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나해란의 뇌과학 교실] "초콜릿 생각하지 마라"했더니 오히려 두 배 더 먹었대요

입력 : 2019.01.16 03:00

망각의 역설

살다 보면 지우고 싶은 기억들이 있지요. 그런데 그런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할수록 더 머릿속을 맴돕니다. 이런 현상은 연구로도 이미 밝혀졌다고 해요.

대니얼 웨그너(Wegner)가 실험한 '북극곰 효과' 연구입니다. 글을 읽는 지금 빙하 속 '하얀색 북극곰'을 머릿속에 떠올려보세요. 떠올랐나요? 그럼 지금부터는 북극곰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도록 지워버리는 겁니다. 자, 북극곰이 머릿속에서 지워졌나요? 아니죠? 오히려 하얀 북극곰 생각이 계속 날 겁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생각을 없애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떤 생각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라는 명령을 받는 순간, 뇌의 입장에서는 '없애야 할 생각'을 떠올리게 됩니다. '없애기'라는 명령을 받았으니, 먼저 없앨 대상을 찾아야겠죠. 이처럼 '없애기'와 '떠올리기'가 쌍을 이루다보니 잊어버리려고 노력할수록 뇌는 되레 잊고 싶은 기억을 자꾸 떠올리게 됩니다.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달콤한 간식, 술, 담배를 끊고 싶다고 이것들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건 사실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무심코 지내는 것보다 오히려 머리에 깊게 새겨지니 더 끊기가 어려워지죠.

영국 세인트조지대학의 제임스 어스킨(Erskine)이라는 연구자는 사람들을 불러 실험을 했답니다. 모인 사람의 3분의 1에게는 '절대로 초콜릿 생각하지 마라'고 이야기하고, 3분의 1에겐 '초콜릿에 대해 편히 생각해보라'고 이야기했지요. 나머지 3분의 1에게는 어떤 지시도 주지 않았어요. 5분 뒤 모인 사람들에게 초콜릿을 나눠줬어요. 재밌는 상황이 벌어졌어요. '절대로 초콜릿 생각하지 마라'고 한 사람들은 아무 지시도 받지 않은 사람들보다 거의 두 배나 초콜릿을 많이 먹어버린 것이죠.

'하지 마라'고 하면 역설적으로 그 행동에 집착하기 쉽다는 겁니다. '기름진 패스트푸드 먹지 말자'고 계속 생각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아찔하네요.

생각을 없애는 방법은 없을까요.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은 일종의 '디폴트 모드(뇌가 특별한 노력 없이 있는 상태)'로 작용합니다. 숨 쉬는 것처럼 자동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는 못 없애는 것이죠.

생각을 없애려면 뇌가 신경을 쓸 다른 것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멍하니 있어서는 안 되고 주의를 돌릴 구체적이고 정확한 다른 사건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격렬한 운동을 해도 생각이 줄어들기 쉽다고 해요. 뇌가 생각 대신 몸 쓰는 것에 집중하기 때문이지요. 좀 더 손쉽게는 숨 쉬는 것에 집중해 볼 수도 있어요.

처음 시작했던 머릿속 북극곰이 없어졌나요? 다시 떠올랐지요. 이번엔 '북극곰이 또 떠올랐구나'라고 그러려니 해보세요. 어떤 생각을 받아들이면, 억지로 없애려고 하는 것보다는 사라지기 쉽다고 해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지요? 생각을 없애는 방법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나해란 여의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