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동귀의 심리학이야기] 정가 7000원보다 '만원짜리 30%할인'이 더 끌리는 이유

입력 : 2019.01.29 03:00

[닻 내림 효과]
무언가를 판단할 때 기준점 만들어 비교해서 결정하는 경향이 있대요
만원이란 기준점 제시해 사도록 유도… '할인받으니 이득'이라는 판단 내려

지난해 연말 기상청이 "한강이 얼어붙었다"고 공식 발표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500㎞에 달하는 한강 전체가 얼었다는 뜻은 아니에요. 한강의 특정 지점이 얼면 한강이 얼었다고 발표하지요. 서울 동작구 한강대교 남단에서 상류로 100m 거슬러 올라간 지점이라고 해요. 해당 지점을 '한강 결빙(結氷) 관측 지점'이라고 합니다. 이곳이 얼음으로 뒤덮여 아래로 흐르는 강물이 보이지 않으면 '한강이 얼었다'고 판정한다고 해요. 거꾸로 한강의 다른 곳이 모두 얼어도 이 관측 지점이 얼지 않으면 한강이 얼었다고 공식적으로 얘기할 수 없다니, 재미있지요?

닻 내림 효과

우리는 어떤 판단을 할 때 대부분 '기준점'부터 생각합니다. 물건이 크고 작은지 판단할 때도 다른 물체와 비교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예를 들어 '달걀 크기만 한' 같은 표현이 있죠. 또 자기 지위를 판단할 때도 주변 사람 지위와 비교하죠. '달걀 크기'처럼 표준으로 사용하는 기준점을 '준거 기준' 또는 '준거 틀'이라고 합니다.

[이동귀의 심리학이야기] 정가 7000원보다 '만원짜리 30%할인'이 더 끌리는 이유
/그림=박다솜
어떤 준거 틀이 형성된 다음 이 기준이 추후 발생한 일을 판단할 때 영향을 주는 현상을 '닻 내림 효과(anchoring effect)'라고 해요. 대니얼 카너먼(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Tversky)라는 학자가 실험을 통해 증명했어요.

배가 항구에 도착해 닻을 내리면 배는 닻에 묶인 밧줄 반경 이상으로는 움직이지 못해요. 사람의 판단도 처음 제시된 기준점이 닻 역할을 할 때가 있어요. 판단하는 데에 필요한 정보나 지식이 부족할 때죠.

같은 숫자를 곱했는데 결과가 다르다?

카너먼은 실험을 통해 '닻 내림 효과'를 확인했어요. 연구 참여자에게 곱셈 문제를 풀라고 하면서 계산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고 값을 예상하게 했죠.

A그룹에는 1×2×3×4×5×6×7×8(오름차순 곱하기 문제)의 값을, B그룹에는 8×7×6×5×4×3×2×1(내림차순 곱하기 문제)의 값을 예상하게 했어요. 순서만 달랐지 같은 수를 곱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정답은 4만320으로 같았어요.

그런데 참여자들은 계산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으니까 앞에 제시된 숫자 몇 개를 곱하다가 전체 답을 예상했죠. 실험 결과 A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보고한 답의 중앙값(median·주어진 값을 크기 순서로 정렬했을 때 가장 중앙에 있는 값)은 512였는데, B그룹의 중앙값은 2250이었어요.

이렇게 두 그룹의 답이 차이 난 것은 오름차순 곱하기 문제를 받은 사람들은 처음에 제시된 작은 숫자들 몇 개를 곱한 값을 기준으로 답을 추론한 반면 내림차순 곱하기 문제를 받은 사람들은 큰 숫자 몇 개를 곱한 것을 기준점으로 사용했기 때문이에요. 기준점에 따라 답이 바뀐 것이죠.

'닻 내림 효과'가 생기는 이유는 우리가 판단이나 결정을 내릴 때 정보나 사전 지식이 충분치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어려운 계산을 짧은 시간 동안 해야 하면 주로 부정확한 감각이나 직관을 기준점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참고할 기준점이 무엇이었는지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대학교수가 학생들의 기말 보고서를 채점할 때를 예로 들어 볼게요. '중간고사'에서 100점 맞은 학생 A와 70점을 맞은 학생 B의 보고서가 있다고 합시다. '닻 내림 효과'에 의해 A가 쓴 기말 보고서에 높은 점수를 줄 가능성이 더 크답니다. 중간고사 성적이 기말 보고서 점수를 판단하는 '준거 기준'으로 작용한 거예요.

마트 세일도 '닻 내림 효과' 쓴대요

마트에서도 이런 '닻 내림 효과'를 이용한 할인 행사를 많이 해요. 예를 들어 잘 안 팔리는 7000원짜리 장난감이 있다고 가정해볼게요. 똑같은 물건에 1만원이라고 적고, 이 가격에 ×표를 한 다음 30% 할인해 7000원에 판다고 표시하면 사람들이 살 가능성이 커져요. '할인받았으니까 이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기준점 1만원에서 3000원을 빼준다니까 '싸게 산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지요.

다른 예로 비싼 물건들을 여러 개 진열해놓고 그중에 가격이 낮은 물건을 맨 나중에 배치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앞에 있는 비싼 물건을 보면서 '너무 비싸서 못 사겠다'고 생각하다가 뒤에 싼 가격이 나오면 역시 '사는 게 이득'이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앞에 배치한 비싼 물건들이 기준점이 되면서 싼 물건에 지갑을 열게 되죠. 이렇게 '닻 내림 효과'는 충동구매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문제도 있어요.

이렇게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을 알면 합리적인 소비를 할 가능성도 커져요. 한 연구에 의하면, 현금 할인과 쇼윈도 상품 진열이 충동구매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충동구매를 막으려면 마케팅 영향력을 기억하고, 마트에 가기 전에 살 물건을 미리 메모지에 적고 해당 물건을 사는 데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