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피아노 학원서 본 하농·체르니, 누가 썼을까요?

입력 : 2018.11.10 03:09

'하농' 60곡 쓴 佛 출신 작곡가 아농, 양손 연주 반복해 익히라 강조했어요
'체르니' 교본도 작곡가 이름 따왔죠… 리스트 길러낸 훌륭한 스승이기도

제가 만나는 음악 애호가 중 많은 분이 어린 시절 음악 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웠던 기억을 떠올리곤 해요. 그땐 따분하고 재미없어서 요령을 부리곤 했는데 지금이라도 다시 배우고 싶다는 말씀을 많이 하지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피아노 학원 근처에 가면 늘 들리는 음악들이 있어요. 학생들이 피아노를 처음 배울 때 쓰는 교본과 연습곡들이죠. '하농'이나 '체르니'가 대표적이에요. 그런데 이런 제목들이 그 교본에 나오는 연습곡을 쓴 작곡가 이름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저도 어렸을 땐 이 작곡가들을 몰라서 '도대체 이렇게 어렵고 지루한 연습곡들을 만든 사람이 누굴까' 궁금했던 기억이 나네요.

◇반복적인 연습 강조한 아농

어렸을 때 피아노 앞에 앉으면 첫걸음은 무조건 이 책이에요. 바로 하농입니다. 모두 60곡으로 되어 있어요. 정식 제목은 '명연주가가 되는 60 연습곡'이에요. 전곡은 크게 보아 네 부분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요, 손가락의 기본적인 움직임부터 시작해 지구력을 기르는 연습, 음계와 아르페지오(펼침화음)를 원활하게 구사하는 훈련, 옥타브나 트레몰로(한 음이나 여러 개 음을 되풀이해 치는 연주법)를 빠르게 연주하는 기술을 잇달아 배울 수 있게 되어 있어요. 피아노를 처음 배울 땐 대개 오른손보다 왼손 실력이 더디게 느는데요, 이 연습곡들은 양손이 같은 음을 연주하거나 대칭으로 연주하게 만들어 양손이 고루 발달하도록 도와줍니다.

1873년 출판된 이 연습곡은 프랑스 출신 샤를 루이 아농(Hanon·1819~1900)이 지었어요. 우리는 흔히 '하농'이라 부르지만 프랑스식으로 '아농'이라 부르는 게 정확해요. 아농은 작곡과 피아노, 오르간을 모두 공부했어요.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오르가니스트였지요. 피아노 선생님으로도 이름을 떨쳤어요. 그는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얻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60연습곡을 만들었어요. 내용이 우수해 1878년 파리세계박람회에서 은메달을 수상했죠.

특히 이 연습곡은 러시아에서 인기를 끌었어요. 라흐마니노프를 비롯한 러시아 피아니스트와 피아노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이 연습곡을 치라고 집중적으로 권하기도 했습니다. 작곡가 아농은 책 서문에서 "훌륭한 연주자가 되기 위해 이 연습곡을 매일 반복해서 연습하라"고 했어요. "반복 연습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지만 감동적인 연주를 하기 위해 이 정도 수고는 각오해야 한다"고 학생들을 격려했지요.

◇피아노 입문은 체르니

하농과 세트처럼 따라다니는 책이 체르니 연습곡이에요. 둘 다 피아니스트가 기본적인 훈련을 하도록 하는 책이죠. 흔히 체르니 100, 체르니30, 체르니40처럼 연습곡 개수를 제목처럼 붙여 이야기하는데요, 이 연습곡집은 작곡가 카를 체르니(Czerny·1791~1857)가 만든 여러 연습곡 중 일부예요. 체르니100은 그의 작품번호 139의 별칭이고, 체르니30은 작품번호 849, 체르니40은 작품번호 299입니다.

이 연습곡들은 일정한 규칙이 있는 화성을 진행하면서 열 손가락을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훈련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어요. 쉽고 짧은 곡부터 길고 어려운 곡까지 다양하답니다. 체르니 연습곡들은 매우 합리적이고 체계적이에요. 학생들끼리 체르니 연습곡 중 몇 번까지 배웠는지를 보고 진도를 가늠해보기도 하죠. 보통 처음에 체르니100에서 시작해 체르니 30, 체르니 40으로 나아갑니다.
‘피아노의 왕’ 프란츠 리스트의 연주를 여러 음악가가 듣고 있어요. 그의 스승 카를 체르니(가운데 안경 쓴 사람)도 있네요.
‘피아노의 왕’ 프란츠 리스트의 연주를 여러 음악가가 듣고 있어요. 그의 스승 카를 체르니(가운데 안경 쓴 사람)도 있네요. /게티이미지코리아
체르니는 오스트리아에서 체코 출신 부모님 슬하에 태어났어요. 어린 시절 베토벤에게 음악을 배웠지요. 베토벤은 체르니가 음악성이 뛰어나고 악보를 외우는 능력이 우수하다고 인정해줬어요. 그래서 1812년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빈에서 초연할 때 체르니에게 연주를 맡기기도 했어요.

체르니는 이렇게 탁월한 피아니스트였지만 성격이 내성적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연주보다는 작곡과 교육 활동에 더 힘을 쏟았죠. 피아노를 위한 연습곡들 외에 독주곡, 협주곡과 실내악 작품 등 1000곡에 가까운 작품을 남겼어요. 제자도 많이 길러냈어요. 19세기 '피아노의 왕'으로 군림했던 프란츠 리스트도 체르니의 제자였어요. 수많은 피아니스트를 배출한 명교사 테오도르 레셰티츠키도 체르니에게 배웠고요.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체르니는 유일한 취미가 고양이 여러 마리를 기르는 것이었다고 하네요.

◇바이올린계의 체르니

바이올린을 배우는 학생들에게도 익숙한 교재가 있지요. 활쓰기와 왼손 연습의 기초를 다지도록 도와주는 책 '세프치크'죠. 이 책은 체코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오타카르 세프치크(Ševčík·1852~1934)가 만들었어요.

바이올린 음계 연습곡집을 만든 헝가리 출신 음악가 카를 플레시(Flesch·1873~1944) 역시 빼놓을 수 없어요. 그는 지넷 느뵈, 이다 헨델, 헨릭 셰링 같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들을 길러냈거든요. 플레시의 이름을 딴 콩쿠르에서도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많이 배출됐어요.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배우는 사람이 있는 집에는 하농, 체르니, 세프치크 같은 연습곡 책이 한두 권씩 꼭 있어요.

훌륭한 연주자이자 빼어난 작곡가였던 분들이 우리가 악기를 처음 연습하는 순간부터 우리를 꼼꼼히 가르쳐주고 있는 셈이랍니다.



김주영·피아니스트 기획·구성=유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