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새먼의 국제뉴스 따라잡기] 다시 고래 잡는 일본에 "도쿄올림픽 불참" 항의 봇물

입력 : 2019.01.08 03:09

일본 국제포경위원회 탈퇴

일본 정부가 지난달 25일 각료회의를 열고 국제포경위원회(IWC)에서 공식 탈퇴하겠다고 결정했어요. 각료회의는 한국 국무회의에 해당합니다. 국제사회 여론을 거스르며 1988년 이후 30년 만에 다시 상업 포경(捕鯨·고래잡이)을 재개하기로 한 거죠.

곧바로 세계 언론과 그린피스, 시셰퍼드 같은 환경 단체가 들고일어났어요. 성난 단체들과 개인들로부터 '일본에서 올해 열릴 2019년 럭비월드컵과 내년에 열릴 2020년 도쿄올림픽을 보이콧하자'는 전화가 쏟아지고 있대요.

국제포경위원회는 1986년 전 세계 수많은 고래종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며 상업 포경 중단을 선언했어요. 일본은 고래 사냥을 재개하겠다면서 1986년 이후 고래 수가 불어났다는 점을 근거로 댔어요. 고래 수가 회복돼 더 이상 멸종 위기라고 할 수 없는 종이 많은데도, 국제포경위원회는 상업 포경 중지를 선언한 뒤 한 번도 포경 허용량을 새로 발표한 적이 없어요. 그러니 대체 무슨 명분으로 고래 사냥을 금지하느냐는 거지요.
지난달 일본이 고래잡이를 다시 시작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어요. 사진은 혹등고래가 오스트레일리아 인근 바다에서 수면 위로 뛰쳐 오르는 모습.
지난달 일본이 고래잡이를 다시 시작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어요. 사진은 혹등고래가 오스트레일리아 인근 바다에서 수면 위로 뛰쳐 오르는 모습. /AFP 연합뉴스
고래 사냥의 역사는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요. 중세 내내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고래 사냥이 이뤄졌어요. 가톨릭 교회는 고래를 물고기라고 봤어요. 그리스도의 고행을 기리는 사순절 기간 동안 육식을 삼가되, 고래 고기 같은 물고기는 먹어도 괜찮다고 했지요. 유럽에서는 네덜란드, 프랑스, 노르웨이, 스페인 등에서, 신대륙에서는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등에서 포경 산업이 번성했어요. 미국의 경우 고기보다 고래기름을 얻는 게 주된 목적이었지요. 미국 작가 허먼 멜빌이 쓴 명작 소설 '모비딕'도 거대한 흰고래를 사냥하는 이야기예요.

그러다 20세기 들어 고래 사냥에 브레이크가 걸렸어요. 각국이 첨단 장비로 고래를 남획해 눈에 띄게 고래 수가 줄었거든요. 국제포경위원회가 생긴 것도 그래서였어요. 국제포경위원회가 '고래 사냥을 금지하기 위한 단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실제로는 고래 산업이 질서 있게 발전하도록 고래 수를 조절하기 위한 국제기구예요. 1946년 출범했지요.

국제포경위원회는 고래 사냥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해요. 이누이트족 같은 소수민족이 전통적으로 해온 고래 사냥, 상업적인 고래 사냥, 연구 목적 고래 사냥이에요. 이 중 소수민족의 고래 사냥과 연구 목적 고래 사냥은 지금도 매년 정해진 한도 안에서 허용하고 있어요.

문제는 상업적인 고래 사냥인데, 현재 전 세계적으로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두 나라가 하고 있어요. 이 두 나라는 국제포경위원회의 고래 사냥 중지 선언에 반대하면서, 매년 자체적으로 세운 한도 안에서 고래를 잡고 있어요. 두 나라에선 고래 고기가 인기예요. 노르웨이 사람들은 고래 고기를 '대양의 스테이크'라고 부릅니다.

그동안 일본은 상업적인 고래잡이를 중단한 대신, 연구 목적을 내세워 주로 남극해, 북서태평양, 일본 영해에서 고래 사냥을 해왔어요. 1986년 이후 국제포경위원회가 연구 목적으로 사냥을 허용한 고래 1만7243마리 중 920마리를 뺀 다른 모든 고래가 일본이 잡은 고래랍니다. 같은 시기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가 상업적 목적으로 잡은 고래를 합친 것(1만4287마리)보다 더 많지요. 이렇게 잡은 고래를 식용으로 유통한다는 의혹이 있어요.

일본, 노르웨이, 아이슬란드는 고래 사냥이 자국 문화의 일부라고 주장해왔어요.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장관도 국제포경위원회 탈퇴를 발표하면서 "일본은 고래를 통해 삶과 문화를 발달시켰다"고 했지요.

그런 일본을 비판하기 전에 몇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어요. 인간이 고기를 먹기 위해 다른 동물과 물고기를 죽여선 안 된다고 믿는 채식주의자들의 의견도 물론 존중해야겠지요. 하지만 그들은 소수고, 인류 대부분은 고기를 먹습니다. 그렇다면 '왜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는 먹어도 되고 고래 고기는 안 되느냐'는 질문이 불거져요.

고래 사냥에 반대하는 주장 중에는 '고래는 지능이 높아서 안 된다'는 것도 있어요. 하지만 돼지도 지능이 높답니다. '고래는 멋진 생명체라 안 된다'는 주장도 있어요. 하지만 미학적인 이유로 도덕적인 결정을 내려선 곤란하죠.

고래에게 작살을 던지는 게 잔혹하긴 하지만, 선진국 농장에서 돼지를 키워 도축하는 것보다 더 잔혹한지요? 어떤 이들은 일본이 국제포경위원회에서 탈퇴하는 게 국제사회의 룰을 깨는 거라고 해요. 하지만 미국이 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하면서 미친 악영향에 비해, 일본이 고래 사냥을 시작해서 생기는 재앙이 더 크다고는 할 수 없지요.

일본 정부는 자국 영해 내에서만 포경을 허용하고,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정어리고래 등 개체 수가 많은 고래종만 잡겠다고 했어요. 앞으로 일본이 상업 포경을 재개하면, 지금까지 연구 목적으로 남극해에서 해온 포경은 자동적으로 금지됩니다.

국제포경위원회가 상업 포경 중지를 선언하기 전까지, 한국도 포경국 중 하나였어요.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고래 사냥 기록이 한국 울주군 반구대에 새겨진 고래잡이 암각화랍니다. 지금은 상업적인 고래잡이를 하지 않고, 다른 고기를 잡으려고 쳐둔 그물에 고래가 걸려 죽었을 때만 먹고 있어요.



앤드루 새먼·아시아타임스 동북아 특파원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