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아픈 DNA 잘라낸 자리에 튼튼한 DNA 붙인대요

입력 : 2018.12.13 03:07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 기술

지난달 25일, 유튜브에 충격적 영상이 올라왔어요. 허젠쿠이(賀建奎) 중국 남방과기대 교수가 세계 최초로 '유전자 편집 아기'를 태어나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한 거예요. 허 교수는 남편이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를 일으키는 'HIV 바이러스' 보균자인 부부에게 배아를 받은 뒤, 유전자를 편집해 아내 자궁에 착상시켰어요.

그 뒤 이 부부가 루루(露露)와 나나(娜娜)라는 여쌍둥이를 낳았지요. 배아란 아직 신체 기관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8주 이내의 수정란을 가리킵니다.

허 교수는 유전자 편집 덕분에 루루와 나나가 에이즈에 걸리지 않을 거라고 주장했어요. 첫 발표 사흘 뒤, 홍콩에서 열린 국제 학회에 참석해 "루루와 나나 외에, 두 번째 유전자 편집 아기도 임신 상태"라고 했지요. 과학계는 경악했어요. 유전자 조작이 어떻게 가능했고, 이 연구가 낳은 문제는 무엇일까요?

◇'가위'로 유전자를 싹둑싹둑

허 교수가 사용한 방법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이에요. 말 그대로 유전자가 담긴 DNA 일부를 마치 가위로 잘라내듯 떼어낸 다음, 그 자리에 다른 유전자를 집어넣는 기술이에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크리스퍼 RNA'와 'Cas9 단백질' 두 가지로 구성돼 있어요. 과학자들이 세균의 면역 체계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크리스퍼 RNA가 몸속에 진입한 바이러스를 찾아내 붙잡는 역할, Cas9단백질이 그걸 잘라내는 역할을 하며 공동 작전을 펼친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2005년 제니퍼 다우드나(Doudna) UC버클리대학 교수와 장펑(張峰) 미국 브로드연구소 교수가 이 둘을 활용해 DNA에서 원하는 부분만 잘라내는 기술을 수개월 차로 각각 개발했어요.

그 전까지 유전자 조작에 쓰던 기술은 DNA에서 원하는 부분을 찾아 헤매야 하고, 찾은 후에도 DNA를 직접 잘라내야 하기 때문에 몇 년씩 걸렸어요. 하지만 크리스퍼 기술은 원하는 부분을 쉽고 빠르게 찾아낼 수 있는 데다 자르고 붙이는 작업도 금방이지요. 불과 며칠 만에 유전자 조작이 끝날 정도로 간단하고 편리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너도나도 크리스퍼 기술을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동식물 유전자 편집은 진작에 성공

이후 유전자 조작 연구는 빠르게 발전했어요. 2013년에 쥐의 수정란을 편집하는 데 성공한 이후, 1년 동안 각종 실험 동물과 거대한 포유류, 식물 유전자 편집까지 성공했다는 연구가 쏟아졌어요.

문제는 크리스퍼를 이용해 인간의 유전자도 얼마든지 편집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실제로 크리스퍼 기술이 발표된 지 3년 만인 2015년, 중국 중산대 연구팀이 인간 배아에서 지중해성 빈혈이라는 유전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찾아내 수정하는 데 성공했어요.
유전자 가위 설명 그래픽
그래픽=안병현

유전병 해결책을 찾으려는 연구였지만, 당장 윤리 논란이 일어났어요. 위에서 잠깐 말씀드렸듯이 배아는 아직 어떤 신체 기관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8주 이내의 수정란이에요.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란이 된 뒤, 여러 세포로 분열하기 시작하는 단계지요. 과학자들이 인간의 배아로 실험할 수 있는 건 이 단계까지는 아직 '사람'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렇게 실험한 인간 배아를 누군가가 자궁에 착상시키면 곧 태아로 발달해요.

사람이 사람을 '디자인'하는 게 과연 옳으냐는 비판이 나왔어요.

그래서 2015년 12월 세계 각국 학자들이 크리스퍼 기술을 써서 실험할 때는 연구 목적으로 기증받은 배아만 사용하고, 실험이 끝나면 철저하게 폐기하자고 합의했어요. 허 교수팀의 연구는 그 합의를 깨뜨린 연구예요.

◇한번 바뀐 유전자는 대대로

인간 유전자 편집은 '사람이 사람을 만든다'는 데서 나오는 윤리적 문제뿐만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위험이 커요. 유전자 조작 결과로 돌연변이가 일어나 아기 몸에 문제가 생기거나 질병이 생길 수 있어요. 크리스퍼 기술이 아무리 완성도가 높다고 해도 유전자 편집 과정에서 자칫 실수하면 예상치 못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어요. 허 교수가 '만든' 쌍둥이 자매도 이런 위험을 안고 있답니다. 에이즈에 대한 면역을 만들기 위해 유전자를 바꿨다지만, 허 교수가 미처 내다보지 못한 더 큰 장애가 생길지도 몰라요. 인간의 지식은 불완전하니까요. 게다가 유전자 변이는 한 사람 문제로 끝나지 않아요. 후손에게 대대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요.

인간유전체교정학회 조직위원회는 허 교수의 연구를 공식적으로 비판했어요. "이 연구는 정당하지 못한 의학 절차, 잘못된 연구 절차, 부족한 윤리 기준으로 이뤄졌다"는 성명도 냈고요. 크리스퍼 기술을 개발한 장펑 교수와 다우드나 교수도 허 교수의 연구를 비판했지요.

중국 정부는 허 교수의 연구를 조사하겠다고 밝혔어요. 허 교수가 법과 윤리를 다 같이 위반했다는 이유예요. 하지만 법에 따른 처벌이 이루어진 뒤에도 허 교수의 연구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거예요. 허 교수를 옹호하는 이들은 "에이즈에 걸린 부모가 자식을 낳으면 자식도 에이즈에 감염될 확률이 높은데, 에이즈 환자인 부모가 건강한 아이를 낳아 키우려면 유전자 조작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항변하고 있어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은영·과학 칼럼니스트 감수=김홍표·아주대 약대 교수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