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인조, 아들 죽어도 의사 죄 묻지 않자 독살설 퍼졌어요

입력 : 2018.11.07 03:00

[왕실 의료사고]
사헌부가 침 놓은 어의 처벌 요구… 신임 두터웠던 王이 감싸줬죠
태종 막내엔 풍에 쓰는 약 잘못 처방… 효종 돌연사엔 담당의 처형했어요

여덟 살 어린이가 폐렴 때문에 배가 아파 병원에 갔는데, 의사들이 변비로 오진해 아이가 끝내 숨진 사건이 있었어요. 지난달 담당 의사 3명이 법정 구속됐지요.

지금보다 의료 시설도 좋지 않고 의학 지식과 기술이 부족했던 조선시대에는 어땠을까요? 조선시대 최고 의술을 지닌 사람들은 내의원 어의(御醫)들이었어요. 궁궐 안에서 임금이나 왕족의 병을 치료했죠. 이들도 진단이나 처방을 잘못해 의료 사고를 낸 적이 있을까요?

◇공주·왕자 죽자 어의 처벌

조선 제3대 임금 태종이 1418년 4월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어요. "이 사람들이 비록 고의로 사람을 해치려는 생각은 없었다 해도, 마음을 쓰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니 사헌부에서 그 죄를 일일이 국문해 아뢰게 하라."

[뉴스 속의 한국사] 인조, 아들 죽어도 의사 죄 묻지 않자 독살설 퍼졌어요
/그림=정서용
국문은 조선시대에 중대한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죄를 따져 묻는 일을 뜻해요. 왕이 명령해야만 할 수 있었으니, 보통 범죄자가 아니었을 거예요. 태종이 그 죄를 따져보라고 엄하게 명령 내린 사람이 바로 어의였어요.

태종은 원경왕후 민씨와 사이에 8남매를 뒀어요. 이 중 셋째 딸인 경안공주가 1415년 22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어요. 3년 뒤인 1418년에는 8남매 중 막내인 성녕대군까지 열세 살 어린 나이에 병을 앓다 숨졌고요. 태종은 어의들이 치료를 잘못해 자식들이 연달아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경안공주가 앓아누웠을 때 어의들은 공주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밝혀내지 못했어요. 그래서 체한 데 쓰는 소화제를 먹였는데 아무 효과가 없었어요. 3년 뒤 성녕대군은 '완두창'이라고 하는 부스럼을 앓았어요. 전염병의 하나였는데 어의들이 이걸 '풍(風)'으로 여겨 약을 잘못 처방했어요. 풍은 옛날에 뇌졸중을 가리키던 말이에요.

공주와 왕자의 치료를 맡았던 어의 양홍달·박거·조청·원학이 의금부에 갇혔어요. 이틀 뒤 사헌부에서 이들의 죄를 엄하게 물어 참형에 처하라고 왕에게 아뢰었어요. 태종은 "비록 그들이 죄가 있더라도 어찌 사람을 가볍게 죽일 수 있느냐"며 가장 고참이었던 양홍달을 관직에서 내쫓고 서인(庶人) 신분으로 낮췄어요. 다른 이들도 벼슬을 낮추게 했다고 합니다.

◇"어의들의 죄를 묻지 말라"

조선 제16대 임금 인조 때에도 인조의 맏아들 소현세자가 죽은 뒤 의료 사고 논란이 있었어요. 소현세자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가 8년 만에 돌아온 왕자입니다. 낯선 땅에서 너무 고생해서였을까요? 소현세자는 고국에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을 앓기 시작했어요. 치료에 들어간 지 4일 만에 병이 갑자기 심해져 끝내 죽고 말았지요.

역시 사헌부와 사간원에서는 임금께 이렇게 아뢰었어요. "왕세자의 증세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악화되어 끝내 이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뭇사람 생각이 모두 의원들의 진찰이 밝지 못했고 침을 놓고 약을 쓴 것이 적당하지 않은 까닭이라고 여깁니다."

소현세자에게 침을 놓았던 이형익을 비롯해 여러 어의들의 죄를 물으라는 얘기였어요. 하지만 인조는 "자못 심한 노고로 말미암아 병을 얻은 것이니 어찌 침 놓고 약 쓰는 방법이 어긋나서만 그렇게 되었으랴"라며 어의들의 죄를 묻지 말라고 했어요.

이 일을 놓고 궁에는 뒷말이 무성했어요. 인조는 당시 소현세자를 몹시 미워했어요. 이형익은 인조가 아끼는 애첩 귀빈 조씨가 추천한 사람이라, 인조의 신임이 두터웠기 때문이라고도 해요. 그 뒤에도 신하들은 이형익을 처벌하라고 요구했지만 인조는 무시했지요. 소현세자가 왜 죽었는지 굳이 밝히려 하지도 않았고요. 백성들 사이에서 "인조가 이형익을 시켜서 소현세자를 독살한 것 아니냐"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어요.

◇갑자기 죽은 효종, 침 놓은 사람은 처형돼

인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된 효종의 죽음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어요.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이자 소현세자의 동생이었죠. 효종이 왕위에 오른 지 10년째인 1659년 어느 봄날 효종의 오른쪽 귀밑에 조그만 부스럼이 생겼어요. 얼굴이 약간 붓기도 했고요. 어의들이 달려와 왕을 진찰하고 탕약을 올렸어요. 하지만 고약을 붙여도 날이 갈수록 부기가 점점 심해졌어요.

그러자 효종은 신가귀라는 사람을 궁궐로 불러들였어요. 신가귀는 무신(武臣) 출신으로, 침을 잘 놓기로 소문난 사람이었어요.

신가귀는 고름을 짜내기 위해 효종의 종기에 침을 놓았어요. 하지만 검붉은 피가 계속해서 샘솟듯이 쏟아져 나왔지요. 얼마 되지 않아 효종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갑작스레 효종이 승하하자 신가귀는 처형을 당했습니다.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유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