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합격·행복·富 염원 담은 그림, 방 안에 세워놨죠
입력 : 2018.11.17 03:09
'조선, 병풍의 나라' 展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그날그날 원하는 기분에 따라 바깥 풍경을 선택할 수가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어느 날은 보름달이 뜬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하루를 지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수족관을 거니는 것처럼 물고기들이 눈앞에 어른거리기도 합니다. 과학기술로 구현된 미래의 모습일까요? 아닙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가능했던 일이에요. 바로 병풍(屛風) 덕분이랍니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조선, 병풍의 나라'라는 제목으로 여러 박물관과 소장가들이 보관하고 있는 진귀한 대형 병풍 76점을 한자리에 모아 소개하고 있어요. 전시는 다음 달 23일까지 열립니다.
병풍은 원래 '바람을 가린다'는 뜻을 가진 가림막인데, 바람을 막는 용도였다기보다는 집주인의 취향에 맞게 집을 꾸미는 역할이 더 컸습니다. 병풍의 기원을 따져보면 고구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크게 성행한 것은 조선 시대였어요.
조선 초기에는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그림을 그려 왕좌 뒤에 세워둘 목적으로 병풍을 만들었어요. 점차 평민들 사이에도 유행이 퍼져서 조선 후기에 이르면 그림의 주제가 훨씬 다양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혼식이나 회갑연, 제사 등 특별한 날 행사에 병풍은 빠지지 않았어요. 조선 시대 사람들의 생활에서 꼭 필요한 예술품이 되었답니다.
작품1을 보세요. 두둥실 보름달이 뜬 가을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댓잎들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네요. 이것은 가로가 4m쯤 되어서 거실의 큰 벽 하나를 전부 차지할 만큼 큰 그림입니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조선, 병풍의 나라'라는 제목으로 여러 박물관과 소장가들이 보관하고 있는 진귀한 대형 병풍 76점을 한자리에 모아 소개하고 있어요. 전시는 다음 달 23일까지 열립니다.
병풍은 원래 '바람을 가린다'는 뜻을 가진 가림막인데, 바람을 막는 용도였다기보다는 집주인의 취향에 맞게 집을 꾸미는 역할이 더 컸습니다. 병풍의 기원을 따져보면 고구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크게 성행한 것은 조선 시대였어요.
조선 초기에는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그림을 그려 왕좌 뒤에 세워둘 목적으로 병풍을 만들었어요. 점차 평민들 사이에도 유행이 퍼져서 조선 후기에 이르면 그림의 주제가 훨씬 다양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혼식이나 회갑연, 제사 등 특별한 날 행사에 병풍은 빠지지 않았어요. 조선 시대 사람들의 생활에서 꼭 필요한 예술품이 되었답니다.
작품1을 보세요. 두둥실 보름달이 뜬 가을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댓잎들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네요. 이것은 가로가 4m쯤 되어서 거실의 큰 벽 하나를 전부 차지할 만큼 큰 그림입니다.
- ▲ ①작품1 - 김규진, ‘월하죽림도 10폭병풍’, 20세기 초. ②작품2 - 이한철, ‘전(傳)이한철필 어해도 10폭병풍’, 19세기 후반. ③작품3 - ‘모란도 8폭병풍’ 중 한 폭, 19세기 말~20세기 초. ④작품4 - 최석환, ‘묵포도도 8폭병풍’, 1866.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조선, 병풍의 나라’展
규모가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는 전체 화면 위에 과감하게 'V자'로 펼쳐지는 구도를 잡았어요. 그리고 먹의 농담(濃淡·짙고 옅음)을 조절해 가까이 있는 대나무 잎사귀는 짙게, 멀리 있는 것은 옅게 그렸어요. 마치 깊은 숲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작이 됐죠.
작품2는 또 어떤가요? 온갖 물고기가 헤엄쳐 다니는 이 그림 역시 펼치면 가로가 4m에 달합니다. 이런 병풍을 펼치면 집안 분위기를 확 바꿀 수도 있겠지요?
이 병풍은 이한철(1808~1893이후)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작품입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물고기는 도미·송어·황복·쏘가리·병어·대구·잉어·조기·메기·숭어·피라미이고, 거기에 새우와 게, 전복까지 모두 14종이나 됩니다. 물고기마다 비늘과 무늬를 하나하나 자세히 묘사했고 움직임을 생생하게 표현했어요.
그림 속의 물고기는 길상(吉祥·운수가 좋을 조짐)의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잉어가 폭포 속 강한 물살을 이겨내고 어렵게 계곡 상류까지 올라가면 용이 될 수 있다는 중국의 옛이야기가 있어요. 그래서 물고기는 합격을 기원하는 길상이기도 해요. 또 물고기는 아이를 많이 낳아 행복하게 살라는 축복의 의미도 담고 있지요.
병풍에 그리는 길상의 대표적인 예로 모란을 들 수 있어요. 작품3을 보세요. 모란은 고귀한 색으로 여겨지는 자주색을 띠어요. 모양도 화려해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뜻해요. 모란 병풍은 색이 아름다워서 혼례 때 종종 쓰인답니다. 앞의 물고기 그림과 비교해보면 이 모란 그림은 장식적인 무늬처럼 보여요. 병풍도 전체가 하나로 연결된 그림이 아니라, 폭마다 낱개의 그림들로 이뤄져 있어서 앞서 소개한 병풍들과는 다르답니다.
작품4는 포도 넝쿨을 그렸는데 마치 용 한 마리처럼 'S자'로 굽이치고 있어요. 포도 넝쿨이 생명력이 어찌나 왕성한지 병풍 바깥으로 튀어나갈 기세입니다. 포도가 주렁주렁 매달린 가운데 간혹 귀여운 청설모들이 깜짝 등장해 그림에 사랑스러움을 더하고 있어요.
날씨가 흐리고 기분도 가라앉는 날에는 이런 율동적인 병풍을 방에 펼쳐두면 어떨까요? 어깨춤이 절로 날 것 같은데요. 이렇듯 병풍은 조선인들 하루하루에 흥을 더해줌과 동시에 희망의 메시지도 불어넣었어요. 늘 예술을 가까이 두었던 조상의 우아한 삶이 옛 병풍에 고스란히 깃들어 있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