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동귀의 심리학이야기] 현실에서도 게임처럼 '리셋' 할 수 있다고 착각

입력 : 2018.11.06 03:00

[리셋 증후군]
사이버 세계와 일상 헷갈려해 무모한 행동하고 어려움은 회피하죠
게임서 아이템 얻으면 도파민 분비… 화면 속 세상에 더 빠져들게 돼요

얼마 전 세계 최대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가 먹통이 됐어요. 겨우 90분 정도 접속 장애가 있었을 뿐인데 많은 사람이 불만을 터트렸죠.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우리가 스마트폰이라는 작은 기계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었는지 되돌아볼 수 있었어요.

스마트폰으로 우리는 참 다양한 활동을 해요. 재밌는 동영상을 찾아 보거나 소셜미디어에 댓글을 달거나 게임을 하죠. 스마트폰 화면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친구도 많을 거예요. 가끔은 이 작은 화면 속 세계가 진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인 양 느껴지기도 하죠.

지난 7월 한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어머니 자동차를 몰고 나가 주차돼 있는 차 10대를 망가뜨린 사고가 있었어요. 그 학생은 "평소 즐기던 자동차 게임에서 운전을 배웠다"고 했어요. 게임과 실제 운전은 엄연히 다른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아무리 그래픽 기술이 발전해 게임 화면이 생생하다 해도 말이에요. 실제로 과도하게 게임에 빠져 가상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청소년이 많이 생기고 있어요.

◇처음부터 다시, 리셋증후군

현실과 사이버 세계를 헷갈리는 증상을 심리학에서는 '리셋증후군(Reset syndrome)'이라고 해요. 다른 일을 먼저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인터넷이 없으면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인터넷 중독이라고 하는데, 리셋증후군이 그중 한 유형이에요. 1990년 일본에서 처음 쓴 말인데 컴퓨터가 버벅거릴 때 리셋 버튼만 누르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듯이, 현실에서도 시간을 거꾸로 되돌릴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을 뜻해요.

[이동귀의 심리학이야기] 현실에서도 게임처럼 '리셋' 할 수 있다고 착각
/그림=정서용
리셋증후군에 빠지면 현실에서 일어난 잘못도 언제든지 되돌릴 수 있다고 믿게 돼요. 예를 들어 자동차 게임을 하다 보면 벽이나 다른 차에 부딪히죠. 자동차가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요. 하지만 게임이 끝나도 항상 새로 시작할 수 있으니 더 용감무쌍해져요. 현실에서 그러면 큰 사고가 나겠지요.

리셋증후군을 보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쉽게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나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요. 어떤 무서운 결과가 있을지 생각하지 않고 점점 더 무모한 행동을 한다는 데 문제가 있어요. 조금만 어려움이 있어도 과도하게 회피하고 다시 시작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게 특징입니다.

리셋증후군 예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어요. 포털 사이트 검색을 하다가 인터넷 연결이 조금만 늦어져도 기다리지 못하고 새로 고침 버튼을 계속 클릭한다든지, 컴퓨터 화면이 멈추기라도 하면 망설임 없이 다시 켜는 버튼을 누르는 분들이지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앞이 아니어도 리셋증후군은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필기하다가 잘못 쓰면 그 부분만 수정하는 게 아니라 아예 종이 자체를 찢어버리고 다시 쓰기 시작해요. 친구들과 싸워서 사이가 나빠지면 화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연락을 끊어버리고요. 모두 리셋증후군 여파입니다.

◇우리 뇌는 도파민을 좋아해

그렇다면 리셋증후군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유독 청소년들이 인터넷에 쉽게 의존하는 걸까요? 청소년기는 몸과 마음이 성장하는 시기예요. 성장기 뇌는 적응력이 뛰어나지요. 그래서 뇌가 게임에도 적응합니다. 게임을 하면 아이템을 얻거나 '레벨 업'이라는 보상을 받아요. 생각만 해도 흐뭇하죠. 바로 이 순간, 뇌에선 신경전달물질의 하나인 도파민이 만들어져요.

도파민은 우리를 기분 좋게 해요. 뇌는 도파민이 생기는 그 행동을 더 자주,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뇌 신경세포를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자꾸 게임을 하고 싶은 맘이 드는 거예요. 또 어느 순간에 보상받을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게임에 더욱 몰두하게 되죠.

리셋증후군 증상이 심해지면 현실 감각이 떨어져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어요. 이를 예방하려면 인터넷 이용 시간을 줄여야 해요. 하루 4시간 이상은 인터넷 게임을 하지 않도록 노력합시다. '몇 시까지 해야지' 하고 시간을 정해 놓거나 '거실에서만 게임을 하고 방 안에서는 하지 말아야지'라고 공간을 정해두면 스스로 약속을 지키기가 쉬울 거예요.

무엇보다 이미 증상이 심해졌다고 생각되면 주변에 도움을 청해야 해요. 스스로 기분을 조절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에요. 리셋증후군이 심해진 후에 인터넷을 끊으려고 하면 뇌 입장에선 기분 좋은 행동을 방해받는다고 생각할 거예요.



이동귀(50) 교수는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주리주립대에서 상담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지은 책으로 '서른이면 달라질 줄 알았다' '너 이런 심리 법칙 알아?' 등이 있습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기획·구성=유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