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조선 시대에는 다섯 살 차이 나도 친구였대요

입력 : 2019.01.16 03:00

'만 나이'보다 '세는 나이' 쓰는 한국… 한두 살 차이에도 서열 따져 불만
오성과 한음, 5살 차이지만 좋은 벗
한 살 단위로 서열 가리는 문화는 근·현대서부터 시작됐다고 해요

최근 한 국회의원이 공문서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만 나이'만 쓰자는 법안을 내놨어요. 나이 세는 방법이 제각각이라 혼란스럽고, 나이로 서열이 정해지는 문화도 시대에 맞지 않으니 '만 나이'로 통일하자는 주장이지요.

서양에선 생일 기준으로 '만 ○세'라고 하지요.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두루 쓰는 건 역시 '세는 나이'랍니다. 출생연도부터 한 살이 되고 새해마다 한 살씩 더하는 방식이지요. 이 밖에 병역법이나 청소년보호법 등 일부 법률에서는 현재 연도에서 출생연도를 뺀 '연 나이'를 사용합니다. 신문에 나오는 나이도 '연 나이'예요. 일부 1~2월 출생자들의 경우 전년도 출생자와 같은 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생겨난 '사회적 나이'를 주장하기도 하죠.

그렇다면 조선시대 사람들은 나이를 어떻게 셌을까요? 지금처럼 '한 살'차이로 서열을 엄격하게 따졌을까요?

우리나라에만 있는 '세는 나이'

한·중·일은 20세기까지 주로 '세는 나이'를 썼어요. 일본은 1950년대부터, 중국은 1960~70년대에 일어난 문화대혁명 뒤로 '만 나이'를 사용하게 되었답니다.

[뉴스 속의 한국사] 조선 시대에는 다섯 살 차이 나도 친구였대요
/그림=안병현
우리나라도 1962년부터 민법상 '만 나이'를 사용하게 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여전히 '세는 나이'를 씁니다. 이 방식으로 나이를 세는 곳은 이제 우리나라뿐이래요. '세는 나이를 버리고 만 나이로 통일하자'는 주장이 있지만 '우리 나름의 고유한 문화'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답니다.

음력을 기준으로 생활했던 조선시대에도 나이는 세는 나이로 계산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빠른 ○○년생'이니 하면서 몇 개월 차이를 따진다거나 한두 살 많은 선배에게 깍듯하게 대해야 한다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었나 봐요. 나이 차이가 좀 있어도 서로 친구로 지내는 경우를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 쉽게 찾을 수 있거든요.

'5년이 많으면 어깨를 나란히'

송나라 유학자 주자가 아이들에게 유학의 기본을 가르치기 위해 쓴 '소학(小學)'과 조선 중종 때 박세무 등이 엮어 서당에서 가르친 '동몽선습'에 이런 내용이 나와요.

'나이가 많은 것이 배가 되면 어버이처럼 섬기고, 10년이 많으면 형처럼 섬기고, 5년이 많으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따라가니….'

즉 5년 정도의 나이 차이는 친구처럼 지냈다는 뜻이에요. 나이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교제하는 벗을 '나이를 잊는 친구 사이'라는 뜻으로 망년지우(忘年之友)라고 하는데 안동 출신 재일교포 윤학준이 쓴 양반 문화를 다룬 책을 보면 망년지우를 사귈 수 있는 나이가 상팔하팔(上八下八)이라는 말이 있어요. 위로 여덟 살, 아래로 여덟 살까지는 친구로 지낸다는 뜻이지요.

나이 차이를 뛰어넘은 선조들

실제로 적지 않은 나이 차이가 있는데도 친구로 지내며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이 있었어요.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 오성과 한음 설화로 유명한 이항복과 이덕형입니다. 두 사람은 다섯 살 차이가 나지만 깊은 우정을 쌓았어요. 두 사람이 친한 친구가 된 것은 1578년 과거시험장에서 처음 만나면서였어요. 이항복이 22세, 이덕형이 17세 때였죠. 아주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를 '죽마고우(竹馬故友)'라고 하는데, 대나무로 만든 말을 타고 놀던 친구라는 뜻이에요. 이항복과 이덕형은 죽마고우라기엔 좀 더 철이 든 뒤에 만났지만, 임진왜란과 광해군의 폭정이 이어지는 혼란한 시대를 함께 견디며 깊은 우정을 나누었어요.

임진왜란 때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앞장서서 큰 공을 세운 류성룡과 이순신도 세 살 차이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깊은 우정을 나눈 사이였어요. 류성룡이 "신의 집은 이순신과 같은 동네였기 때문에 그의 사람됨을 깊이 알고 있다"고 선조에게 한 말이 '선조실록'에 기록돼 있고, 이순신이 쓴 '난중일기'에도 류성룡과 편지를 교환했다는 기록이 많이 보이거든요.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였던 겸재 정선도 자신보다 다섯 살 위인 시인 이병연과 평생 우정을 나눴어요. 이병연은 나이에 상관없이 정선을 벗이라 불렀고, 두 사람은 여든을 넘길 때까지 시와 그림을 통해 우정을 나누었지요.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도 이병연을 위해 그린 그림이라고 해요.

거슬러 올라가면 신라 시대 김유신과 김춘추도 나이 차이가 일곱 살이나 나는데 공차기 놀이를 하며 우정을 나눴다고 해요. 그래서 한 살 단위로 서열을 가리는 문화가 생겨난 것은 일정한 나이에 학교에 입학하는 '학령제'가 도입된 근·현대부터라는 주장도 있어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