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조선판 청와대 비서실… 권력 휘두르다 쫓겨나기도 했죠

입력 : 2018.12.19 03:00

[조선시대 승정원]
관청에 임금의 뜻 전달하던 기관… 정1품 못지않은 위세 누렸어요
왕실 부조리 지적하기도 했지만 눈 밖에 나 지방으로 밀려나기도

최근 청와대 직원들이 이런저런 비리를 저질러 국민의 실망을 사고 있어요. 청와대 경호실 소속 직원의 음주 폭행 사건에 이어 대통령의 의전비서관이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돼 자리에서 물러났어요. 또 공직자들의 비리를 감찰하며 공직 기강을 바로잡아야 할 청와대 비서실 소속 특별감찰반 직원들이 근무시간 중에 친선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나 감찰반 전원이 교체되는 일도 있었지요.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은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보좌하기 위해 설치된 대통령 직속 기관이에요. 비서실장 아래로 여러 수석비서관이 있는데 민정수석비서관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왕이 국가를 다스리던 조선시대에는 어떤 기관이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과 같은 역할을 맡았을까요? 그곳에 소속된 관리가 잘못을 저질러 문제가 된 경우는 없었을까요?

◇조선판 청와대 비서실 '승정원'

1392년 고려가 무너지고 조선 왕조가 시작됐어요. 조선은 그해 새로 행정 조직에 관한 제도를 정하고 반포했는데 그중 왕명 출납에 대한 일은 고려의 제도를 이어받아 중추원에서 담당하게 했어요. 중추원 안에 승지방이라는 관청을 둬서 왕명 출납의 실무를 맡게 하고, 그 우두머리로 도승지를 뒀지요. 왕명 출납은 왕이 내린 명령을 여러 관청에 전달하는 일, 혹은 신하들이나 관청에서 올린 글과 문서 등을 왕에게 전달하는 일을 말해요. 조선시대 국왕의 비서 기관으로 오늘날로 보면 대통령 비서실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요.

[뉴스 속의 한국사] 조선판 청와대 비서실… 권력 휘두르다 쫓겨나기도 했죠
/그림=안병현
태종은 1398년 '왕자의 난'을 일으켜 권력을 손에 넣은 뒤, 1400년 왕명 출납 업무를 맡은 승지방을 승정원으로 개편했어요. 1405년에는 아예 승정원을 독립된 기관으로 만들었지요.

이어 다음 임금인 세종이 1433년 승정원의 우두머리인 도승지 아래 좌승지, 우승지, 좌부승지, 우부승지, 동부승지 등 5명의 관리를 두게 하고, 이들이 각각 육조에 관련된 업무를 맡게 했어요. 육조란 이조(吏曹), 호조(戶曹), 예조(禮曹), 병조(兵曹), 형조(刑曹), 공조(工曹) 등 조선의 여섯 개 중앙부처를 가리킵니다. 세종 때에 승정원 제도를 완전하게 갖춘 거라 볼 수 있지요. 현재 청와대 비서실에 비서실장과 정책실장이 있고, 그 아래에 각 분야를 전담하는 8명의 수석비서관이 있는 것과 비교하면, 승정원 도승지가 오늘날의 비서실장 역할, 나머지 승지들이 각 분야 수석비서관 역할을 맡은 거예요.

◇임금의 '목'과 '혀' 같은 신하

승정원은 대언사(代言司), 정원(政院), 후원(喉院), 은대(銀臺) 같은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어요. 이 중 '후원'은 승정원이 왕의 목구멍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의미예요. 승정원의 승지를 후설지신(喉舌之臣)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승정원 승지를 왕의 목과 혀에 비유한 거예요.

도승지를 포함해 승정원의 6승지는 모두 품계(직위)가 정3품이었어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임금을 보좌하며, 왕명을 신하나 여러 관청에 전달하고, 상소를 비롯한 중요한 문서들을 임금에게 전달하거나 보고하는 역할을 맡아 했기에, 정치적인 상황이나 사회의 여러 문제 등에 대해 잘 알았어요. 이를 바탕으로 왕의 잘못을 지적하기도 하고, 왕과 반대되는 의견을 올리기도 하고, 왕실의 부조리를 들춰내기도 했어요. 왕이 나랏일을 결정할 때 조언하기도 했고요. 이런 성격 때문에 경우에 따라 의정부나 육조보다 되레 강한 권세를 누리기도 했어요. 승정원의 우두머리인 도승지는 판서보다 품계가 낮은데도, 위세와 권한이 정1품인 정승 못지않았지요. 안정복이 쓴 '순암집'에는 "평소 친구 사이였던 사람도 승지에게는 함부로 농담조차 하지 못한다"고 적혀 있어요. 성현은 '용재총화'에 "승지가 되면 사람들이 모두 신선처럼 우러러본다"고 썼어요.

◇왕자 비리 지적해 좌천되기도

사헌부의 건의를 임금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저질러 자리에서 물러난 인물도 있었고, 임금에게 왕자의 비리에 대한 바른말을 했다가 지방관으로 좌천된 인물도 있었어요. 도승지의 자리에 올라 거만을 떨거나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다 탄핵을 받거나 자리에서 쫓겨난 인물도 있었고요.

'조선왕조실록'에 "오늘날의 승정원은 곧 옛적의 납언(納言)"이라는 말이 나와요. 승정원의 또 다른 별칭인 납언은 임금이 신하의 간언(諫言), 즉 바른말을 받아들이는 일을 뜻해요. 중국 순 임금 때 임금의 뜻을 백성에게 전하고, 백성의 뜻을 임금에게 올려 임금과 백성을 소통시키던 직책을 납언이라 했지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