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최의창의 스포츠 인문학] 스키를 'V'자로 벌리고 뛰자 20m 더 멀리 날았대요
스포츠 창의성
그는 이 골프 스윙으로 일본프로골프투어 카시오월드오픈에서 우승했어요. 일반적으로 본다면 엉망인 자세지만, 자신의 신체 조건에 가장 적합한 스윙을 찾아내 최고 효과를 내도록 몸에 익힌 결과였답니다. 그는 나이를 먹으며 비거리(飛距離·친 공이 날아가는 거리)가 줄어들자 모양새는 특이하지만 더 멀리 골프공을 칠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을 찾았어요. 창의성을 발휘한 거지요. 정석(定石)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발상을 바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새로운 길을 찾은 거예요.
스포츠는 이런 창의성을 발휘한 사례로 가득해요. 지금 육상의 높이뛰기 신기록은 젖혀뛰기 덕분에 가능해졌어요. 한 발로 점프해서 몸을 활처럼 뒤로 젖혀서 뛰어넘는 기술이에요. 영어로는 포스베리 플롭(Fosbury flop)이라고 해요. 미국의 딕 포스베리 선수가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이 기술을 최초로 선보이며 2m24㎝를 넘어 금메달을 따내서 붙은 이름이에요. 이전까지는 가위뛰기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뒤로 몸을 젖혀서 더 높이 뛰는 방안을 찾아낸 거죠.
- ▲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스키점프 노멀힐에서 독일 안드레아스 벨링거 선수가 V자로 하늘을 날고 있어요. 지금은 V자로 뛰는 게 상식이지만 1985년까지는 선수들이 스키를 11자로 하고 뛰었어요. 스웨덴 얀 보클뢰브 선수가 처음 V자로 뛰었는데 이렇게 뛸 때 10% 이상 더 날아갈 수 있다는 연구가 나오면서 널리 퍼졌죠. /오종찬 기자
작년 평창올림픽 중계를 즐겨 본 친구들은 스키점프 선수들이 공중에서 스키 앞을 벌려 'V'자로 만들던 모습을 기억할 거예요. 거의 모든 선수가 V자로 뛰었어요. 그런데 1980년대까지는 대부분 11자 모양으로 발을 나란히 하고 뛰었대요. 'V'자로 공중을 날아가는 건 스웨덴의 얀 보클뢰브가 1985년 처음 선보였는데 그가 1989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널리 퍼졌어요. 과학적 이유가 있어요. V자로 뛰면 11자로 뛸 때보다 공기를 받는 면적이 늘어요. 그래서 공중에 떠 있게 해주는 힘인 양력(揚力)이 11자로 뛸 때보다 최고 28%까지 늘어나고 날아가는 거리도 10% 이상 늘어난다고 해요. 거의 20m를 더 뛸 수 있게 해주는 셈이죠. V자 뛰기가 널리 퍼지면서 1990년대 스키점프는 처음으로 200m 벽을 깼어요. 현재 세계신기록은 253.5m랍니다.
수영 학원에서 자유형을 배울 때 레인 끝에서 도는 법을 배우죠. 그걸 '플립 턴(flip turn)'이라고 불러요. 이 플립 턴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미국의 아돌프 키에퍼가 배영 100m 종목에서 1분05초09로 금메달을 따는 데에 결정적 도움을 줬다고 해요. 물속에서 한 바퀴 돌고 벽을 발로 차고 나가면서 가속도를 덜 줄이고 더 큰 추진력을 낼 방법을 개발한 거죠. 당시 선수들은 50m 턴 지점에서 손으로 벽을 터치하고 돌아갔는데 관련 규정은 '벽을 터치해야 한다'는 규정뿐이었다고 해요. 키에퍼는 이 기술로 자기 기록을 1초 이상 단축했죠. 키에퍼가 배영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자유형 종목에서도 널리 쓰이게 됐어요. 다만 턴할 때 손이 반드시 벽에 닿아야 하는 평영과 접영에서는 쓰이지 않아요.
단체 종목에서도 창의성이 빛나는 사례가 있어요. 네덜란드 축구 선수 요한 크루이프는 전원 공격, 전원 수비라는 '토털 사커' 개념을 도입해 1970년대 이후 축구 판도를 바꿔 놓았죠. 유럽 국가들의 축구 대항전인 '2012년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Euro 2012)'에서는 스페인팀이 빠르게 이어지는 짧은 패스로 슈팅 기회를 만들고, 공 점유율을 높여 나가는 '티키타카(Tiki-taka)' 전술로 깜짝 우승을 이뤄냈고요.
다중 지능 이론을 주장한 하워드 가드너 하버드대 교수에 따르면, 사람에겐 언어 지능, 논리 수학 지능, 음악 지능, 신체 운동 지능, 공간지능, 인간 친화 지능, 자기 성찰 지능, 자연 친화 지능의 8가지 지능이 있어요. 운동선수들은 신체 운동 지능을 발휘해 스포츠 창의성을 이룹니다. 신체 운동 지능은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느낀 것들을 몸으로 표현해내는 능력을 말해요.
가끔 '운동선수는 머리가 별로 좋지 않다'는 편견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말 그대로 편견일 뿐이에요. 일단 사실과는 다르답니다. 일반 학생들이 영어 공부하고 수학 문제 풀 시간에, 운동선수들은 상대편을 이길 기술과 전술을 높은 수준으로 몸에 익히며 숙련하는 데에 온 정신을 쏟았을 뿐이에요. 언어 지능이나 논리 수학 지능만을 측정하는 시험에 그만큼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을 뿐, 다른 방향에서 뛰어난 수준에 도달한 거예요. 관심 내용, 노력하는 방향, 시간 투자가 다른 영역에서 이루어진 거죠. 스포츠 창의성은 운동선수의 신체 운동 지능이 높다는 점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예요.
스포츠 경기에서 선수들이 보여주는 독창성과 창의력은 거저 생기지 않아요. '1만 시간의 법칙'을 창안한 안데르스 에릭슨 플로리다주립대 교수에 따르면, 운동선수들이 몸과 마음을 바쳐 최소 10년간 약 1만 시간을 숙달해 생각과 동작이 자동 반사적 수준까지 되도록 훈련해서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해요. 스포츠 창의성은 탁월한 신체 운동 지능과 노력의 결과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