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베토벤·드뷔시·드보르자크… 달 하면 떠오르는 거장이죠

입력 : 2019.01.19 03:05

환상적 분위기의 베토벤 피아노곡, 후세에 의해 '월광 소나타'로 불려
드뷔시 '달빛', 서정적인 선율 돋보여

지난 3일 중국의 무인 달 탐사선 창어(嫦娥) 4호가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달 뒷면에 착륙했어요. 창어는 고대 중국에서 달에 산다고 생각한 여신입니다. 마침 올해는 아폴로 11호를 타고 간 우주인들이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디딘 지 50년이 되는 해지요. 그동안 인간이 보낸 우주선이 달에 성공적으로 착륙한 건 창어 4호가 스무 번째입니다. 하지만 달의 뒷면에 내린 건 창어 4호가 처음이에요. 지금껏 베일에 싸여 있던 달의 뒷모습을 파헤치는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고 할 수 있죠.

밤하늘을 은은히 밝히는 달빛을 바라보고 있자면 신비스러운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문학이나 미술 작품들에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다양한 표정의 달과 그 분위기를 묘사한 걸작이 많죠. 아름다운 달빛을 그려낸 예술 작품은 음악에도 많이 있어요. 오늘은 음악 속에 들어 있는 달 이야기를 알아볼까요?

먼저 클로드 드뷔시(1862~1918)의 피아노곡 '달빛'입니다. 드뷔시는 '인상주의'라는 스타일의 음악을 처음 만들었는데요, 바람과 비, 물과 불 등 자연현상들을 음악으로 생생하게 표현하는 작품을 여럿 남겼습니다. 그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기 때문에 피아노곡 가운데 걸작이 많습니다. '달빛'이 들어 있는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은 1890년에 만들어졌답니다. 모두 네 곡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중 세 번째 곡인 '달빛'의 분위기는 매우 차분하고 고요합니다. 서정적인 선율이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는데, 음이 올라가는 곳은 우리가 달을 바라보는 시선을, 음이 내려오는 부분은 우리를 향해 달이 그 빛을 비춰주는 모습을 표현한 듯 들립니다.
소프라노 크리스틴 오폴라이스가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에서 아리아 ‘달에 부치는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 자신의 사랑을 전해달라고 달에 부탁하는 내용이지요. 드뷔시, 베토벤, 드보르자크 등 여러 음악가가 달을 소재로 곡을 만들었답니다.
소프라노 크리스틴 오폴라이스가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에서 아리아 ‘달에 부치는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 자신의 사랑을 전해달라고 달에 부탁하는 내용이지요. 드뷔시, 베토벤, 드보르자크 등 여러 음악가가 달을 소재로 곡을 만들었답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가사로 달빛의 신비로움과 그 감상을 표현한 가곡도 있어요. 드뷔시의 선배 격인 프랑스의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1845~1924)의 '달빛'이죠. 포레는 낭만적인 분위기와 투명한 색채를 가득 품은 피아노와 실내악을 많이 쓴 작곡가랍니다. 포레의 작품은 특유의 화성(和聲) 때문에 어딘지 비밀스러운 매력이 있습니다. 미뉴에트(보통 빠르기로 된 세 박자의 춤곡)풍으로 되어 있는 가곡 '달빛'은 폴 베를렌의 시집 '우아한 축제' 중 '하얀 달'에서 가사를 따왔어요. 앞서 설명한 드뷔시의 피아노곡도 이 시에서 악상을 얻었다고 알려졌죠. 다음은 가사 중 일부입니다.

"그대의 영혼은 빼어난 풍경화/ 화폭 위를 광대와 탈춤꾼들이 홀리듯이/ 류트를 연주하고 춤추며 지나가지만/ 그들의 가면 뒤로 슬픔이 비친다/ 고요하며 슬프고 아름다운 달빛/ 달빛은 나무에서 새들을 꿈꾸게 하네."

달에 관련된 노래는 오페라에도 나와요. 체코의 국민음악파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1841~1904)의 오페라 '루살카' 1막에 나오는 아리아 '달에 부치는 노래'가 대표적입니다. '루살카'는 극에 등장하는 물의 요정이자 여주인공의 이름입니다. 숲으로 사냥하러 나온 왕자를 보고 반한 루살카가 사랑을 위해 말을 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변하지만, 결국 버림을 받고 맙니다. 루살카의 아리아는 사랑에 빠진 루살카가 달을 보며 자신의 사랑을 왕자에게 전해달라고 부르는 노래입니다. "오, 은빛 달아! 그에게 말해다오/ 내 팔이 그대를 안고 있음을."

뭐니 뭐니 해도 달과 관련된 클래식 음악 중 제일 유명한 곡은 베토벤의 소나타 작품 27-2입니다. '월광(月光·달빛)'으로 흔히 알려져 있죠. 1801년 만들어진 이 곡은 세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악장에 담긴 사색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가 워낙 매력적이라 베토벤의 피아노 작품 가운데 제일 많이 알려졌어요.

클래식에서 작품의 표제나 별명은 작곡가가 아닌 다른 사람 덕분에 붙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곡도 그렇습니다.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지 5년 후 음악평론가이자 시인인 렐슈타프가 1악장을 듣고 "이 곡은 마치 스위스 루체른 호수에 비친 달빛을 연상케 한다"고 했는데, 그 후 이 '월광 소나타'란 별명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죠.

우주과학의 진보로 달의 뒷면까지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달이 좀 더 친숙해진 느낌이 드네요. 달에 계수나무와 토끼는 없다지만, 아름다운 달빛을 그려낸 음악 작품 속 달은 여전히 우리에게 환상과 꿈을 품게 합니다.

[별을 노래한 곡들]

달이 아닌 별들을 그린 작품도 있습니다. 영국 작곡가 구스타브 홀스트(1874~1934)가 1916년 완성한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행성'이죠.

홀스트는 1913년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천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고, 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의 움직임에 강한 영감을 받아 오케스트라와 오르간, 여성합창을 포함하는 대규모 작품을 구상했어요. 모두 일곱 악장으로, 지구를 제외한 수성부터 해왕성까지를 담고 있는 이 모음곡에서 홀스트는 생동감 있고 활기찬 별(수성·화성·목성), 사색적이고 환상적인 별(금성·토성·천왕성·해왕성)로 분위기를 나눠 표현하고 있어요.

이 작품은 특히 금관악기들이 큰 활약을 하고 있는데, 젊은 시절 트롬본을 연주했던 홀스트의 경험이 들어 있다고 하죠. 제일 유명한 악장은 '목성'인데요, 앞부분이 TV 뉴스 프로그램 시작 음악으로 오랫동안 쓰이면서 친숙해졌습니다.




김주영·피아니스트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