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최의창의 스포츠 인문학] 佛 언어학자가 IOC에 제안… '올림픽의 꽃' 됐죠

입력 : 2018.10.30 03:05

마라톤

마라톤이 최고로 사랑받는 시기는 가을이에요. 높고 맑은 하늘 위로 공기를 가득 들이마시며 아름다운 단풍을 벗 삼아 달릴 수 있기 때문이죠. 조선일보 춘천마라톤도 어제 개막했지요. 해외 초청 선수와 국내 선수 81명과 풀코스(42.195㎞) 참가자 1만6184명, 10㎞ 부문 참가자 9038명 등 총 2만5000여명이 출전했어요.

마라톤은 그리스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운동경기로 재탄생한 건 고작 120년 전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마라톤은 프랑스의 언어학자 미셸 브레알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건의해 1896년 제1회 아테네올림픽 대회 때 처음 생긴 종목이에요.

마라톤이라는 이름은 그리스 아테네 가까이 위치한 '마라톤 평원'에서 유래했다고 해요.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에는 이런 얘기가 나와요. 기원전 5세기쯤 그리스는 페르시아군의 침공으로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었어요.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와 페르시아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려는 참이었죠. 아테네 병사인 페이디피데스(Pheidippedes)가 옆 나라 스파르타에 지원병을 요청하러 250여㎞를 달렸다고 해요.
마라톤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그 후 약 600년이 흘러 로마 작가 플루타르크와 유클레스가 이야기를 덧붙였어요. 한 병사가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로 달려와서는 큰 소리로 "찬양하라, 우리가 이겼다"고 승전보를 토해내고 죽었다는 거예요.

이 두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다가 1879년 영국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이 '페이디피데스'라는 시를 발표해요. 이 시에는 '기뻐하라, 우리의 승리다!'라는 구절이 나오죠. 앞서 말한 언어학자 브레알은 1894년 이 시를 읽고 영감을 얻었어요. 그는 시에 나오는 그리스 병사를 기념하기 위해 마라톤에서 출발해 아테네까지 뛰는 장거리 달리기를 제안했어요. 물론 이전에도 장거리 달리기는 있었죠. 하지만 브레알이 마라톤을 정식 제안하면서 당시 돈내기나 오락거리로만 여겨지던 달리기가 국제 통합과 세계 평화를 상징하는 스포츠로 탈바꿈했습니다. 이후 마라톤은 '올림픽의 꽃'이 됐어요.

이렇듯 마라톤 탄생에는 문학이 도우미 역할을 했어요. 그래서인지 마라톤은 우리 일상 언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죠.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표현 아시죠? 우리 삶은 장거리이므로 조바심 낼 필요가 없다는 뜻이에요. '텔레톤(telethon)'은 이산가족 찾기같이 장시간 이어지는 텔레비전 방송을, '해커톤(hackathon)'은 쉬지 않고 집중적으로 어떤 과제를 해결하는 활동을 말하죠.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기도 해요. 친구들과 함께 '부카톤(bookathon·독서 마라톤)'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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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의창·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