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동귀의 심리학 이야기] 왜 포도 따기에 실패한 여우는 "어차피 못 먹어" 생각했을까

입력 : 2018.12.18 03:00 | 수정 : 2018.12.19 17:49

[인지부조화]
생각과 행동 차이 나면 나름의 논리 만들어 합리화해요
1957년 페스팅거가 이론 발표… 기업이 마케팅에도 활용해요

한 해가 끝나가는 12월이에요. 올해 초에 세웠던 신년 계획 중 이뤄진 건 몇 개나 있나요? 담배를 피우는 어른들은 새해가 되면 '금연' 계획을 세우죠. 담배는 건강에 백해무익한 나쁜 버릇이니까요. 그렇지만 대부분 실패합니다. 몸에 나쁜 걸 알아도(생각) 흡연은 계속해요(행동). '담배를 피우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생각과 행동의 차이가 날 때 이런 식으로 뭔가 자기 나름의 논리를 만들어 해소하는 걸 심리학에서는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이론'으로 설명해요.

◇차 타면 졸린 이유는 '부조화' 때문

인지부조화에 앞서 '부조화(dissonance)'부터 설명해볼게요. 차만 타면 잠이 쏟아진다는 사람이 많아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부조화' 때문이라고 봐요.

달리는 차 안에서 휴대폰으로 웹툰을 보면 우리 눈은 스마트폰에 고정돼요. 바깥 풍경은 보지 않게 되죠. 눈으로는 마치 자동차가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느껴요.

[이동귀의 심리학 이야기] 왜 포도 따기에 실패한 여우는
/그림=박다솜
그러나 우리 몸은 실제로 흔들흔들 움직이지요. 귓속에는 몸의 기울어짐이나 회전을 감지하는 감각기관이 있어요. 이 평형기관은 차가 달리면서 생기는 진동을 고스란히 감지하지요.

눈은 정지 상태이고, 귀는 운동 상태라서 뇌에서는 혼란이 벌어집니다. 감각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까요. 이를 부조화 현상이라고 합니다. 부조화 상태가 계속되면 뇌는 이중적인 정보 중 어느 쪽을 따를지 갈팡질팡하게 돼요. 그러다가 뇌가 '에라 모르겠다'며 일종의 파업을 하지요. 잠기운이 몰려오는 이유예요. 뇌도 자신을 방어할 필요가 생기니 졸음이 오는 거예요.

이 현상은 운전자에게는 잘 일어나지 않지요. 운전자는 탑승객과 달리 운전에 집중하다 보니 몸이 느끼는 시각 자극과 진동 자극이 같기 때문이랍니다.

◇마음도 몸처럼 '일관성'을 좋아해요

우리 몸의 감각기관에서 부조화가 일어나면 뇌가 갈피를 잡지 못하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각과 행동 사이에 부조화가 생겨도 똑같이 혼란과 불편함을 경험할 수 있어요. 사람은 이러한 불편함을 잠재우고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특정한 방향을 선택하게 된답니다. 우리 몸과 마음은 똑같이 항상성(恒常性)을 유지하려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를 인지부조화 이론이라고 해요. 사회심리학자인 레온 페스팅거(Festinger)가 1957년에 처음 발표했어요.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가 인지부조화 이론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 배고픈 여우가 탐스러운 포도송이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포도가 먹고 싶어서 발돋움도 하고, 펄쩍 뛰어 봤지만 결국 닿을 수가 없었어요. 여우는 돌아서면서 이렇게 혼잣말을 하지요. "저 포도는 신 포도라 어차피 못 먹어."

여우에게 '포도를 먹고 싶다'는 생각과 포도에 닿지 못했다는 행동 사이에 인지부조화가 발생한 거예요. 부조화가 생기면 뇌는 괴로움을 느낀다고 했죠. 여우 입장에선 행동을 바꿔봤자 포도를 따 먹긴 불가능한 상황이었어요. 대신 생각은 바꿀 수 있죠. '저 포도는 신맛이 나서 원래 못 먹는 거였어'라고 생각해서, 먹고 싶었는데 먹지 못했다는 부조화를 줄인 거예요.

페스팅거는 이를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했어요. 한 시간 동안 실패를 감는 단순 작업을 대학생에게 시킨 뒤 A그룹에는 20달러를, B그룹에는 단돈 1달러를 줬어요. 두 그룹 중 어느 쪽이 작업을 마친 뒤 '유익한 일을 했다'는 평가를 더 많이 했을까요? 놀랍게도 돈을 적게 받은 B집단이었어요.

A집단은 '돈'이라는 보상을 충분히 받았어요. 그래서 마음 편히 '지루한 일이었지만 보상을 받았으니 괜찮아. 일 자체는 유익하지 않았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B집단은 달랐어요. '무의미한 일을 지루하게 한 데다 보상조차 단돈 1달러밖에 못 받았어'라고 생각하느니, '보상은 충분치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럭저럭 유익한 일이었어'라고 합리화하는 편이 마음 편했던 거예요.

◇마케팅 기법으로 쓰이는 '인지부조화'

이런 인지부조화 이론은 마케팅 기법으로도 쓰이고 있어요. 1년 동안 모은 용돈으로 비싼 물건을 살지 고민하는 학생이 있어요.'꼭 사야 해'라는 처음 생각과 '저금했던 용돈을 전부 사용해야 할 만큼 가치가 없는 것 같아'라는 두 번째 생각이 충돌하면서 머릿속에서 갈등이 생겨요.

그때 점원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 시험을 보느라 고생을 했는데 살 자격이 있어요"라고요. 이 말을 들으면 학생 머릿속에서는 "나한테 상 주는 건데 이 정도는 사도 돼"라는 생각이 강화돼요. 생각이 한쪽으로 쏠리면 인지부조화가 줄어들지요. 그러면 실제로 지갑을 열고 물건을 살 확률이 높아진다고 해요.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