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도청 관련 보도가 '가짜 뉴스'라던 닉슨, 결국 물러났죠
워터게이트 사건
미국은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의혹을 밝히기 위한 '뮬러 특검'을 꾸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들을 조사하고 있어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Nixon·1913~1994) 전 대통령과 트럼프를 견주며, 대통령 '탄핵'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늘고 있어요. '워터게이트'는 어떤 사건이었을까요?
◇베트남전 끝내고 화해 무드 조성한 닉슨
변호사였던 닉슨은 공화당에 들어간 후 1946년에 하원의원에 당선됐어요. 1952년 아이젠하워가 닉슨을 러닝메이트(running mate·부통령 후보자)로 지명했고 두 사람은 선거에서 승리했어요. 부통령이 된 닉슨은 성공 가도를 걸으며 정치가로서 능력을 인정받아요. 1968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험프리 후보를 누르고 미국 제37대 대통령이 되었지요.
- ▲ 1974년 8월 대통령직을 사임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나기에 앞서 전용 헬리콥터에 올라 활짝 웃고 있어요.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은폐하려다 탄핵당하게 되자 스스로 자리를 떠났어요. /미국대통령실
그는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첨예한 긴장을 완화시켰어요. 그는 부통령 시절 소련을 방문해 소련 지도자였던 흐루쇼프와 만났어요. 대통령에 당선된 이듬해에 '닉슨 독트린'을 발표해 미국의 대(對)아시아 정책을 밝혔어요. 미국은 아시아 국가들에 직접적이거나 군사적인 간섭을 피하고 화해, 협력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선언했지요. 1972년 중국을 방문해 화해의 분위기를 이끌었어요. 미국 국내외로 비판이 거셌던 베트남전쟁도 끝냈어요. 1973년 미국은 북베트남과 파리 평화협정을 맺고, 10년 넘게 끈 베트남전쟁에서 철수합니다. 닉슨은 1972년 대통령 재선에 나섰는데 당시 닉슨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는 평가가 많았어요.
◇'워터게이트'에 있는 야당 본부 도청 사건
대통령 선거가 몇 개월 앞으로 다가온 1972년 6월, 괴한 5명이 워싱턴에 있는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 본부 사무실에 침입했다가 체포됐어요. 괴한들은 물건을 훔치려고 왔다고 주장했지만 수상한 면이 있었어요. 카메라, 도청 장치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대선 기간, 민주당 사무실에 도청 장치 갖고 들어간 괴한.' 몇 가지 키워드만 봐도 정치 음모 냄새가 모락모락 났어요. 닉슨의 재선 가도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실제 선거에선 큰 파괴력이 없었어요. 닉슨은 득표율 60%로 압도적인 격차를 보이며 재선에 성공했어요. 그는 대선 과정에서 워터게이트 문제를 지속적으로 문제 삼은 일부 매체를 향해 '가짜 뉴스'를 내보내는 것 아니냐고 되레 역공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워터게이트 빌딩의 괴한들을 수상히 여긴 기자 두 사람이 닉슨의 거짓말을 밝혀냈어요.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와 칼 번스틴 기자가 이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들었어요. 워싱턴포스트 취재팀은 결국 침입자 다섯 명 중 한 명이 전직 중앙정보부(CIA) 요원이며 닉슨 재선 위원회의 경호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어요. 또 괴한들을 지휘한 사람이 역시 CIA 출신이자 닉슨 재선 위원회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또 다른 인사라는 정황 증거도 확보했어요.
이 사실들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워싱턴포스트는 닉슨 행정부로부터 정치적 압력을 받았어요. 백악관에서는 기사 내용을 노골적으로 비난했고 기자들의 백악관 출입을 금지했어요. 워싱턴포스트에 실리는 광고도 끊기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당시 워싱턴포스트의 사주인 캐서린 그레이엄(1917~2001)은 오히려 두 기자를 응원했어요.
◇탄핵 앞두자 대통령직 스스로 포기
1973년 워터게이트의 괴한들이 재판을 받던 도중에 '백악관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은폐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백악관이 이들에게 민주당 사무실을 도청하라고 지시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CIA를 동원해 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움직였다는 건 분명했어요. 떳떳했다면 숨길 게 없었겠죠. 의혹이 점점 더 커졌어요. 같은 해 5월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출신인 아치볼드 콕스가 진상을 밝히기 위해 특별검사로 임명됐어요.
특검 수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새로운 핵심 증거가 등장합니다. 알렉산더 버터필드 전 대통령 부보좌관이 상원 청문회에서 "워터게이트 사건 은폐를 지시하는 대통령의 발언이 녹음된 테이프가 존재한다"고 폭로한 겁니다.
콕스 검사는 백악관에 이 녹음테이프를 제출하라고 요구했어요. 닉슨은 거부했지요. 닉슨은 되레 콕스 특검을 해임하겠다고 나섰어요. 그러자 특검 임면권자인 법무장관이 이에 반발해 사임했어요. 법무장관 권한 대행인 법무부 부장관도 그를 해임할 수 없다고 뒤따라 사임했고요. 결국 법무부 송무차관이 콕스 특검을 해임하는 촌극이 벌어져요. 이 모든 일이 토요일 하루에 벌어졌지요. 한꺼번에 세 명이 물러나 언론에서 이 사건을 '토요일 밤의 학살'이라고 불렀어요.
눈엣가시였던 콕스 특검은 물러났지만 비판 여론은 더 심해졌어요. 결국 1974년 7월 미국 하원은 닉슨 탄핵을 결의했어요. 닉슨은 그제야 탄핵당하기 전에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길을 선택했어요. 미국 역사상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사임한 것은 처음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