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아흔다섯살 집이 들려주는 한국 근현대사의 이모저모

입력 : 2018.12.18 03:00

딜쿠샤의 추억
ㅡ김세미·이미진

조선시대 양반들은 자기 집이나 정자에 이름 붙이기를 좋아했어요. 이름에 담긴 의미대로 살고자 하는 바람 때문이었죠. 20세기 초반 조선에 살았던 한 외국인도 집에 이름을 붙였어요. '딜쿠샤'.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이에요. 딜쿠샤의 주인은 앨버트 테일러로, 1923년 서울 종로구 행촌동 1번지에 이 집을 짓고 1942년 미국으로 추방될 때까지 살았죠.

'딜쿠샤의 추억'
/찰리북
혹시 '앨버트 테일러'라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으세요? 그는 1919년 3·1운동과 제암리 학살 사건을 전 세계에 알린 언론인이자 사업가였어요. 기사만 쓴 게 아니에요. 그는 일제의 조선인 학살을 조선총독부에 따질 정도로 조선 사람들을 사랑했어요. 이런 일 때문에 그는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 동안 복역했고, 끝내 1942년 추방당했어요.

'딜쿠샤의 추억'은 독특한 책이에요. 사람이 아니라 집 자체, 그러니까 딜쿠샤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입니다. 딜쿠샤가 지난 100년 가까이 서 있으며 지켜본 한국인의 삶을 말하는 거죠. 일제강점기, 1945년 광복, 6·25전쟁, 한국의 1960년대 이후 빠르게 발전하는 모습까지요.

처음 지었을 때 딜쿠샤는 서울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어요. 그러나 서울이 발전하면서 상황이 바뀌었어요. "전쟁에서 살아남은 나는 남산이 보이는 이 언덕 위에서 전쟁의 흔적을 지워 가는 서울을 지켜볼 수 있었어. 폐허가 되었던 도시는 빠르게 복구되기 시작했지. 거리는 파헤쳐졌다 덮어지기를 반복했고 높은 건물들이 서울을 뒤덮기 시작했단다."

100년 가까이 지나며 딜쿠샤는 이제 낡을 대로 낡았어요. 고층 빌딩에 둘러싸여 가려지면서 사람들 관심도 줄었어요. 하지만 딜쿠샤는 서러워하지 않아요. 그만큼 서울이라는 도시가, 한국 사람들이 생동감 넘치는 모습으로 성장해 왔기 때문이죠.



장동석 출판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