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뉴욕 지하철 벽에 그린 낙서에서 '스타 예술가' 탄생했죠
입력 : 2018.12.01 03:07
키스 해링,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 展
뉴욕 지하철 빈 벽에 분필로 낙서를 하다가 스타 미술가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거리 미술이라 불리는 '그라피티(graffiti·낙서화)'의 대가, 키스 해링(Haring·1958~1990)이에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리딩에서 태어난 해링은 아버지의 취미인 만화 그리기를 따라 하다가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뉴욕에서 미술 공부를 하던 시절,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다니면서 해링은 늘 주변의 이미지들을 유심히 관찰했는데, 산뜻한 색감의 포스터라든가 한 번만 봐도 머리에 쏙 새겨지는 광고 이미지들에 매력을 느꼈어요. 그는 그림이란 무엇보다 이해하기 쉽고 한눈에 잘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느 날 해링은 광고를 붙이려고 검게 칠해놓은 빈 벽이 있는 것을 보고는 갑작스레 그 위에 무언가 써보고 싶어서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참을 수 없었던 그는 지하철에서 불쑥 내렸어요. 문구점에 들러 분필을 한 통 사서는 좀 전에 보았던 검은 벽에 신나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공공 장소에 낙서했다는 이유로 곧 경찰이 왔지만, 잘 지워지는 분필이었기 때문에 꾸중을 좀 듣고는 풀려났죠.
해링은 그 후로도 분필을 가지고 다니다가 지하철 빈 벽을 보면 재빨리 그림을 그리고 얼른 사라지곤 했어요. 선으로 쓱싹 단순하게 표현한 그의 그림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확 잡아끄는 힘이 있었나 봅니다. 점차 사람들은 그에 대해 궁금해하고, "어, 여기 또 있다!" 하고 외치며 그의 낙서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23세의 해링은 미술계의 스타가 됐어요. 해링 탄생 60주년을 기념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해링의 예술적 생애를 되짚어보는 대규모 전시회를 열고 있어요. 전시는 내년 3월 17일까지 진행될 예정입니다.
작품1은 가로가 4m나 되는 커다란 그림이에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얼기설기 얽혀 있는 상태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해링이 그린 사람은 얼굴이 그려져 있지 않아서 기쁜지 슬픈지, 착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 짐작할 수가 없어요. 얼굴이 비어 있기 때문에 그냥 보는 이가 느끼는 대로 이해하면 됩니다. 우리도 매일 여러 사람들과 마주치지만 일일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지나가지는 않으니까요. 분명한 것은 모두들 멈추지 않고 뭔가 하려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는 거예요. 사람들끼리 서로 부딪치고 관계 맺으며 바쁘게 살아가는 복잡한 세상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날 해링은 광고를 붙이려고 검게 칠해놓은 빈 벽이 있는 것을 보고는 갑작스레 그 위에 무언가 써보고 싶어서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참을 수 없었던 그는 지하철에서 불쑥 내렸어요. 문구점에 들러 분필을 한 통 사서는 좀 전에 보았던 검은 벽에 신나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공공 장소에 낙서했다는 이유로 곧 경찰이 왔지만, 잘 지워지는 분필이었기 때문에 꾸중을 좀 듣고는 풀려났죠.
해링은 그 후로도 분필을 가지고 다니다가 지하철 빈 벽을 보면 재빨리 그림을 그리고 얼른 사라지곤 했어요. 선으로 쓱싹 단순하게 표현한 그의 그림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확 잡아끄는 힘이 있었나 봅니다. 점차 사람들은 그에 대해 궁금해하고, "어, 여기 또 있다!" 하고 외치며 그의 낙서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23세의 해링은 미술계의 스타가 됐어요. 해링 탄생 60주년을 기념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해링의 예술적 생애를 되짚어보는 대규모 전시회를 열고 있어요. 전시는 내년 3월 17일까지 진행될 예정입니다.
작품1은 가로가 4m나 되는 커다란 그림이에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얼기설기 얽혀 있는 상태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해링이 그린 사람은 얼굴이 그려져 있지 않아서 기쁜지 슬픈지, 착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 짐작할 수가 없어요. 얼굴이 비어 있기 때문에 그냥 보는 이가 느끼는 대로 이해하면 됩니다. 우리도 매일 여러 사람들과 마주치지만 일일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지나가지는 않으니까요. 분명한 것은 모두들 멈추지 않고 뭔가 하려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는 거예요. 사람들끼리 서로 부딪치고 관계 맺으며 바쁘게 살아가는 복잡한 세상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 ▲ ①작품1 - ‘무제(사람들)’, 1985. ②작품2 - ‘무제(다산)’, 1983. ③작품3 - ‘침묵=죽음’, 1989. ④작품4 - ‘아이콘’, 1990.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전시관, ‘키스해링,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展
그는 수만달러의 작품을 한 명에게 판매하는 대신, 1달러짜리 포스터를 수만 명에게 판매하는 것이 더 낫다고 믿었어요. 그런 이유에서 만들기 시작한 포스터는 현재 남아 있는 것만 해도 100여 점에 달한답니다. 작품2를 보세요. 형광색 물감을 사용한 판화 포스터예요. 어두운 곳에서 빛을 받으면 더 환하게 보이는 형광색 포스터는 지하실을 댄스 공연장으로 꾸며놓을 목적으로 그린 것이에요. 그림 속 인물들도 댄스 리듬에 맞추듯 몸을 흔들어 대고 있어요. 그런데 모두들 임신한 것처럼 배가 불룩하네요. 머리 위로는 갓난아이가 흥겨운 에너지를 모두에게 뿜어줍니다. 예술가들이 아이디어를 품고 있는 것을 임신한 사람으로 나타낸 모양이에요. 그렇다면 빛나는 아기 이미지는 아이디어가 드디어 예술로 태어난 상태라고 할까요.
해링은 예술가인 동시에 인권운동가였습니다. 간결한 작품을 통해 마약과 에이즈 문제, 어린이의 건강 문제, 인종차별 문제들을 환기시키는 사회적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했어요. 그는 미술의 힘은 우러러보이는 고상한 아름다움에 있다기보다는, 관람자들에게 직접 파고들어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작품3은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생긴 삼각형을 사람들이 에워싸고 있는 그림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을 자세히 보니, 손으로 눈을 막고 귀와 입도 가리고 있어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기는커녕 알고도 모른 척하며 사는 무관심한 인간 세상을 그린 것이에요. 그런 세상에 사는 것은 피라미드 무덤 속에 갇힌 것처럼 숨 막히고 답답한 일이겠지요.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을 때 해링은 거리를 정신없이 달렸고 강변에서 멈추어 서서 혼자 하염없이 울었어요. 하지만 그는 곧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였어요. 비록 30세라는 짧은 삶이었지만 해링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늘 써오던 일기는 죽음을 앞둔 6개월 전에 막을 내립니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시간을 더 알차게 쓰려면 일분일초가 모자랐기 때문이지요.
'빛나는 아기'는 작품4에서 보듯, 예술에 대한 해링의 생각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이미지예요. 시들지 않는 생명력이고 예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기는 세상으로부터 양분을 빨아들여 자라나고 그와 동시에 세상 밖으로 무한한 기쁨과 희망의 빛줄기들을 내보냅니다. 해링은 죽기 이틀 전에도 마지막 그림으로 아기 이미지를 남겼습니다. 몸의 기력이 다 빠져나가서 말하기조차 힘든 순간에, 그는 붓을 들어 아기를 그렸어요. 자신은 사라져도 자신의 예술은 강한 생명의 빛을 내는 아기로 거듭 태어나 영원히 살길 바랐던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