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나해란의 뇌과학 교실] 우리가 '멍 때리고' 있을 때도 뇌는 열심히 일한대요

입력 : 2018.12.12 03:00

뇌의 쉬는 시간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부모님이 어떤 선물을 사 주실까' 하고 신나는 생각을 하는 계절이 됐습니다. 좋아하는 친구를 마주쳤던 기억을 떠올리거나, 멋진 어른이 된 자신을 상상하는 것은 흔히 보내는 즐거운 시간이죠. 특히 시험 때가 되면 책을 보다가도 이런저런 공상을 하면서 머리를 식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집니다.

지난 4월 멍하니 앉아 있는‘멍 때리기’대회에 참가한 사람들.
지난 4월 멍하니 앉아 있는‘멍 때리기’대회에 참가한 사람들. 그런데 가만히 있어도 뇌는 쉬지 않고 일한대요. /고운호 기자
컴퓨터가 열심히 정보 처리를 하면 열이 나죠. 전원을 끄면 다시 식고요. 그런데 뇌도 그럴까요? 뇌과학자들은 머리를 식힌다는 표현이 정확하지 않다고 지적한답니다. 전원을 켜고 끄는 컴퓨터와 달리 뇌는 24시간 언제든지 부지런히 일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과학자들은 뇌가 쓰는 열량을 산소 소모량으로 확인하는데, 공상에 빠져 있어도 뇌의 산소 소모량은 여전히 많다고 해요. 맹렬히 공부를 할 때나, 운동을 할 때나, 가만히 앉아서 공상을 할 때나 뇌는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거죠.

이런 주장이 처음 나온 것은 1929년이었어요. 과학자 한스 베르거(Hans Berger)는 뇌가 한시도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는 뇌파 사진을 처음으로 발표했어요. 그렇지만 당시에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고 해요. 그 시절의 과학자들은 공부를 하거나 열심히 생각하지 않으면 뇌 활동이 없거나 줄어든다고 여겼어요.

이후 연구자들은 쥐를 연구하면서 1970년, 쉬고 있는 쥐의 전두엽이 더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뇌가 언제든 일한다는 학설은 2000년대 들어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됐어요.

연구자들은 멍하니 있을 때에도 수학 문제를 푸는 것 이상으로 뇌가 더 활발하게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답니다. 뇌는 잠들 때에도 똑같이 일을 합니다. 심지어 꿈을 격렬하게 꾸면 공부할 때보다 더 활성화된다고 해요.

'멍 때리는' 상태는 깨어 있으면서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없거나, 좋아하는 생각에 빠져 있는 상태랍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상상하거나 할 때도 같은 상태라고 해요. 우리가 의식적으로 외부 자극에 집중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 때지요. 통상 그때 뇌가 쉬고 있다고 오해하지만 주어진 일을 해결하지 않을 때에도 뇌는 계속 일을 합니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쉬면서 '머리를 식힌다'고 생각할까요? 머리를 식힐 때 우리는 외부 자극에 대한 처리를 하지 않아요. 문제를 풀거나 해야 할 일이 없는 상태로 있으면 의식적으로 외부 자극에 집중을 하고 해결하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느끼기에는 뇌가 쉬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예요.

'멍 때린다'는 걸 게으르다고 핀잔 주거나 놀릴 필요가 없습니다. 뇌는 공부하는 것처럼 무척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까요.



나해란 여의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