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시험문제를 빼돌리고 시험장 감독까지 매수했어요

입력 : 2018.12.12 03:00

[조선시대 과거시험 부정행위]
순조때 좌의정 김재찬이 상소 올려 '나라 망칠 시험'이라고 비판했죠
들통나면 곤장 100대 처벌했지만 과거 폐지 전까지 그치지 않았어요

얼마 전 수능 시험에서는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서 블루투스 이어폰과 전자 담배를 가지고 시험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어요. 무선통신 기능을 활용해 정답을 전송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중·고등학교에서 내신 시험지 유출 사고가 벌어지자 지난 7월 교육부가 대응에 나서기도 했고요. 그런데 시험 부정행위는 조선시대에도 나라의 큰 걱정거리였답니다.

◇대리 시험, 커닝 페이퍼는 '약과'

"지금 반드시 나라를 망칠 것은 과거 시험입니다!" 조선 23대 임금 순조 때인 1809년, 좌의정 김재찬이 상소문을 올렸어요. 좌의정이라면 신하 중에서 영의정 다음으로 높은 관직이에요. 그런 사람이 조선시대에 관리를 등용하는 시험인 과거를 '나라 망칠 것'이라고 비판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죠. 부정행위가 무척 심했기 때문이랍니다.

김재찬은 이렇게 말했어요. "(과거 시험을 보는 사람들이) 글을 사고 남의 글을 베끼는 것에 애당초 부끄러움이란 것을 모릅니다. 심지어는 이름을 바꿔 대신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등 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남이 쓴 작문을 자기가 쓴 것처럼 속여 쓰고, 아예 다른 사람을 동원해 대리 시험까지 치르는 일이 많았다는 거예요.

[뉴스 속의 한국사] 시험문제를 빼돌리고 시험장 감독까지 매수했어요
/그림=안병현
당시 과거 시험의 부정행위 방법은 지금 봐도 놀랄 정도로 다양했어요. 그로부터 9년 뒤인 1818년 성균관 관원이던 이형하는 '과거 팔폐(여덟 가지 폐단)'를 통해 어떤 방법을 썼는지 설명했답니다. 먼저 차술차서(借述借書)는 남의 글을 베껴 쓰는 방법이었어요. 수종협책(隨從挾冊)은 참고서를 몰래 가지고 시험장에 들어가는 '커닝 페이퍼' 수법이었는데, 사서삼경을 깨알같이 적어 두루마리처럼 말아 콧구멍 속에 숨기는 일도 있었다고 해요. 아마 콧물을 많이 흘리거나 재채기가 급한 사람이라면 무척 곤란했을 거예요.

입문유린(入門蹂躪)은 응시자 아닌 사람이 시험장에 들어가는 것인데, 대개 옆에서 특정 응시자를 도와주기 위한 사람들이었대요. 정권분답(呈劵紛遝)은 미리 써 놓거나 다른 사람이 쓴 답안지와 바꿔치기하는 것이었지요. 외장서입(外場書入)은 시험장 밖에 있던 다른 사람이 답안지를 써서 주는 것인데, 대나무 관을 미리 묻어 뒀다가 발각된 일도 있었다고 해요.

다음 세 가지는 더욱 고도한 수법이었습니다. 혁제공행(赫蹄公行)은 시험문제를 미리 유출하는 것이었고, 이졸환면출입(吏卒換面出入)은 시험장 경비원을 매수해 놓은 사람으로 바꾸는 방법이었죠. 자축자의환롱(字軸恣意幻弄)은 답안지를 이리저리 손봐서 합격하는 부정행위였어요.

◇조선 초기엔 '중범죄' 처벌

조선에서는 법 체계가 문란해진 19세기에 과거의 폐단이 나타났죠. 조선 초기만 해도 시험 부정행위는 엄격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조선 4대 임금 세종 때인 1447년에는 과거 시험에서 커닝을 하거나 커닝을 도와준 사람에게는 곤장 100대를 때린 뒤 도형(徒刑), 즉 중노동에 종사시키는 형벌을 내렸답니다. 그 '중노동'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 잘 알려지지 않은 건, 실제로 곤장 100대를 맞고 나서도 살아남은 사람이 거의 없어서였는지도 몰라요.

국가의 시험 관리 역시 조선 전기에는 철저했습니다. 채점관이 응시자 필적을 알아봐 점수를 좋게 주는 걸 막기 위해 '역서(易書)'라는 방법까지 썼어요. 응시자가 제출한 답안지를 담당 관리가 붉은 글씨로 바꿔 쓰는 방식이었습니다.

◇결국 '망국(亡國)'의 한 원인으로

조선 후기에도 부정행위를 막으려는 노력이 없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형하가 '과거 팔폐'를 적은 상소를 올리자, 조정에서는 곧바로 '과장구폐절목'이라는 과거 부정 방지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서울과 지방의 응시자 명단을 만들어 확실히 관리하도록 하고 응시자에겐 수험표를 발급합니다. 시험 감독관과 응시자 모두 한번 입장하면 시험이 끝날 때까지 시험장을 나갈 수 없도록 했습니다. 수험표를 위조하거나 지니지 않은 사람이 시험장에 들어갔다가 적발되면 일단 끌고 가 감옥에 집어넣었다가 군대로 보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과거제가 폐지되기까지 부정행위는 그치지 않았다고 해요. 과거 시험 부정행위는 돈과 권력을 지닌 유력 가문 출신 응시자의 합격률을 높였고, 균형 잡힌 인재 등용을 막았어요. 결국 망국의 원인 중 하나가 됐어요.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하는 일은 나 자신과 친구들을 속이는 일일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나라를 망치는 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유석재 기자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