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새먼의 국제뉴스 따라잡기] 지금 아랍에미리트가 태권도 때문에 들썩들썩해요

입력 : 2018.11.27 03:00

[한류의 원조 태권도]
UAE서 태권도대회 3개 동시에 열려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얘기가 나오면 누구든 'BTS(방탄소년단)'를 얼른 떠올릴 거에요. 방탄소년단은 빌보드 차트를 석권했어요. 스타디움을 관중으로 꽉 채우고, 미국과 영국의 최고 인기 토크쇼에 줄줄이 초대받고 있어요. 싸이 이후 한국 밴드가 아시아를 넘어 서구 시장에 진출한 첫 사례지요.

하지만 한국이 만들어낸 글로벌 문화 상품에는 BTS뿐 아니라 'WT'도 있어요. WT는 서울에 본부를 두고 있지만, 밴드는 아니에요. 그래도 '한류'라는 말이 나오기 수십 년 전부터, '삼성'이나 '현대'가 세계인이 아는 이름이 되기 전부터 한국을 세계에 알려왔지요. 특히 지금 이 순간, 아랍에미리트의 대도시 푸자이라에서는 WT가 '핫'하게 뜨고 있어요. 세계그랑프리,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갈라 어워즈', 팀선수권 대회가 한꺼번에 열리고 있거든요. 저는 지금 푸자이라에 출장 중입니다. 그런데 도시 어딜 가건 다양한 인종과 피부색을 가진 매력적인 젊은이들이 WT 휘장 아래 뭉치고 있어요. WT가 뭐냐고요? 서울에 본부를 둔 '세계태권도연맹(World Taekwondo)'의 약자랍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한 체육관에서 도복을 입은 현지인 여성이 태권도 주먹지르기를 하고 있다.
한국 태권도는 선진국은 물론 아시아·아프리카 개도국에도 널리 퍼져 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한 체육관에서 도복을 입은 현지인 여성이 태권도 주먹지르기를 하고 있다. /AFP
스포츠 종목으로서의 태권도는 1940~1950년대 서울에서 시작됐어요. 처음에는 무술의 하나로 알려졌죠. 베트남전쟁 때 해외에 퍼지기 시작했어요. 한국군과 함께 싸운 미군 관계자들이 태권도에 빠졌거든요. 1970년대에 세계적으로 쿵후 영화 붐이 불면서, 아시아 요리와 함께 아시아 무술이 서양 사람들을 열광시키기 시작했어요. 1970년대 이후, 세계태권도연맹은 태권도를 새로운 방향으로 세계화시켰어요. 바로 '스포츠' 측면을 강조한 거였죠. 태권도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빠르고 폭넓게 퍼져 나갔어요. 라이벌인 일본의 가라테와 중국의 쿵후를 저만치 따돌리면서요. 이제 태권도는 전 세계적으로 7000만~8000만명이 즐기는 올림픽 종목이 됐어요.

전문가 레벨이 되면, 태권도는 세계에서 가장 수련 규율이 엄격한 스포츠 중 하나예요. 하지만 초보자 레벨일 땐 방망이도, 야구공도, 운동장도, 수영장도 필요하지 않은, 인간이 자기 몸만으로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지요. 누구나 어디서나 언제든지 연습할 수 있어요. 아주 경제적이죠.

요즘 한국 사람들은 태권도의 매력을 잘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데, 가령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같은 개발도상국 선수가 미국 같은 초강대국 선수들을 꺾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스포츠 중 하나가 태권도예요. 요르단에 가면 태권도 인기가 뜨거워요.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요르단에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종목이 바로 태권도였거든요. 같은 올림픽에서 이란 여자 선수에게 '사상 첫 여성 올림픽 메달'을 안긴 종목도 태권도였어요.

태권도는 다른 장비 없이 몸만 가지고 수련할 수 있는 스포츠라 장비가 없는 나라에 전파하기 쉬워요. 세계태권도연맹은 요르단, 니제르, 르완다, 터키 난민캠프에서 난민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어요.

태권도가 단순히 스포츠 종목이라고 생각해선 안 돼요. 태권도는 힘보다 속도와 유연성을 강조해요. 몸만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스포츠가 아니라, 일종의 '인생 강화 패키지'를 제공하는 게 묘미예요. 태권도를 수련하면 피트니스에도 좋고, 정신적으로 수련이 되고, 호신술도 익히면서, 자신감도 높일 수 있어요.

최근 4년간 저는 세계 곳곳을 다니며 세계태권도연맹 행사를 취재했어요. 영국 맨체스터, 한국 무주, 러시아 모스크바, 코트디부아르의 아비장,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모로코의 라바트 같은 곳이죠. 이 지명들만 봐도 태권도가 얼마나 세계적으로 퍼졌는지, 선진국과 개도국에 다 같이 전파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물론 태권도가 완벽하진 않아요. 세계태권도연맹은 태권도를 '참여형 스포츠'에서 '보는 스포츠'로 탈바꿈시키려 애쓰고 있어요. BTS의 최신 히트곡이나 삼성 갤럭시 신형 스마트폰, 현대 소나타 최신 차종처럼 뉴스를 쉽게 타는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아마 태권도는 K팝이나 K드라마보다 수명이 더 길지 몰라요. 대기업이 만들어내는 온갖 소비재보다 어쩌면 더 많은 선의(善意)를 퍼 나르고 있는지도 모르고요.

세계 어딜 가나 태권도장은 참 친절한 곳이에요. 격투용 스포츠가 지역과 국경, 문화와 종교와 인종을 넘어 우정의 수단이 됐다니 재미있지 않아요? 한국에선 태권도 인기가 시들하지만, 이제까지 한국이 만들어낸 그 어떤 것도 한국 밖에서 태권도만큼 오랫동안 인기 있지 않았답니다.

바로 여기 아이러니가 있는 것 같아요. 태권도는 한국에서 시작됐지만 이젠 세계 스포츠가 됐어요. 꼭 한국에 와야만 최고급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랍니다. 태권도 최고 스타들 중에 한국인이 있긴 하지만, '한국인뿐'인 건 아니에요. 러시아가 한국에 도전하고 있고요, 중국도 야심적으로 세를 키우고 있어요. 태권도는 한국이 세계에 준 선물입니다.


앤드루 새먼 아시아타임스 동북아 특파원 기획·구성=유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