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늘 미소 짓는 소녀의 얼굴이 아픈 마음 보듬어줘요

입력 : 2018.12.15 03:00

['행복을 그리는 화가-에바 알머슨' 展]
그림 속 인물 표정을 바꾸는 대신 옷·식물을 그려 감정 표현했어요
감각 열어 두고 주변 돌아보게해… 제주 해녀에 영감 받아 작업하기도

에바 알머슨(Eva Armisen·49)은 스페인 출신으로 미국과 아시아 등을 누비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화가입니다.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어요. 몇 년 전 알머슨은 제주도를 방문했다가 해녀들이 바다와 호흡을 맞추며 살아가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대요. 이후 해녀에게 꾸준히 관심을 가지면서 해녀에게서 얻은 삶의 값진 경험과 영감을 그림(작품5)으로 그리기도 했답니다.

알머슨의 그림은 자신의 경험을 마치 일기장을 써 나가듯 화폭에 한 장 한 장 담아낸 작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마치 커다란 그림일기 속에 들어온 기분이 들도록 전시장을 꾸며놓고 알머슨의 작품을 두루 소개하고 있어요. 이 전시는 내년 3월 말까지 진행됩니다.

작품1~5
알머슨에게 그림은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고 아픈 마음을 보듬어주며 성장하게 하는 보금자리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녀의 그림은 아름다운 색과 빛으로 가득 차 있어요. 그래서 그림에서 포근함이 느껴져요. 두려움, 불안함 같은 감정과는 머나먼 곳에 있죠.

만약 어두운 곳에 무언가 숨어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밤마다 자꾸 움츠러드는 친구가 있나요?

그럴 땐 작품1처럼 해보세요. 소녀가 유령을 거꾸로 잡아 쥔 채 끌고 가는 그림이에요. 무서운 유령이 자꾸 자신을 따라다닌다고 느껴질 땐 그림으로 그려서 네모 틀 속에 가두어버리면 된대요. 하지만 가두어버린 것에게는 반드시 이름을 붙여주어야 한답니다. 언젠가 두려움이 사라지는 날이 오게 되면, 이름을 불러서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내줘야 하니까요.

작가는 늘 소녀의 얼굴을 그리는데, 그림 속 얼굴은 간혹 눈을 감거나 뜨거나 하는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 한결같이 미소를 짓고 있는 표정이에요. 소녀는 어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듯해요. 알머슨의 그림일기 속 캐릭터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알머슨은 어떤 때에는 '누군가'를 그리는 게 아니라, 차라리 '무언가'를 얼굴로 나타내기도 해요. 작품2를 볼까요. 그림 왼쪽에 '아스투타(astuta)'라고 쓰여 있죠? '약삭빠르고 빈틈없다'는 스페인 말이에요. 그림 속의 소녀는 지금 여우 모자를 뒤집어쓰고, 등 쪽까지 전부 다 여우 털로 감쌌어요. 소녀는 여우 몸 안에 쏙 숨어서 얼굴과 손만 내민 채 눈을 감고 있지요. 반면 여우는 소녀 대신 날카로운 눈매로 상대를 노려보고 있어요. 우리 모두 가끔은 여우처럼 영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하지요. 그럴 땐 이 그림처럼 눈을 감고 자신이 여우가 되었다고 상상해보세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여러 나라의 문화 속에는 가면을 쓰고 노는 전통놀이가 있습니다. 그런 놀이의 핵심은 다른 사람이나 동물이 되어 보는 경험에 있어요. 사자의 가면을 쓰면 사자처럼 용감해지고, 곰의 가면을 쓰면 곰처럼 잘 참아낸답니다. 다른 모습이 된 나를 상상하는 것도 가면을 쓰는 것과 비슷한 역할을 하지요. 상상하는 동안 자신의 부족한 부분에 힘이 실리기도 할 테니까요.

작품3을 보세요. 타조가 부끄러울 때 하듯이 소녀는 자기 머리만 땅 쪽으로 숨겼네요. 쑥스러운가 봐요. 그림 속의 소녀는 어른들의 마음속에 있는 아이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무엇이든 힘들이지 않고 잘해내는 것은 아니에요. 어른이 되었어도 겁이 나서 선뜻 나설 용기가 없을 때가 잦거든요. 그림처럼 머리를 거꾸로 해 보세요.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벌어져요. 세상이 완전히 새롭게 보이는 거 있죠. 가끔은 타조 흉내를 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이번에는 작품4를 보면서 스스로 꽃이 되어 활짝 피어오르는 순간을 상상해보세요. 식물이 꽃을 피운다는 건 대단한 일입니다. 희망을 잃지 않고 더위와 추위를 묵묵히 견뎌내다가 마침내 기회가 온 거예요. 그 순간 있는 힘을 한곳에 모아 피워낸 것이 바로 꽃이랍니다.

이렇듯 작가는 인물의 표정을 바꾸는 대신, 일상 속의 물건이나 옷, 식물이나 동물을 등장시켜 조금씩 다른 의미들을 표현합니다. 변함없는 표정 덕분에 오히려 일상적인 소품들이 눈에 띄는 장점이 있어요. 만일 초상화처럼 얼굴 생김새에 의미가 집중되어 있다면, 관람자들은 습관대로 인물과 시선을 맞추고 감정을 살펴보느라, 주변에 그려진 소품들은 쳐다볼 여유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알머슨이 그린 얼굴은 다른 누군가의 얼굴로 채워져야 비로소 완성되는 빈 거울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관람자들은 그림 속 얼굴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보기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알머슨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은 빨간 장미가 되고, 머리카락에는 호기심 많고 자유로운 파랑새들이 매달린답니다. 때로는 식물처럼, 때로는 동물처럼 감각을 열어 주변 환경과 적극적으로 관계 맺으며 살라는 메시지가 그림에 담겨 있지요. 감각을 닫아두고 살면 마치 문을 닫아둔 집처럼 신선한 빛도 맑은 공기도 들어오지 않거든요. 오늘날 기계처럼 돌아가는 삶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해주는 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