다리 증후군을 겪는 사람은 팔다리가 없어졌는데도 계속 팔이 있는 것처럼 느껴요. 때로는 잘라낸 부위가 아프거나, 가렵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팔다리를 자르는 수술을 받은 사람의 절반 이상이 이런 현상을 느낀다고 해요.

‘유령 팔다리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은 없는 팔다리가 가렵거나 아픈 느낌을 받는다고 해요.
‘유령 팔다리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은 없는 팔다리가 가렵거나 아픈 느낌을 받는다고 해요.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UCSD)
유령 팔다리 증후군이 생기는 이유는 뇌의 착각 때문이에요. 우리 몸은 뇌부터 손발 끝까지 신경세포가 빼곡하게 연결돼 있어요. 신경세포 중에는 우리 몸이 아프다는 정보를 전달하는 '통증 신경'이 있어요. 팔다리를 자르면 팔다리와 연결된 이런 통증 신경도 함께 끊기지요.

그런데 신경은 뇌까지 길게 연결된 전깃줄 다발이기 때문에 끝부분이 잘려도 뇌로 연결된 나머지 부위는 여전히 남아 있답니다. 전깃줄 끝 부위가 깨끗하게 정리되지 않게 되면 없어야 할 신호들이 생기곤 합니다. 신경이 끊긴 부위에서 생긴 신호가 뇌로 전달되면 뇌는 '팔다리에서 오는 신호구나' 하고 받아들입니다. 실제로는 팔다리가 없어졌는데, 잘려나간 부위로 연결됐던 신경줄이 신호를 보내자 뇌가 착각한 거지요. 유령 팔다리를 느끼는 이유랍니다.

끊긴 신경 다발 끝이 아물면 잘못 생겨난 신호도 점점 없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증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지곤 한답니다. 그래도 계속 좋아지지 않으면, 뇌에 직접 자기장이나 전류 자극을 준다고 해요. '작동 체계를 재정비해라'고 아예 중앙 통제 센터인 뇌를 조절하는 것이지요.

뇌가 착각해서 벌어지는 현상 중에는 '무시증후군'이라는 병도 있어요. 교통사고나 뇌졸중으로 오른쪽 뇌를 다친 사람 일부는 보는 것에는 이상이 없는데, 왼편에 있는 것은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해요.

이들에게 동그란 시계판을 보여주면서 똑같이 그려보라고 했어요. 가운데와 오른편에 있는 숫자 '12'부터 '6'까지는 따라 그렸는데 왼편에 있는 7부터 11까지는 그리지 않았어요. 못 보거나 따라 그리지 못해서가 아니고 그저 왼쪽을 무시한다는 겁니다. 뇌가 고장이 나서 왼쪽 부분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요.

흔하게 경험할 수 있는 가벼운 뇌의 착각으로 '이상 감각'이 있습니다. 개미나 거미 같은 작은 벌레가 피부를 기어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생생히 드는 경우지요. 호르몬 균형이 깨진 사람, 폐경기 여성 등이 겪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보는 세계는 진짜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없는 것을 있다고, 있는 것을 없다고 느낄 수 있지요. 세상을 해석하는 뇌가 착각하면서 벌어지는 일이죠.



나해란 여의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