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도시라는 무대에 선 현대인, 렌즈에 담았어요

입력 : 2018.11.03 03:07

문명 ― 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展

사진이란 흘러가는 시간 속 한순간을 멈춰서 네모난 틀 속에 집어넣은 이미지입니다. 사진 속 사람들은 모두 하던 동작을 멈춘 상태이고, 시간도 더 이상 흐르지 않습니다. 작품1을 보세요. 길을 가다가 빨간 신호등에 걸려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모습이에요.
작품1 - 플로리안 뵘, ‘걷기 위한 기다림’ 연작 중 ‘뉴욕48번가/5번가’, 2005.
작품1 - 플로리안 뵘, ‘걷기 위한 기다림’ 연작 중 ‘뉴욕48번가/5번가’, 2005. /국립현대미술관, ‘문명-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展
실제로 여기 있던 사람들은 벌써 신호가 바뀌어 바쁘게 길을 건너갔겠지만, 사진 속의 사람들은 아직도 마냥 기다리고 있습니다. 집중하지 않은 채 시선을 멍하니 두고 서 있는 행인들 모습이 마치 무대 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연극배우들처럼 보입니다. 도시는 이들에게 삶의 무대이니, 배우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거예요.

이 사진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이는 '문명-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전시에 출품된 작품입니다. 이 전시는 전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현재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사진으로 보여주는데요. 1990년대 초부터 25년 동안 지구 이편저편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사진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32개국 사진작가 135명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랍니다. 내년 2월 중순까지 우리나라에서 전시하고, 그 뒤 중국, 호주, 프랑스 등 10여 개 미술관에서 순회전시를 열 예정이라고 합니다.
작품2 - 나탄 드비르, ‘곧 출시’ 연작 중 ‘데시구알(Desigual)’, 2013. /국립현대미술관, ‘문명-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展
작품2 - 나탄 드비르, ‘곧 출시’ 연작 중 ‘데시구알(Desigual)’, 2013. /국립현대미술관, ‘문명-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展
사진 이미지를 보면 사진가가 무얼 봤는지 일일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한 걸음만 물러나서 사진을 찍어도 뭔가 아주 달라 보여요. 평소에 그 안에 있을 때에는 잘 볼 수 없던 것들이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작품2를 볼까요? 건물 뒷벽에는 거인 나라에 사는 사람처럼 커다랗고 멋진 여자 이미지가 붙어 있네요. 오른쪽 아래 버스 정류장에는 운동하는 남자 이미지가 담긴 포스터도 보입니다. 그 옆으로 소인 나라에서 온 사람처럼, 서 있는 여자 이미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그만 남자가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군요. 이 사진은 광고 포스터나 전광판같이 도시 문명이 만들어낸 수많은 이미지 속에 끼여, 스스로 이미지의 일부로 살아가는 현대인을 보여줍니다.
작품3 - 올리보 바르비에리, ‘특정 장소-멕시코 시티 11’, 2011. /국립현대미술관, ‘문명-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展
작품3 - 올리보 바르비에리, ‘특정 장소-멕시코 시티 11’, 2011. /국립현대미술관, ‘문명-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展
훨씬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가서 사진을 찍어 볼까요? 그러면 우리가 사는 널따란 환경이 작은 네모 속에 전부 들어가지요. 작품3이 그 예예요. 빨강, 파랑, 노랑으로 높이 솟아오른 초고층 콘크리트 타워를 통해 성장하는 도시의 희망찬 미래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실존하는 건물이지만 언뜻 보면 마치 다채로운 색을 써서 그린 공공 건축물 도안 같기도 해요. 마치 한 점의 기하학적인 추상화를 보는 기분도 든답니다. 사람은 없이, 길고 곧은 수직 기둥과 휘어진 길, 네모난 자동차 형태들로만 이루어져 있어 그런가 봐요.
작품4 - 에드워드 버틴스키, ‘제조17번, 더후이시 데다 닭 처리 공장, 중국 지린성’, 2005. /국립현대미술관, ‘문명-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展
작품4 - 에드워드 버틴스키, ‘제조17번, 더후이시 데다 닭 처리 공장, 중국 지린성’, 2005. /국립현대미술관, ‘문명-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展

사람들로 가득 찬 사진인데, 문득 낯설게 보이는 장면들도 있습니다. 작품4를 보세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줄지어 서 있는데, 모두 똑같은 분홍색 옷을 입고 있으니 좀 이상하지요? 이들은 뭘 하고 있는 걸까요? 이 사진은 중국의 대규모 닭 공장 근로자들을 찍은 거예요. 공장이 워낙 큰 데다 똑같은 작업복을 입은 근로자들의 대열이 끝없이 이어지니, 저 멀리 끝에 가면 점처럼 작아지고 말지요. 여기 있는 근로자들은 자기만의 고유한 개성을 가진 개인이 아니라, 그저 잘 관리되고 작동되는 기계의 부속품처럼 느껴져요. 아무도 도드라져 보이지 않고, 모두가 그저 집단 속 하나로서만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13억 인구를 먹여야 하는 중국에서 현대적인 식품 생산이 얼마나 집단적으로, 대규모로 이뤄지는지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전시 제목이 말해주듯, 이런 이미지들이 결국 우리가 사는 방식이고 문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문명이라는 말은 문화와 비슷하게 쓰이지만 주로 도시에서의 삶을 뜻해요. 도시에 산다는 것은 사람들이 모여서 살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주변 환경을 사람에게 맞게 바꾸어가면서 살게 된 것을 말하지요. 문명은 삶의 경험을 지식으로 바꾸어 쌓아가는 것이기도 해요. 사람은 경험을 지식 체계로 만들어 축적해나가요. 다른 동물처럼 생존 그 자체에만 에너지를 전부 써버렸다면 이렇게 빛나는 문명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에요.

하지만 빛나는 문명은 사람마저 때로는 광고 이미지의 일부로, 때로는 공장 기계의 일부로 만들어 버렸지요. 전시된 사진들을 보면서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지 한번쯤 짚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이주은·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유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