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원작은 하나, 해석은 둘… 두 오페라 작곡가의 실력 대결

입력 : 2018.12.08 03:05

오페라 '라 보엠'

자코모 푸치니, 루지에로 레온카발로
자코모 푸치니, 루지에로 레온카발로

2018년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네요. 계절이 바뀌고 새해가 오는 걸 느끼는 각자의 방식이 있겠죠. 오페라 팬들은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늘 공연되는 작품으로 그해의 마지막을 짐작하곤 합니다. 바로 오페라 '라 보엠'이죠. 자코모 푸치니(1858~1924)의 작품 '라 보엠'은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가난한 예술가들의 힘든 삶과 사랑 이야기예요. 오페라 배경이 크리스마스이브라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무대에 올라와요.

이번 주말에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12월 6~9일), 부천 시민회관 대공연장(12월 7~8일) 등에서 정상급 가수들이 노래하는 푸치니의 '라 보엠'이 무대에 오를 예정이에요.

오페라의 제목 '라 보엠'은 '보헤미안, 혹은 그들의 생활'이란 뜻이에요. 보헤미안은 원래 체코 보헤미아 지방에 거주하던 집시들을 의미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집시처럼 떠돌며 자유분방한 삶을 즐기는 사람들을 설명하는 단어로 변했죠.

오페라의 원작은 프랑스 출신의 작가 앙리 뮈르제의 '보헤미안들의 생활' 이라는 소설이에요. 소설이 인기를 얻은 후 오페라로 만들어졌어요. 시인 로돌포, 화가 마르첼로 등 자유롭게 생활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생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요, 여기에 로돌포와 사랑을 나누는 병약한 아가씨 미미와 마르첼로의 연인인 무제타 등이 등장하죠.

오페라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아요. 1830년대 파리 라탱 지구의 한 아파트 다락방, 친구들은 카페에서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낼 계획을 짜요. 로돌포는 우연히 옆집 아가씨 미미와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곧이어 마르첼로의 연인인 무제타도 등장해 즐거운 한때를 보내죠. 그러나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서 가난한 연인들은 각자의 이유로 이별하게 돼요. 미미는 방황하다가 결국 사랑했던 연인 로돌포에게 돌아오지만 병세가 악화돼 그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두 4막으로 되어 있는 푸치니의 '라 보엠'은 아름다운 멜로디의 아리아(독창)들이 백미입니다. 1막에서 로돌포와 미미가 처음 만나 부르는 두 곡의 아리아가 그중에서도 돋보여요. 로돌포(테너)의 아리아 '그대의 찬 손', 미미(소프라노)의 아리아 '내 이름은 미미'가 연달아 불리는데, 가난한 연인의 사랑을 애틋하게 그리고 있어요. 4막에서 로돌포와 마르첼로(바리톤)가 떠나간 연인들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미미는 돌아오지 않고'라는 제목의 이중창도 잘 알려져 있어요.

오페라 팬들은 푸치니의 ‘라 보엠’ 공연이 시작되면 한 해가 끝나감을 알아요.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은 가난한 파리 예술가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오페라죠.
오페라 팬들은 푸치니의 ‘라 보엠’ 공연이 시작되면 한 해가 끝나감을 알아요.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은 가난한 파리 예술가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오페라죠.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그런데 푸치니 말고 다른 작곡가가 만든 오페라 '라 보엠'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이탈리아 작곡가 루지에로 레온카발로(1857~1919)도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오페라를 발표했어요.

푸치니와 레온카발로는 사실 친한 친구였는데요, 레온카발로가 먼저 뮈르제의 소설에 관심을 갖고 친구인 푸치니에게 오페라를 만들어보라고 권유했어요. 푸치니가 거절하자 레온카발로는 자신이 '라 보엠'을 작곡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푸치니도 마음을 바꿔 오페라 '라 보엠'을 쓰기 시작했어요. 레온카발로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어요.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사이가 멀어졌어요. 푸치니는 레온카발로보다 1년 앞선 1896년 '라 보엠'을 발표했어요. 레온카발로의 '라 보엠'은 일 년 뒤인 1897년 나왔는데 결과는 푸치니의 압승이었죠. 평론가들은 레온카발로의 작품을 더 높게 평가했지만 일반 청중은 푸치니의 작품을 더 좋아했던 거예요.

흥행에서는 뒤졌지만, 레온카발로의 '라 보엠'도 매우 뛰어난 작품이에요. 푸치니의 작품과 비교해 마르첼로와 무제타 커플의 비중이 크게 등장해 색달라요. 3막 마지막에 부르는 마르첼로의 아리아 '무제타, 이 보금자리의 기쁨'은 비극적인 분위기와 격정적인 멜로디로 인상 깊은 명곡입니다.

당대 최고의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들이 '라 보엠' 한 작품을 놓고 실력 대결을 벌였다는 사실이 무척 재미있네요. 개성이 다른 두 작곡가의 작품인 만큼 두 곡 모두 감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훌륭한 예술을 위해 벌였던 경쟁 자체가 오페라의 내용만큼 극적입니다.

☞레온카발로의 대표작 '팔리아치'

'라 보엠' 맞대결에서는 레온카발로가 푸치니에게 패배했어요. 그러나 1892년 처음 무대에 오른 그의 대표작 '팔리아치'는 지금도 인기 있는 오페라입니다.

'팔리아치'는 어릿광대들이라는 뜻인데요, 1860년대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에 찾아온 유랑 극단의 공연과 그 공연을 전후해 일어나는 사랑과 질투를 그린 작품이죠.

유랑 극단의 주연 배우가 자신의 애인이었던 여배우의 불륜을 확인하고는 연극 중에 살인을 저지른다는 드라마틱한 줄거리예요. 레온카발로가 판사였던 그의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실제 사건이었다고 해요.

2막으로 구성돼 있는데, 1막 마지막에 주인공 카니오가 부르는 테너의 아리아 '의상을 입어라'가 가장 많이 알려진 곡입니다.

'팔리아치'는 인생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사실주의 오페라의 대표작입니다. 신화와 고전 작품을 주된 소재로 삼던 경향에서 벗어나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내려는 19세기 후반 문학계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탄생했어요.



김주영·피아니스트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